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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났는데… 엄마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미국뉴스 | | 2022-01-05 09:49:12

엄마,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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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폭력에도 삼남매 위해 헌신

   사업이 잘 안 풀리자

   상가 엄마에게 이전하고 집 나가

   아빠와의 시절 눈물 쏟으며 분노

   병원 약물치료 권했지만 거부

“자식들도 무시하네”자주 화내

 

6.25전쟁 폐허 속에서 자란 세대

30^40대 여성과는 전혀 다른 삶

배우자 폭력과 외도까지 경험

생존 동력이던 목표가 사라지고

해방감보다 허망함이 몰려든 듯

바꾸려 말고 고맙다 보듬어 주길

 

친정 엄마가 마음의 병이 너무 깊습니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설움이 폭발하면서 자기 비하에 빠지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걱정이 큽니다.

엄마는 아빠의 가정 폭력에도 가정을 지키며 저희 삼남매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아빠는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엄마를 때렸고 제가 고1 때 바람나 집을 나갔습니다. 아빠는 당시 사업 문제로 상가 건물을 엄마에게 이전하고 위장 이혼을 했는데 빚이 1억 원 넘게 있던 상태였어요. 엄마는 목욕탕 청소는 물론 새벽에 빌딩 청소를 하며 악착같이 그 빚을 거의 다 갚았고, 결국 건물은 넘어가지 않고 엄마 자산이 됐습니다.

몇 년 뒤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폭력을 다시 휘둘렀고, 저는 엄마가 맞을까 봐 군대 간 남동생을 대신해 늘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두 분은 지금 같이 살지 않아요. 엄마는 그런데 아직도 저와 있을 때면 습관적으로 아빠와 살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분노를 쏟아내다 눈물을 흘립니다. 위로해도 그때뿐이라 상담을 권했는데 과거를 들추는 걸 괴로워해서 중간에 그만뒀어요. 병원에서는 화병이 심하다며 약물 치료도 권유했지만 이것도 거부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요즘 들어 점점 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듯해요. 얼마 전 제 큰딸 생일이라 엄마가 저희 집에 잠깐 들러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습니다. 제 여동생과 돌이 지난 조카도 왔어요. 엄마는 중간에 상가 보수공사 업체 사람과 통화한다며 방에 들어갔는데,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끝내 ‘남편 없다고 날 무시하냐’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습니다.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혼자 방에서 욕을 하며 더 흥분했고 저와 동생은 너무 당황해 아이들 눈치만 살피고 있었어요.

안방에서 나와서는 아빠를 죽이겠다며 아빠 피인 너네들도 다 꼴보기 싫다고 펄펄 뛰며 계속 욕을 했습니다. 아이들도 너무 충격을 받고 놀랐습니다. 나가서 전화를 받든지 나중에 통화하면 될 텐데 본인 성질대로 분노를 다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저도 화가 치밀었어요. 다음 날 엄마는 ‘미안하다. 나를 가까이하면 다 오염되니까 보지 말고 살자’는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몇 년 전 남동생 결혼으로 엄마, 아빠가 다시 만나 잠깐 사이가 좋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가 제일 편하고 행복해 보였어요. 그때는 누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웃으며 넘겼는데 지금은 욕을 하고 분노합니다. 남동생이 농담조로 한 말을 며칠씩 곱씹으며 ‘남편이 무시하니 자식들도 무시한다’고 화내는 식이에요.

제가 바라는 건 특별한 게 아닙니다. 자식들 다 결혼해 소소한 행복 누리며 살고 있고 엄마도 이제 고생 끝났으니, 재산 하나도 남기지 말고 본인 위해 다 쓰고, 명절이나 생일 때 가족끼리 모여 웃으며 밥 한 끼 먹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것도 어렵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과일이나 맛있는 음식을 사다 줘도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상하기 직전에 허겁지겁 먹는 엄마, 재산이 많은데 본인한테는 단돈100원 쓰는 것도 벌벌 떠는 엄마, 집에 있으면 불안하고 우울하다며 70세가 다 돼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엄마, 살갑게 구는 사위에게도 감정 기복이 심한 엄마... 인간적으로 너무 안쓰럽지만 막상 또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 받고 화가 나요. 저와 동생들은 이런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황정민(가명·43·프리랜서)

 

정민씨, 당신은 엄마의 고달픈 삶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에요. 지난 인생에 비춰보면 지금 엄마는 걱정할 게 없어 보여요. 자식들 다 키워서 독립해 잘 살겠다, 돈도 있겠다, 이제 꽃길만 걸으면 될 것 같은데 도대체 우리 엄마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 거예요.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정민씨 어머니 나이는 올해 70세로, 1950년대 전쟁의 혼란과 폐허 속에서 나고 자란 세대입니다. 그 세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윗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게 없었고 대부분 척박한 삶을 살아야 했어요. 죽도록 일해서 자식을 뒷바라지하고 부모를 봉양해야 했죠. 더군다나 여성은 가부장적 색채가 짙은 사회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의무와 책임은 많았지만 권한과 권리는 없다시피 했어요. 집에서는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는 엄마로, 또 부족한 돈으로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 나가는 아내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어요.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던 시대입니다. 자식 세대인 30, 40대 여성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어요.

