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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인생 부록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8-18 08:38:58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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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다림질을 해서 걸어둔 옷인데 막상 입으려고 보니 작은 주름이 눈에 뜨인다. 시간도 빠듯하고 해서 그냥 집을 나서다 보니 자꾸만 눈길이 간다. 다림질을 잘 했어도 자연적인 구김 현상으로 주름이 잡힐 수도 있는 것인데 주변 시선으로 하여 마음에까지 주름 자국이 접어질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다양한 사건 사고가 빚어낸 관계의 굴곡들이 가녀리고 두터운 주름들이 켜켜이 자리잡고 있다. 천재지변이 하늘 주름을 만들어 가고, 잘 뻗어있는 것 같은 길도 크고 작은 주름들이 즐비해 있다. 바다도 늘상 무표정하지만은 않은 터라 바람이, 폭우가 파도를 타고 해변 주름들을 그려나가고, 숲나무에도 옹이를 비롯해 겉껍질에 생긴 주름 무늬들로 수종을 구별하고 나무 연륜을 짚을 수 있게 된다. 돌아보면 우리네 인생길도 수 없이 많은 주름을 만들어가며 지금 여기에 당도했다.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털고 일어나기도 하면서 주름진 길 위에서 만남과 헤어짐, 약속과 기다림을 이어왔다. 희비애락을 좌절로 겪기도 하고 만끽하며 무작위 누림을 계승해왔다.

시니어 그룹으로 접어들면서도 얼굴이며 목, 손등에 울퉁불퉁한 산맥이 결성되고 깊은 계곡이, 지진 후유증처럼 흔적을 남겨도 그리 마음이 가지 않는다. 살아온 여정이 숨 쉬고있는 역사서로 보면 그만인 것을. 설거지를 끝내고 손등에 잡힌 주름을 보게 되면 시름의 날들과 질긴 쓴 뿌리 같은 삶의 얼룩들을 엿보게 되곤 하지만 삶을 견뎌낸 기치의 구현으로 보아  주기로 했다. 얼굴 주름 뿐 아니라 다리에도, 팔에도 근육이 줄어들고 살이 빠진 자국들이 주름으로 남겨지고 있다. 마음의 깊은 지경을 둘러보면 여러 모양의 주름이 결을 이루기도 하고 뭉툭하니 뭉쳐진 채로 겹지르기도 하고 지워질 것 같지 않은 주름들이 잠겨 있음을 보게 된다. 언제나 빈 마음이고 싶은데 마음에 자리한 주름들이 번식을 이어가지는 않으려나 황망스러우면서도 주름이 주는 아름다움 또한 묵과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싶다. 너무 웃으면 주름이 진다 했지만 세월 풍상이 지나간 흔적이라는 아쉬움을 상쇄시켜주는 위안이 숨겨져 있다. 주름살은 생의 길고 긴 마라톤 코스에서 반환점을 돌아 도착 지점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예지해주는 깃발일 수 있는 것인데. 세월에 쫓기며 때로는 막다른 Dead End 표시가 바로 코 앞인 줄 모르고, 인생이 나그네길임도 잠시 잠깐씩 잊어가며 세월을 주름잡으며 살아왔다.

주름은 살아오면서 새겨진 정직한 흔적이다. 주름의 아름다움을 논하라 한다면 자연 섭리의 비롯이라 하고 싶다. 삶의 연륜이 깊어갈수록 자연스레 초라해지고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바뀌어 가지만 마음에까지 주름이 잡히도록 방관해서는 아니될 일이다. 마음 주름은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라서 미소 담긴  모습은 최선의 아름다움이 될 수 밖에 없음이다. 세월이 남긴 것이 주름이지만 주름살에 매이지 않으며 어린 아이 같은 주름 없는 마음으로 다듬어 가야할 것이다. 내면에 간직된 아름다움을 갸륵하게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으며 참 평안을 누릴 줄 알아서 선한 삶의 향기를 주변에 공동체에 나아가서는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소중한 삶으로 선회하며 가꾸어 가야 하리라.

내 어머니의 주름진 선한 눈매가 삶의 길라잡이가 되어 주셨던 슬기로 간직해 왔다. 주름 만큼이나 주름진 삶을 감내해 오시는 동안 여과없이 새겨진 주름들이 삶을 직관 해오신 지혜로 내 마음에서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삶의 질곡을 넘어설 때미다 선한 미소는 내 삶의 고귀한 등불이 되어주었다. 어머니의 주름진 미소에 숨겨진 고뇌까지 읽을 수 있어야 했는데. 눈가에 잡힌 잔주름 속에 가리워진 소박하고 그윽한 아름다움을 스치 듯 지나쳐 버리는 결례는 범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어머님께서 떠나신 나이에 이른 지금에서야 어머니 주름이 생의 소중한 등대로 발견되다니. 혹자는 주름을 인생 계급장이라 한다지만 자연스레 자리한 어머님의 주름은 중후한 매력과 노련미를 품고 계셨기에 어머님의 비망록 첫머리에 올려드리려 한다.

사람 피부는 세월을 지나다 보면 주름이 생기게 되어있다. 이마 미간에 있는 내 천(川)자 주름이며 눈 아래 피부가 쳐지면서 드리워지는 주름은 세월이 흐를수록 그 골이 깊어지는 것 까지도 자족의 긍지로 쉬지 않고 걸어온 인생 노정의 기록으로 삼으려 한다. 주름 한 줄은 삶의 현장에서의 발현일 것이고, 곁의 한 줄은 내 부족함 때문이겠고, 또 다른 한 줄은 가족을 향한 사랑이 빚어낸 아름다운 영예로 간직하기로 했다. 인생 부록에 자리 잡을 주름과 어느 결에 서리내린 백발이 어우러지며 고유한 수채화로 남겨 지리라. 삶의 유곡을 가꾸며 남은 날들을 주름 깊이 만큼 보듬으며 해넘이 여정을 가꾸어 가리라.

주름은 인생 부록이 아니었다. 현대화로 탈바꿈 해버린 이 시대에는 더 이상  인생 면류관도 아니며 주름 속에 감추어진 지혜의 원천이라 추앙 받던 시대는 이미 오래인 듯 하다. 동안이라는 인사가 시대적 최고의 찬사가 되고 있다. 동안 유지 신드롬이 처절한 발버둥으로 보일 만큼이다.  주름을 공포의 산물로 간주하며 주름 세대인 늙음이 차별화되어 버린  세상은 새로운 것과 젊음만이 추앙받는 세상으로 거리낌 없이 달려 가고 있다. 주름을 생의 궤적으로 여기려 했던 평안이 공허한 연기처럼 엷어져 가지만, 주름진 세상을 더불어 아름답게 만들어 갔으면 하는 소망이 소나기 뒤에 만나지는 산뜻한 선명함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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