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첫광고

베토벤과 불멸의 와인…그의 교향곡에는 와인 향기가 배었다

미국뉴스 | | 2022-04-15 16:52:22

베토벤과 불멸의 와인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여덟 살 부활절 때였다. 아이들이 교회 단상에 올라 춤추고 노래하며 그날을 축하했다. 예배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 앞에서 필자는 피아노 앞에 앉아‘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했다. 작은 손으로 조음해낸 선율이 예배당의 소음을 잠식하던 그때를 아직 기억한다. 어느 날 여러 유리컵에 물을 부어 놓고는 컵을 튕겨 동요를 연주하는‘오빠’를 보고, 아버지는 무슨 천재라도 본 양 피아노를 집에 들였다. 오빠‘덕분에’ 피아노 의자가 비는 날이면 피아노 연습은 필자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연습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불호령을 내렸다. 다리가 바닥에 닿지 않아 발판에 발을 올려놓고 피아노를 쳐야 했을 정도로 어린 다섯 살배기 베토벤을 혹독하게 연습시켰던 그의 아버지처럼.

베토벤의 마지막 말이 와인과 관계된 말이었을 정도로 그는 와인을 좋아했다. 요제프 카를 슈틸러 작(作)인‘베토벤의 초상’은 베토벤하우스에 소장돼 있다.
베토벤의 마지막 말이 와인과 관계된 말이었을 정도로 그는 와인을 좋아했다. 요제프 카를 슈틸러 작(作)인‘베토벤의 초상’은 베토벤하우스에 소장돼 있다.

 

■베토벤 ‘엘리제’의 실체

물론 베토벤과 필자를 비교하는 건 가당찮다. 음악의 상대성이론이랄까, 다만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면 연습이 지겨웠던 나의 시간은 더디게 갔다. 달팽이 걸음 같던 시간이 흘러 바이엘을 떼고 체르니를 칠 무렵 마침내 ‘엘리제’를 만났고, 그날의 예배당을 서툴지만 아름다운 A 마이너 선율로 채울 수 있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그는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여인 테레제 말파티를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곡 제목의 여인이 테레제가 아니라 엘리제인 것은, 그가 워낙 악필이라 오독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함께 고전파를 대표하는 천재 음악가로, 귀가 먼 상태에서도 위대한 곡을 써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때는 유서(Heiligenstdter Testament)까지 썼을 정도로 절망에 빠졌지만 그 가운데서도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분명 악성(樂聖)임에 틀림없다.

■와인 즐긴 베토벤

최근 도서출판 길에서 출판한 얀 카이에르스(Jan Caeyers)가 쓴 ‘베토벤’을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베토벤도 필자처럼 와인을 좋아했단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하이든이나 살리에리와 같은 선배 음악가들과는 달리 궁정 악단에 소속되지 않고, 프리에이전트로 활동했다는 점이다. 음악회를 직접 기획해 열었고, 악보를 적극 출판해 저작권 수입을 올렸다. 같은 곡을 여러 출판사와 계약해 저작권 체계를 문란시키기도 하면서 말이다. 다른 음악가들이 ‘매절’(저작권료를 일시불로 받고 저작권과 출판권을 출판사에 파는 것)로 악보를 출판한 반면, 그는 곡을 주문한 귀족에게 일정 기간 동안 독점권을 주었다. 그 기간이 지나면 악보의 출판권을 베토벤이 가져온다는 조건으로. ‘사인본 악보’를 팔기도 했고 여러 나라에 수출하기도 했다니, 출판인인 필자로선 여러 생각이 든다.

베토벤과 이름이 같은 그의 할아버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독일 본에서 쾰른 대주교이자 선제후의 궁정 악단에서 가수 겸 악장으로 일했다. 그는 근면하고 성실하며 책임감이 강했다. 부업으로 네덜란드인들을 상대로 와인을 팔아 생계를 꾸렸다. 그런데 그의 아내(베토벤의 할머니)가 지하실에 쌓아놓은 와인을 한두 잔 마시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와인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그녀는 수도원(정신병원)에 감금되고 말았다.

베토벤의 아버지 장(요한 판 베토벤)은 그의 아버지가 와인을 팔아 모은 재산을 유산으로 받았다. 그는 아들에게서 모차르트 못지않은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는 음악 교육을 혹독하게 시켰다. 아들의 재능을 이용해 큰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덟 살 베토벤을 신동으로 보이기 위해 여섯 살이라 속이고 연주회를 열기도 했단다.

