모두 입는 평범함은 거부… 갈수록 과감하게
곳곳에 손바닥 만큼 뭉텅 도려내도 그만
트렌드는 자연스럽게 헤진 것 같은 연출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청바지를 잘 소화하는 것만으로 매력 남녀가 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청바지는 특별한 옷이었다. 입는 순간 ‘당당하고 도전적이며 열려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청바지의 마법은 어느새 끝났다. 익숙하고 흔해진 탓이다. 청바지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찢자. 거침없이 찢고 도려내는 것이 올봄 청바지 트렌드다. 립트 진(ripped jeans) ‘데미지드 진(damaged jeans)’ ‘디스트로이드 진(destroyed jeans)’ ‘크래쉬 진(crashed jeans)’ 슈레더드 진(shredded jeans). 한국어로는 모두 ‘찢어진 청바지’(찢청)을 의미하는 말이다. ‘청바지를 그냥 놔두지 않고 여기 저기 자르고 찢는 찢청 속으로 들어가보자.
<사진 이해광 기자>
▶찢는다, 함부로 무심하게
돌고 도는 것은 유행의 속성. 찢어 입는 청바지, ‘찢청’은 1990년대에도 유행했다. 당시 찢청은 어디서든 담배를 꼬나무는 반항아, 1년 내내 크고 무거운 워커를 벗지 않는 터프한 이들이 즐겨 입을 법한 불온한 옷이었다. 90년대를 지나 진화한 찢청이 돌아왔다.
더 과감하지만 덜 어색해졌다. 찢청은 최근 몇 년 간 유행한 ‘생지 진(Raw Jeansㆍ새파랗고 두꺼운 청바지)’을 밀어냈다. 길고 엄혹한 탄핵의 겨울을 지나온 이들이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고 싶어서인지도.
양복 바지나 등산 점퍼를 찢어 입을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청바지는 왜 찢어 입기를 허락받은 것일까. 패션 전문가들은 “1960년대 이후 청바지를 저항의 패션으로 입기 시작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입어낸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너도 나도 자유롭게 입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새 것이든 낡은 것이든 찢어진 것이든 용인되는 것”이라고 했다.
‘내키는 대로 용감하게 찢기’는 2017년 찢청의 코드다. 걷거나 앉을 때 다리가 슬쩍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바지 천을 뭉텅 도려낸다.
손바닥 크기의 구멍을 무릎에 낸 ‘무파진(무릎을 파낸 청바지)’, 허벅지에 낸 ‘허파진’은 보통명사가 됐다. 봄이 온 뒤로는 더 과감해졌다. 허벅지와 무릎 부분을 몽땅 도려내 반바지를 입은 듯 다리를 드러낸다. 성긴 생선 그물을 닮은 ‘피시넷 스타킹’을 찢청 안에 겹쳐 입기도 한다.
뒤도 찢는다. 이른바 ‘반전 뒤태 진’. 인터넷 샤핑몰 관계자는 “앞은 얌전하게 놔두고 뒤를 찢으면 개성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며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곳곳을 찢고 구멍 내면 된다”고 말했다. 속옷 노출이 소원이 아니라면, 바지 주머니 바로 밑을 찢는 건 참자. 몇 번 앉았다 일어나면 구멍이 커질 대로 커진다.
청바지를 입는 것만으로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아 섭섭할 때, 아끼던 청바지가 갑자기 후져 보일 때, 세상에서 하나 뿐인 청바지를 입고 싶을 때, 찢청을 사러 가기는 쑥스러울 때, 누군가가 미울 때, 가위와 칼을 들고 찢어보자.
특히 올 봄 찢청의 정체성은 청바지와 반바지 사이 어딘가에 있다.
▶입는다, 자유롭고 우아하게
패션은 언제나 한 끗 차이. 어떻게 찢고 입어야 할까.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멋지게 찢청 입는 팁을 모아봤다. 우선 매끈하게 찢는 것은 금물. 정성 들여 찢고 오린 티가 나면 촌스럽다. ‘오래도록 아껴 입은 청바지가 세월을 못 이기고 자연스럽게 찢어진 것처럼’ 연출하는 게 핵심이다. 잘 들지 않는 가위나 칼을 사용하자. 자른 부위를 송곳으로 긁거나 사포로 문지르는 것도 요령이다.
패션과 맥시멀리즘이 상극이라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찢청으로 멋을 한껏 냈다면, 웃옷과 신발, 액세서리는 되도록 단정하게 가자. 자칫 ‘넝마 패션’이 될 수 있다.
찢청과 흰 셔츠는 최고의 궁합이다. 찢은 청바지와 청남방, 청재킷을 함께 입는 ‘청청 패션’도 도전해 보자. 찢청 초보자라면 주머니나 밑단의 표면만 군데군데 해진 ‘스크래치 진’으로 시작하자. 자신감이 생기면 밑단, 무릎, 허벅지 순으로 조금씩 찢어 보자.
밑단을 잘 찢으면 발목은 가늘고 다리는 길어 보인다. 일자로 싹둑 자르지 말고 삐뚤빼뚤한 단면을 만들어 발목을 다 보여주지 않는 게 포인트다. 싫증난 스키니진은 밑단만 잘 찢어도 새 바지가 된다.
통바지보다는 스키니 핏의 찢청을 고르자. ‘터프’보단 ‘섹시’가 올 봄 찢청의 코드다.
남성이라면 찢청에 있어 과유불급이다.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찢자. 다리 털이 고민이라면, 찢은 부위에 다른 천을 덧대 맨 살을 감추는 것도 방법이다.
찢청을 입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정답은 어디 든 갈 수 있다. 본인은 외출 전부터 너무 유난스런 시선을 끌 것이 부담스러워 하겠지만 막상 나가 보면 예상은 빗나갈 것이다. 여기는 미국이 아닌가.
물론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평범한 직장, 특히 약간은 보수적인 한인직장에서 평일의 찢청은 여전히 금단의 복장이다. 어쨌든 찢청은 일탈과 해방의 패션인 것만은 분명하다.
찢청 마니아들은 "찢청은 저렴한 비용으로 독특하고 인간적인 멋을 낼 수 있는 매력적인 아이템"이라고 말한다. LA 거리의 다양한 찢청 패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