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뒷마당 잡목들을 정리하다가 유난히 둥치 굵은 나무를 발견했다. 소나무와 도토리나무의 연리지였다. 신기했다. 연리작용은 보통 같은 종의 나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던데, 어떻게 서로 다른 두 나무가 연리지가 되었을까?
십오 년 전 이사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지금에야 눈에 띈 것을 보면, 연리현상은 거의 십 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찬찬히 살펴보니 소나무 뒤편에 떨어졌던 도토리가 싹을 틔워 자라면서 소나무 둥치를 파고 들어간 것 같다. 뒤편의 도토리나무는 마치 소나무 둥치에 기댄 것이 당연한 듯 양쪽 가지들을 쫙 벌린 채 업혀있는 모습이었고, 소나무는 마치 버팀목이 되기를 자청한 듯 하늘을 향해 꿋꿋하게 솟아있었다.
오래 전 한국 여행길 어느 마을에서 연리지를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무슨 큰 문화재인양 연리지 둘레에 철책을 치고, ‘사랑나무‘라는 팻말을 달아 놓았었다. 그때는 흔치않은 자연현상에 괜한 의미를 붙여놓고는 감성팔이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었나. 둥치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연리지를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나 지극한 희생에 비유하는 것에 정말 공감이 갔다.
겉보기에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지녔지만, 연리지 속에는 고통과 인내가 숨어있다. 따로 자라던 나무들이 만나 부대끼며 생긴 상처에 서로의 결이 합을 이루는 일이다. 혼자일 때보다 더디게 자랄 수도 있고, 버티기 위해서는 더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연리된 나무는 양분과 수분을 주고받기 때문에 한쪽이 죽어도 다른 쪽의 도움을 받아 계속 꽃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는 일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부딪치며 상처를 주고받아도 떠나지 않고 오랜 시간 곁을 지켜준 사람들, 상처 난 자리에다 결을 맞춰가며 묵묵히 버팀목이 되어준 부모, 아내와 남편 그리고 친구의 사랑이 마치 연리지 같지 않은가.
잠시 지난날의 나를 생각해 본다. 마치 가족을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듯, 자신의 희망 따위는 애당초 없었던 사람처럼 묵묵히 버텨준 소나무 같은 남편이다. 지금까지 굴곡 없이 살아온 것이 나 혼자서 이뤄낸 것인 양, 나만 힘들었던 것처럼 툴툴대고 살았다. 둥치를 파고들어 무게를 얹어 놓고 잔바람에도 가지를 흔들어대는 도토리나무 같은 아내가 짐스러웠던 적은 없었을까? 버팀목이 되어 사느라 힘들지는 않았을까?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생의 유한함을 어찌 바꿀 수 있으랴. 이제 남은 생이래야 점점 수척해지는 노년의 삶일 뿐이다. 세월이 흐르니 부부 중 하나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들을 종종 보게 된다. 한 쪽 나무가 떠난 후에도 남은 나무는 제 힘으로 생을 지탱하고 줄기와 뿌리를 통해서 계속 영양분을 준다는 연리지처럼, 생전에 함께 했던 기억들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힘이 되면 좋겠다.
그 추억 속 이야기들이 남겨진 사람에게 생기를 줄 수 있다면, 남은 이의 삶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두 그루의 다른 나무가 만나 상처를 받고, 그 자리에 서로의 결이 닿아야만 이룬다는 연리지로 부부인연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하늘 아래 모든 존재가 인간에게는 스승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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