■가장이 된 베토벤의 고통 완화제

베토벤의 빈 유학을 도운 쾰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프란시스 대주교는 베토벤에게 아버지 연금의 반을 받도록 조치했다. 베토벤은 궁정 악단에서 일하는 한편 피아노 레슨과 연주로 돈을 벌었다. 불행으로 치닫는 가족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그는 17세부터 온전히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불행으로 이어졌다.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동생들에게 베풀고 싶었을까. 베토벤은 동생들의 결혼 문제에까지 지나치게 간섭해 그들과 불화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녹록지 않았다.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눈 후원자 리히노프스키 공작에게 피아노 소나타 ‘비창’을 헌정하기도 했지만, 공작이 내키지 않은 연주를 요청하자 과격하게 거부한 탓에 둘의 관계는 끝났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그에게 허락된 건 사랑뿐 결혼은 그가 발 디딘 지상의 것이 아니었다.

청력이 약해지면서는 삶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주를 너무 크게 하거나 괴성을 지르는 등 이상 행동을 해 빈과 그 외곽에 거주한 35년 동안 60여 차례나 거처를 옮겨야 했다(80여 차례라는 기록도 있다). 말년에는 갈수록 어렵고 깊이 있는 곡을 발표해 대중성과는 동떨어져 후배 음악가들에게 밀리기도 했다. 특히 조카의 친권을 두고 벌어진 재판에 남은 힘마저 소진한 탓에, 결국 베토벤은 우울증과 강박증이 도지면서 영육의 고통에 유폐됐다.

베토벤은 커피와 와인을 매일 마셨다고 한다. 아마도 그에게 두 음료는 영감의 원천이자 고통 완화제였을 것이다. 커피 한 잔에 원두 60알이 그의 취향이었다. 와인도 매일 한 병 이상을 마셨다.

베토벤이 처음부터 와인을 많이 마셨던 것은 아니다. 삶에 짙은 그늘이 지자 습관적으로 와인을 마셨다. 물론 그가 음악 교육을 받은 데에는 할아버지 재산의 기반인 와인이 한몫했거니와,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고 음악성을 꽃피게 한 것 또한 어쩌면 와인이었으니, 애초에 와인은 베토벤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멸의 술’인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평생 할아버지를 존경해 초상화를 간직했다고 한다.

■와인을 처방받다

베토벤이 살던 18~19세기에는 와인에 단맛을 내기 위해 아세트산납을 첨가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 잦은 토사곽란과 복수(腹水) 탓에 시술을 받았는데, 복수를 뺀 뒤에는 시술한 자리에 납 반창고를 붙였다고 한다. 가래를 삭이기 위해 치료제로 납염도 사용했다. 이 정도면 외려 납 성분이 검출 안 되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아무튼 베토벤은 고통의 나날을 살아 냈다. 통증을 진정시키는 한 방법으로 펀치를 처방한 의사도 있었다. 그 의사는 베토벤이 와인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알코올 도수가 낮고 향긋한 화이트 와인도 펀치와 효능이 같다고 귀띔했다. 와인을 계속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크게 안도했다고 한다.

그는 고향인 본(22년)보다 빈(35년)에 더 오래 거주했기에 주로 오스트리아 와인을 마셨다. 지금도 빈 외곽에는 베토벤이 기거하며 합창 교향곡(9번)의 일부를 작곡했다고 알려진 호이리거(선술집)가 남아 있다. 와인을 처방받은 뒤로는 추천받은 와인을 마셨다. 바하우 지역의 굼폴즈키르헨, 빈 외곽의 그리칭, 동생 요한이 추천한 그나이젠도르프에서 생산된 와인 등이다. 나중에는 와인을 가리지 않았을 뿐더러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걸작을 작곡하는 가운데 베토벤은 줄곧 고통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는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고향의 와인을 마시고 싶었을까, 아니면 독일 와인의 약효가 더 좋다고 생각했을까. 베토벤은 그의 작품을 출판한 마인츠의 쇼트(Shott) 출판사에 편지를 보냈다. “라인과 모젤의 와인을 보내주시오.”

■베토벤이 마지막에 마신 뤼데스하임 와인

불행하게도 와인은 그의 죽음이 임박해서야 도착했다. 1806년산 뤼데스하임 와인이었다. 베토벤의 비서 쉰들러가 와인병 마개를 열었다. 숟가락에 와인을 따른 그는 이미 의식이 혼미한 베토벤의 입에 와인을 흘려 넣었지만 와인은 베토벤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뤼데스하임(Rdesheim am Rhein)은 로마 시대부터 와인을 생산해온 명산지다. 한때 베토벤과 교류했던 괴테가 ‘라인강의 진주’라고 극찬한 곳이다. 괴테는 이곳의 와인을 마시고는 “와인이 입술을 통해 혀끝으로 전달되는 순간은 ‘사랑하는 여인과의 첫 키스’만큼이나 감미로웠으며, 와인을 마시기 직전의 감정은 ‘사모하는 사람을 만나기 직전의 설렘’과 비슷하다”라는 글을 남겼다.

