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엘리트 학원
이규 레스토랑

[주말 에세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12-15 18:21:42

주말 에세이, 박인애, 수필가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허물없이 지내는 백 시인은 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종종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박인애 씨 처음 문학회 왔을 때, 영락없이 밥하다 뛰어나온 아줌마 같았는데 많이 컸다.”라고. 여러 번 들어서 새로울 일도 없고, 오라버니 같은 사람이라 기분 나쁠 일도 없다. 나 자신도 기억 못 하는 내 모습이 그에겐 꽤 선명한 모양이었다. 

17년 전 내 모습은 어땠을까? 올해 21살 된 딸아이가 4살 때였으니 지금보단 젊었을 테고, 워킹맘이었으니 그렇게 추레하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급 궁금증이 발동했다. 왜 여태 사진 찾아볼 생각을 못 했을까. 책장에서 오랫동안 들춰보지 않았던 아이 앨범을 꺼냈다. 지금이야 컴퓨터나 클라우드에 사진을 저장하지만, 그때만 해도 인화해서 앨범에 끼웠다. 사진첩을 넘기다 신데렐라와 여러 공주가 장식된 케이크에 초 4개가 꽂힌 사진을 찾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보고야 말았다. 그가 강조했던 밥하다 뛰어나온 아줌마를! 빵 터져서 배를 잡고 웃었다. 혼자 있었기 망정이지 누가 봤다면 미친‘ㄴ’인줄 알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눈물까지 훔쳐내며 할할 웃었다. 그리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빠글 파마와 아이를 낳았음에도 꺼지지 않던 배가 한몫을 했을 것이다. 

긴 생머리만 고집하던 내가 “손님은 얼굴이 귀여워서 짧은 머리를 하면 더 어려 보일…”이라는 긴 설명 중에서 ‘어릴’이란 말에 꽂혀 앞머리를 싹둑 자르고 단발머리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찌나 촌스럽던지 영락없이 딸이 매일 보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DORA’같았다. 다시 붙여달라고 할 수도 없고 정말 도라~버릴 것 같았다. 한동안 거울 보기가 싫었다. 실력은 없고 입으로 한 머리 하시는 미용사에게 머리를 덜컥 맡긴 내 잘못이 컸고, 연하의 남자와 사는 여자의 비애였다. 시간이 흘러 머리가 어깨에 닿을 무렵 “요즘 디지털 파마가 유행인데, 자연스러운 웨이브라 여성스럽다. 묶어도 예쁘고 풀어도 예쁘다”라는 말에 또 넘어가 빠~마를 말고 말았던 거~시~었~따. 그 비싼 스트레이트파마로 갈아탈 때까지 부해진 사자머리 쥐어뜯으며 후회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하필 그 흑역사 중심에 그가 있었다. 앞으로 백 시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면 이전보다 더 쿨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2006년, 내가 사는 지역에 한인문학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우연찮은 기회에 그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지인도 아닌 지인의 지인을 통해서였다. 미국에 한국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반가워서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정기 모임에 열심히 참석했다. 같은 결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았다. 성실이 돋보였는지 2년 후 부회장이 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 회장이 되었다. 그곳에서 지난 17년 동안 나를 부르는 호칭이 여러 번 바뀌었다. 회장, 부회장, 총무, 회계, 편집위원, 편집국장, 고문 등이다. 어떤 자리가 빵구 나든 땜빵 가능한 인재가 되었다. 백 시인이 많이 컸다고 한 건 아마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회장 하다 내려와 자존심도 없이 따까리나 한다고 비아냥대는 소리도 전해 들었으나 무시했다. 내게 직책은 봉사하는 자리일 뿐 벼슬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가 자리 잡아 차기 회장도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봉사하신다. 