가난이야 그때는 모두가 가난했다지만, 정민씨 어머니는 거기에 더해 배우자의 폭력과 외도까지 경험합니다. 남편은 빚까지 떠넘겼고, 몸과 마음을 혹사시켜 이를 갚아야 했지요. 어머니가 겪었던 몸고생, 마음고생은 극심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때리는 남편도 없고, 상가 건물도 가지고 있어요. 돈도 있습니다. 자식들도 다 잘 키웠고요. 어머니의 인생이 동화였다면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돼야 할 타이밍인데 어머니는 어떻게 된 게 옛날보다 지금 더 힘들어보여요. 편안해 보이지 않고 별일 아닌 일에도 화를 냅니다.

추측하건대, 수십 년간 생존의 동력이었던 뚜렷한 목표가 사라지고 나니 성취감이나 해방감보다는 허망함이 몰려든 것 같아요. 과거 어머니 인생은 고달팠지만 빚을 다 갚고 말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자식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도 컸지요. 어머니가 혼자 삼남매를 키우며 얼마나 걱정이 많았을까요. 아이들 밥 굶기면 안 되는데, 공부시켜야 되는데, 좋은 배우자와 결혼시켜야 하는데... 남편과 세상에 대한 미움, 복수심, 분노, 적개심 같은 부정적 감정과 이런 목표들을 동력으로 삼아 어머니는 살아나갈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다 이제 막내까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립니다. 인생 내내 붙들고 있던 목표와 부정적인 감정들을 내려놓아도 되는 순간이 드디어 온 거예요. 이제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는데, 남은 건 여기저기 아픈 몸과 피폐해진 마음뿐입니다. 늙어버린 자신과 눈깜짝할 새 지나버린 세월에 대한 공허함이 몰려들 거예요. 객관적인 상황만 놓고 보면 어머니 인생은 지금 비참할 게 없어요. 하지만 어머니 마음 속에는 여전히 비참함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자식들은 아마도 ‘엄마, 이제 나가서 좀 놀고, 맛있는 거 드시고, 좋은 옷도 사 입으세요’라고 말할 겁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머니가 그렇게 사시기에는 과도한 절약, 억척스러운 삶이 너무 오랫동안 몸에 배어 있어요. 어머니도 머리로는 자식들 하는 말이 다 맞다는 걸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못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는 자식들의 그런 말에 미묘한 서운함도 느끼는 것 같아요. ‘이제는 좀 누리고 살라’는 말을 들으면, 자식들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고 공감해준다기 보다, 그 고단했던 긴 시간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이제 힘든 시간은 지나갔으니 다 잊고 다르게 살라고 하는데,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한 그 시간을 지우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허무함이 더 커집니다.

어머니가 자꾸 ‘자식들이 나를 무시한다’며 피해의식을 드러내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에, 혹은 별뜻 없이 말을 해도 ‘나를 가르치려고 든다’는 느낌이 들면 화를 내고 서운해하는 것으로 보여요.

특히 어머니가 노년기에 접어들며 감정 조절에 점점 더 어려움을 겪는 건, 울분으로 인한 우울증이 원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화병이라고 불리는 건데요, 화병은 미국 정신의학회에서도 ‘Hwa-Byung’으로 우리 말 그대로 등재되어 있을 만큼, 외국에서도 한국 문화에서 발생되는 특별한 병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울증의 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사례가 있고, 우울증 치료를 통해 회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 분들은 내면에 응어리진 울화로 분노와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가슴에 뜨거운 불덩이 같은 열이 뻗치면서 올라와요” “자꾸만 화가 나서 조절이 안 돼요”와 같은 표현을 많이 합니다. 울분으로 인한 우울증은 치매 초기 증상과도 비슷해 감별이 필요하므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어머니는 이 나이대 자수성가하신 많은 분들이 그렇듯 자기의 어려움을 남과 의논하거나 밖으로 내보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고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잘 안 하려고 하실 거예요. 그럴 때는 말로 설득하지 마시고, 병원의 건강 검진 결과나 수치를 제시하면서 이런 약을 먹어야 한다고 의학적으로 접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어머니는 고단했던 인생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공감과 이해가 필요해 보입니다. 자식들이 어머니의 고생을 충분히 알고 있고, 그래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긴 통화보다는 ‘엄마, 오늘 추운데, 감기 기운 없어요?’ 정도로 짧게, 자주 하세요.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더라도 휴대폰으로 자식들, 손주들 사진을 전송하며 꾸준히 소통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물론 정민씨와 동생들도 어머니의 고생과 고마움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정민씨 나이는 아직 어머니의 이런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젊어요. 아무리 사랑해도, 평생을 곁에서 지켜봤어도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장녀인 당신은 부모님과 동생들 사이에서 원치 않는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았을 것이고, 그만큼 어머니를 향한 애증도 클 겁니다. 쉽지 않겠지만, 어머니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고 하지 마시고 어머니의 고달팠던 인생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대단했다고 인정해 주세요. 고맙다는 말로, 사랑했다는 말로 어머니를 꼭 보듬어주시길 바랍니다.                                    <정리-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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