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하고 깔끔한 맛의 새꼬막
육질이 단단해 쫄깃한 참꼬맛
일본서 고급 식재료인 피꼬막
탕^무침^볶음$ 먹는 법 무궁무진
겨우내 엄마의 밥상에 올라오는
꼬막 무침은 언제나 반가운 반찬이었다.
술자리에서 꼬막 데침 안주를 처음
먹었을 때는 어른이 됐다는 표식을
받은 것 같았다.
슬쩍 데쳐 나온, 김 나는 꼬막은 엄마의 반찬과 달리 전혀 다정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꼬막 한 무더기가 커다란 접시에 쌓여 나왔다. 누군가가 거들먹
거리며 숟가락 끝을 꼬막의 두툼한
엉덩이에 집어 넣어 비틀어 까는 기술을
전수해줬고, 그날 밤 어린 술꾼들은
취하지도 못하고 난생처음 그 낯선 것의
껍질을 일일이 까야 했다. 어설픈 손길에
꼬막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 꼬막 한 알 스스로
입에 넣기란 그토록 힘든 일이었다.
꼬막이 알려준 그 먹먹한 불편. 다정한
울타리 밖으로는 깡마른 겨울 같은
삭막함이 세상에 있음을 그렇게 알았다.
그래도 그렇게 노력해서 깐 꼬막이 더
맛있다는 것 또한 배웠다.
겨울의 별미 꼬막
겨울부터 봄까지, 갯벌에는 꼬막이 발에 채인다. 원래 꼬막이라고 부르는 꼬막조개는 오로지 참꼬막이다. 17,18개의 깊은 골이 패여 있는데 이 방사륵(放射肋)은 점선처럼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생김새를 물끄러미 들여다 보면, 한옥의 기왓장이 떠오르는 매끈한 모양이다. 물이 드나드는 조간대부터 수심 10m 사이의 펄에 콕 박혀 사는 조개다.
피꼬막이라고 부르는 꼬막은 체급부터 다르다. 참꼬막과 새꼬막이 커봐야 몸 길이 4cm 정도인 데 비해 피꼬막은 작은 것이 4cm부터다. 큰 것은 나무꾼 주먹만하게도 자란다. 덩치에 걸맞게 수심 50m까지도 무리 없이 산다. 42줄 내외의 방사륵이 패여 있고, 가까이 들여다 보면 마치 가시가 돋아난 것처럼 털이 무성하다. 큰 피조개라고도 부르는데, 시장에서 피조개라고 한다면 대개는 이 피꼬막을 얘기하는 것이다.
‘피조개’는 새꼬막의 다른 이름이다. 시장에서는 그냥 꼬막이라고 하는 것이 새꼬막으로 통한다. 가장 흔하고 싼 꼬막조개다. 체급이나 사는 곳도 꼬막과 비슷하지만, 방사륵 개수가 두 배 가까이 차이 나서 속거나 헷갈릴 일이 없다. 새꼬막은 보통이 32줄, 31줄부터 36줄까지 방사륵이 촘촘하게 패여 있다. 피꼬막과 마찬가지로 가시 같은 털이 돋아 있다. 삶아 놓으면 내장이 밀크 초콜렛 색으로 비친다.
흔히 참꼬막이 더 맛있고 새꼬막은 맛이 덜하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건 또 아니다. 참꼬막은 육질이 단단해서 쫄깃하게 씹는 맛이 좋은 반면 살집이 적어 아쉽다. 첫 맛은 찌릿하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나온다.
꼬막류는 체액이 적혈구를 갖고 있어 피처럼 붉은 색을 띠는데, 참꼬막을 삶아 놓으면 다크 초콜렛처럼 새카맣게 핏물이 멍울지는 것이 특징이다. 달달하고 깔끔한 맛의 새꼬막은 살집이 도톰하고 야들야들해서 부드러운 맛에 먹는다. 상대적으로 소출이 적은 참꼬막과 흔하디 흔한 새꼬막 사이의 가격 차이가 크게는 서너 배까지도 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비싼 것이 더 맛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육질이 단단한 참꼬막은 쫄깃하게 씹는 맛이 좋고 씹을수록 단 맛이 난다. 소출이 적어 귀하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피꼬막 역시 새꼬막보다 훨씬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데, 일본으로 수출되면 고급 식재료로 여겨져 더 좋은 대접을 받는다. 초밥 재료 중 고급 부류에 속하는 ‘아카가이(赤貝)’가 바로 이 피꼬막이다. 살 부분을 반으로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사용하는데, 날개살도 따로 손질해 초밥 재료로 올리기도 한다. 피꼬막 날개살 초밥은 ‘히모’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회로 먹거나, 역시 삶아 먹는다.