책에 실린 정보로 유추해보자면, 도수가 낮고 향긋한 1806년산 뤼데스하임은 ‘리슬링’ 품종으로 빚은 ‘카비네트’로 보인다. 카비네트는 충분히 잘 익은 포도를 수확해 빚어 미네랄, 감귤류, 복숭아, 살구 등의 향에 꽃향과 페트롤, 꿀향이 어우러진 새콤달콤한 와인이다. 

당분을 완전히 발효시키지 않고 남기기 때문에(완전히 발효시킨 드라이한 스타일도 있다), 알코올 도수가 비교적 낮다.

오스트리아 빈 외곽에 있는 마이어 암 파르플라츠(Mayer am Pfarrplatz)와 이곳에서 생산되는 베토벤 와인.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9번)의 일부를 작곡한 집으로 직접 와인을 양조해 파는 호이리거(선술집)이다.        <마이어 암 파르플라즈 홈페이지 캡처>
오스트리아 빈 외곽에 있는 마이어 암 파르플라츠(Mayer am Pfarrplatz)와 이곳에서 생산되는 베토벤 와인.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9번)의 일부를 작곡한 집으로 직접 와인을 양조해 파는 호이리거(선술집)이다. <마이어 암 파르플라즈 홈페이지 캡처>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2026년‘올해의 컬러’전격 공개… 팬톤의 파격적 선택도 포함
2026년‘올해의 컬러’전격 공개… 팬톤의 파격적 선택도 포함

각 페인트 업체들이 2026‘올해의 컬러’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베어’(Behr)가 지난 7월 가장 먼저 2026년을 대표할 색상을 공개한 데 이어, 글리든, 발스파, 셔윈윌리

중산층이 집을 사지 않는다?… 챗GPT가 내다본 주택시장 미래
중산층이 집을 사지 않는다?… 챗GPT가 내다본 주택시장 미래

주택시장을 지탱해온 중산층이 더 이상 집을 사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온라인재정정보업체 고우뱅킹레잇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이 가정을 인공지능 챗GPT에게 물어보고 분석을

뉴욕에 3년만에 최대 폭설…항공기 수천편 결항·지연
뉴욕에 3년만에 최대 폭설…항공기 수천편 결항·지연

눈 내린 뉴욕시 센트럴파크 [로이터]  크리스마스 휴일 직후인 27일 동북부에 많은 양의 눈이 내리면서 이 일대 항공편이 대거 취소·지연되는 등 연말 항공편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었

새해 더 건강해지기 위한 의사의 과학적 조언 10가지

■ 워싱턴포스트 특약 ‘전문의에게 물어보세요’프로바이오틱스 대신 차전자피·식이섬유 섭취근력 운동은 필수… 아침에 자연광을 쬐어야항염증 식단과 필터 커피, 심혈관·대사에 도움 하버드

연준, 올해 세 번째 금리 인하… 내 지갑엔 어떤 변화?
연준, 올해 세 번째 금리 인하… 내 지갑엔 어떤 변화?

‘크레딧·예금’ 금리 소폭 하락모기지 이자율 영향 거의 없어   연준이 최근 올해 들어 세 번째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인하폭은 0.25%포인트의 소폭으로 소비자 재정에 당장 영향

“아동 수출국 오명 벗는다” 70년 만에 해외입양 중단

‘2029년 0명 목표’ 단계적 추진 한때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썼던 한국이 70년 만에 해외입양을 중단한다. 해외입양 과정에서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던 만큼, 앞으로는

‘얼리 디시전’ 합격 후 포기?… 불이익 따를 수도
‘얼리 디시전’ 합격 후 포기?… 불이익 따를 수도

합격 시 반드시 등록 조건한 곳만 지원·수주 내 등록    대학 입학 전형은 크게 조기 전형과 정시 지원, 그리고 공석 발생 시 선발하는 ‘롤링 어드미션’(Rolling Admis

고등학교 성적 인플레… SAT 점수 중요성 다시 부각
고등학교 성적 인플레… SAT 점수 중요성 다시 부각

점수 요구 상위권 대학 ↑점수 제출 신중히 고려중간 50% 점수 목표로평소 연습·응시 3~4회  대학입학 표준화 시험 점수를 다시 요구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다. 대학 입시 전문가

성탄절 이브에 18억 잭팟 터졌다
성탄절 이브에 18억 잭팟 터졌다

“대학 학자금 상환 안하면 임금 압류한다”
“대학 학자금 상환 안하면 임금 압류한다”

연방 교육부 절차 개시내년 1월부터 통지 예고채무 불이행자들 대상  연방 교육부가 학자금 부채 불이행자들에 대해 임금 압류에 나선다. 한 대학 캠퍼스 모습. [로이터]  연방 교육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