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모임이 끝난 후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내 앞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내게 한마디 툭 던졌다.
"가까이서 대해보니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까다로운 사람이신 것 같아요."
그녀와는 세 번째 만남이었다. 뜬금없는 그 말이 흉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마음에 들어서 얼른 말을 받았다.
"맞아요, 내가 좀 그렇지요? 나이가 들어도 그게 잘 고쳐지질 않아요."
내 대답에 내 옆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던 남자 지인이 말을 거들었다.
"아, 네. 황 선생님은 정말 원리원칙주의자랍니다."
식당에 왔으면 맛있게 밥이나 먹을 일이지, 뜬금없이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람. 내가 언짢아하는 기색이 보였는지, 그녀가 얼른 말을 받았다.
"지금 무지 칭찬받고 있는 거 아시죠?"
그녀의 말에 좌중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고, 헤어질 때까지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들의 말처럼 나는 정말 원칙주의자일까? 사실 나는 변칙을 싫어한다. 원칙은 지키라고 만든 것이다. 원칙만 제대로 지키면 아무 문제 될 일이 없는 데, 굳이 변칙을 쓰면서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삶의 신조이기도 했다. 한편 원칙주의자는 고리타분하고 융통성 없이 고집을 내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고, 나름 혁신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었기에 남들의 눈에 내가 원칙주의자로 보이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어린 시절, 사람은 모름지기 원칙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 때는 그만이 그저 어른들의 잔소리 같아서 귀넘어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원칙이란 나침반과 같다는 것을. 나침반의 바늘은 언제나 북쪽을 가리킨다. 내가 드러눕든 자빠지든 물구나무를 하던 방향을 잃지 않는 게 나침반의 원칙이다. 하지만, 자침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손에 쥐고만 있다면 나침반은 아무 쓸모가 없다.
각자의 삶에도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 나는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달라져도 정직, 성실, 배려 같은 보이지 않는 가치야 말로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믿는다. 원칙을 지킨다고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원칙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자신만의 나침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원칙에 매몰되어 살지만 않는다면, 나는 편법이나 타협적인 사람보다는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좋다. 그런 걸 보면 내가 원칙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이 놀랄 일도 아닌 듯하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강물의 원칙은 흐름이다. 바다까지 가는 길목에서 강물은 끊임없이 마주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계곡을 만나면 성급하게 굴렀다가, 바위를 만나면 휘돌아 흐르고, 벼랑 앞에서는 폭포가 되었다가, 평야를 만나면 굽이굽이 여유롭게 흐른다. 바다에 도달하기 전까지 강물은 많은 변화를 겪는다. 흐르는 강물이 인생길에 비유되는 까닭이 바로 그 점이다.
확고한 원칙이 인생살이의 중심축이라고 해도. 세상에 발맞추지 못하는 원칙은 고집일 뿐이다. 나침반 바늘만 들여다보고 걷다가 앞의 절벽을 보지 못해 추락하듯이. 흐름을 벗어난 강물이 웅덩이에 갇히면 결국 썩어버리듯, 진정한 원칙 없이는 변화할 수 없다. 오늘 남에게서 원칙주의자라는 딱지를 받은 것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삶의 원칙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 삶 속에서 변해야할 것과 변하지 않아야할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