꼬막 맛에 눈뜨다
꼬막은 데쳐도 삶아도 쪄도 맛있지만, 아무튼 가볍게 익히는 것이 포인트. 스테이크로 치면 레어에서 미디엄 레어 정도로 익히는 것이 알맞은 익힘 정도다. 이렇게 슬쩍 익힌 꼬막은 껍질을 까 호로록 먹으면 수고스럽기는 해도 자연스럽게 밴 짠맛에 별다른 간도 필요 없이 입에 짝짝 붙는다.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를 쓴 김지민씨는 증기로 찌는 방법을 최고로 친다. 꼬막의 육즙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찐 꼬막에 간장과 고춧가루, 참기름, 다진 마늘, 쪽파 썬 것을 섞은 양념장을 얹을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다. 고춧가루를 빼고 간장과 다진 마늘과 파에 설탕을 살짝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도 꼬막과 잘 어울린다고 김씨는 귀띔했다.
내로라하는 요리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꼬막 먹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여느 조개가 탕이나 무침이나 볶음이 되듯, 꼬막도 마찬가지다. 양식에도, 중식에도, 일식에도 꼬막을 먹는 좋은 방법이 얼마든지 많다.
우선은 기본기부터. 잘 삶는 방법이다. ‘목포낙지’의 최문갑 셰프는 솥에 물을 끓이다가 미지근한 온도에서 꼬막을 넣고 한 방향으로 돌려 저으면서 삶는다. 중구난방으로 저으면 꼬막에서 나온 지저분한 것들이 다시 섞인다. 팔팔 끓을 때 넣지 않는 이유는 지나치게 뜨거운 온도에서 삶으면 맛이 덜하기 때문. 꼬막은 다른 조개처럼 익혀도 껍데기가 180도로 활짝 벌어지지 않는다. 몇 mm만 입이 열려도 익은 것이다. 새꼬막이나 참꼬막은 한두 알만 입을 열어도 나머지도 다 익은 것으로 치고 건져내면 된다. 피꼬막은 절반 정도까지 벌어져 익은 정도를 가늠하기 쉽다.
‘쿠마’ 김민성 셰프도 꼬막을 한 방향으로 저어가며 삶는다. 뜨거운 물에 넣고 속으로 열을 세며 딱 10바퀴를 돌리고 빼내면 알맞게 익는다. 그의 비법은 양념장에 있다. 간장에 쪽파, 매실액, 참기름, 깨, 고춧가루로 양념장을 만드는데, 중국식 고춧기름인 라유를 아주 조금 넣으면 맛이 색달라진다. 쿠마의 꼬막 양념장에는 다진 마늘은 굳이 넣지 않는다. 이렇게 먹을 때는 보드라운 새꼬막이 제일 잘 어울린다.
양식과도 환상의 궁합
꼬막으로 파스타를 만들어도 맛이 특별하다. 조개가 들어가는 모든 파스타에 꼬막을 대신 넣으면 한층 더 깊은 바다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라노 파다노 치즈를 갈아 올리면 감칠맛과 고소함이 펑펑 터진다. ‘리스토란테 에오’ 어윤권 셰프는 고소한 크림에 짭짤한 조갯살이 어우러지는 클램차우더를 꼬막으로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꼬막 데친 물을 육수로 사용해 우유와 생크림을 넣고 수프를 끓이다가 육수를 낸 꼬막을 잘게 다져 섞으면 완성되는 간단한 조리법인데, 어울리는 꼬막 종류는 ‘개꼬막’이다. 새꼬막보다 살짝 크고 방사륵이 넓게 패인 종류인데, 시장에선 새꼬막과 구분하지 않고 섞어서 유통되는 꼬막이다. 개꼬막을 찾지 못하면 새꼬막을 써도 무방하다.
최근 연희동에 레스토랑 ‘알테르 에고’, 디저트 카페 ‘오트뤼’를 낸 박준우 셰프는 꼬막으로 뜨거운 샐러드를 만들었다. 돌나물부터 상추까지, 냉장고에 남은 채소 무엇이든 먹기 좋게 자른 뒤, 살짝 찐 꼬막 살을 발라 따뜻한 채로 얹는 웜 샐러드다. 올리브 오일과 레몬즙, 소금 후추가 들어가는 지중해풍 드레싱에 간장과 극소량의 고춧가루를 더해 한국식 터치를 가미해 뿌려 먹는다. 각종 채소와 꼬막이 쌉쌀하게 어울려 입맛을 돋운다.
‘안씨 막걸리’ ‘21세기 서울’ 김봉수 셰프는 꼬막을 부야베스 스타일로 끓였다. 생선과 갖은 야채를 넣고 끓이는 서양식 스튜의 꼬막 탕 버전이다. 마늘, 무, 꼬막, 토마토, 양파, 감자 등 채소 순서로 냄비에 넣어 볶다가 시판 토마토 소스와 물을 부어 은근히 끓인다. 레몬그라스로 맛을 내는 것이 포인트다. 꼬막은 쫄깃한 맛이 살아 있는 참꼬막을 사용하고, 가니시로 파와 미나리를 얹으면 화룡점정. 버터와 설탕, 파마산 치즈를 바른 바게트 빵을 오븐에 구워내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다. /이해림 객원기자
보드러운 식감에 달큼한 맛의 새꼬막. 시장에서 꼬막이라고 하면 보통 새꼬막을 가리킨다. 참꼬막, 피꼬막보다 싸지만 맛은 뒤지지 않는다. <강태훈 포토그래퍼(Afro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