요즘 단체마다 회장 이·취임식이 많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문학회 회장 임기를 마쳤다. 전직 회장은 고문으로 예우한다는 회칙에 따라 고문이 되었다. 건강이 안 좋으니 빵구 난 자리가 나를 고문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제 숨통이 트이나 했는데, 이북오도민회 회장이 되었다. 거절 못 하는 병에 걸려 수락하였다. 중증이다. 전생에 무수리였던 게 틀림없다. 나는 지극히 약하고 부족하나 내가 필요하여 앉혔다면 감당할 힘도 주시겠지. 그분 백을 믿고 힘을 내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믿으며 청사진을 그려본다. 

<박인애 수필가>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추방 작전 준비 완료

케빈 김 법무사  2025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본격적으로 실행할 준비를 마쳤다. 톰 호먼(Tom Homa

[벌레박사 칼럼] 터마이트 관리 얼마만에 해야 하나?

요즘 들어 타주에서 이사 온 고객들로부터 터마이트 관리에 대한 문의전화가 많이 오고 있다. 타주에서는 터마이트 관리를 안 했는데, 조지아는 터마이트가 많아서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이

[행복한 아침] 세월 속에서 만난 새해

김정자(시인·수필가)     지난 해 연말과 새해 연시를 기해 다사다난한 일들로 얼룩졌다. 미국 39대 대통령을 역임하신 지미 카터 전 대통령께서 12월 29일 향연 100세로 별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새로움의 초대

최 모세(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새해의 밝은 햇살이 가득한 아침이다. 연휴에 분주하게 지내느라 새로움을 마주하는 희망찬 의지를 다질 새도 없었다. 새해부터 경건해야 할 삶의 질서

봇물 예상 반이민법안부터 학교안전법안까지
봇물 예상 반이민법안부터 학교안전법안까지

▪조지아 주의회 2025 회기 주요 쟁점 분야  스포츠 도박 합법화 여부 메디케이드 확대도 쟁점 조지아 주의회가 13일부터 40일간의 2025회기를 시작한다. 트럼프 행정부 2기를

델타항공 엔진 결함으로 승객 슬라이드 대피 소동
델타항공 엔진 결함으로 승객 슬라이드 대피 소동

탑승객 슬라이드로 활주로로 대피공항 활주로 이 사건으로 올 스톱 델타 항공의 승객들이 10일 아침 겨울 폭풍 속에서 하츠필드-잭슨 국제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중 엔진 문제로 인해

7년만의 큰 눈, 메트로 애틀랜타 눈 내린 풍경
7년만의 큰 눈, 메트로 애틀랜타 눈 내린 풍경

10일 아침, 눈보라가 조지아 북부를 강타하면서 메트로 애틀랜타가 눈으로 뒤덮였다.눈과 비, 영하의 기온이 합쳐져 도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보에 따르면 애틀랜타 주변 지역은

눈∙폭풍 물아친 애틀랜타 공항 무더기 결항
눈∙폭풍 물아친 애틀랜타 공항 무더기 결항

10일 오전  600여편 운항 취소 10일 내린 눈과 폭풍으로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공항 이착륙 항공기 운항이 대거 결항됐다.플라이트어웨어닷컴에 따르면 하츠필드-잭슨 공항에서는

7년 만에 눈으로 뒤덮인 애틀랜타...'저체온증' 주의
7년 만에 눈으로 뒤덮인 애틀랜타...'저체온증' 주의

10일부터 12일까지 외출 자제 경고저체온증 사망까지 이어질 수 있어 메트로 애틀랜타가 7년 만에 눈으로 뒤덮였다.지난 일주일 간 기상청 예보와 기상 전문가들이 눈이 내릴 가능성에

총영사관, 대사관·영사관 사칭 보이스피싱에 주의 당부
총영사관, 대사관·영사관 사칭 보이스피싱에 주의 당부

주미대사관 사칭 보이스피싱 기승보이스피싱 대응 행동요령 안내 최근 대사관 혹은 영사관 직원을 사칭한 금융사기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자 애틀랜타 총영사관이 피해 예방 협조와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