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요란한 자동차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니 노란 스쿨버스 한 대가 서 있다. 맞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 했었지. 밤새 내린 비에 젖은 배롱나무 가지 끝에서 아침 햇살이 반짝인다. 늘 같아 보이는 골목 풍경이지만, 어떤 날은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고 또 어떤 날은 지난날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골목 입구에서 아이를 데리고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이웃의 모습은 영락없는 지난날의 나다. 문득,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두 모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만져본 게 언제였던가.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카메라를 꺼내 보니 렌즈 캡조차 열어보지 않은 채 그대로다. 메모리 카드가 들어 있었다. 컴퓨터에 카드를 꽂자, 오백 장이 넘는 사진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 이 귀한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니.
사진들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폭포 옆에서, 호숫가에서, 공원 산책길에서, 바다에서, 그때마다 그 순간을 함께했던 지인들의 모습과 풍경이 빼곡했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얼굴들도 있다. 몇 년 사이 멀리 떠나버린 사람들. 내가 힘들 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소중한 얼굴들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던 건 아니었건만,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하고서야 그들의 존재가 얼마나 귀했는지 알게 되는 어리석은 나다.
사람들은 흔히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고 사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나 역시 지나간 날들을 추억하며 사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새겨진 수많은 순간들, 슬픈 기억은 슬픈 대로, 기쁜 기억은 기쁜 대로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후회나 회한으로 곱씹기보다는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라는 심리 용어가 있다. 성경에서 969세까지 살았다는 최장수 인물, '므두셀라'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증후군은, 과거를 회상할 때 좋은 기억만 떠올리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심리를 말한다. 불행했던 기억을 행복했던 추억으로 왜곡하는 일종의 현실 도피 성향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이 증후군에 관한 글을 읽다가 "혹시 나도 그런 거 아니야?" 하며 혼자 웃었던 적이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지난날의 내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 어쩌면 나도 므두셀라 증후군 환자처럼 좋은 기억만 골라냈을 수도 있지만, 지난날의 기억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이다. 사랑하고 이별했던 아픈 추억이든, 누군가에게 배신당했던 쓰라린 기억이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저 아름답고 애틋한 감정으로 남는다.
5년 전 세상을 떠난 두 지인의 사진을 보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을 되새긴다. 이른 나이에 애석하게 세상을 떠난 그들이 그립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기분은 쓸쓸하지만, 그래도 살아있어 나는 그들과 함께했던 소소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음 짓는다. 맞다, 누군가를 사랑했고 또 그 누군가가 나를 사랑했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옛 추억이다. 그래서 지난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울 수밖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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