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한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미국 백인 사회에서도 인종차별 문제의 심각성을 각성하는 여론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까지 경찰개혁 입법을 준비하는 건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법질서 수호’를 내세우며 백인 지지층 결집을 도모하지만, 이번 사건이 대선 지형을 바꿀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에선 최근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급격한 민심의 변화가 감지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됐다. 지난 9일 공개된 몬머스 여론조사에서는 백인 70%가 “인종차별이 큰 문제”라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 청년이 사망해 촉발된 2015년 ‘퍼거슨시 소요 사태’ 당시보다 26%포인트나 오른 수치다.

CBS 조사에선 백인 응답자의 52%가 “백인이 흑인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있다”고 답했다. 이 역시 2015년에 비해 13%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1997년 해당 항목에 대한 조사가 실시된 이후 최고치다. 백인 사회 내부에서 ‘인종 간 기회 불평등’을 인정하는 여론이 절반을 넘은 것이다. 사법 시스템의 공정성을 물은 CNN방송 조사에선 응답자의 67%가 “백인에게 더 우호적”이라고 답했다.

여론조사 분석가인 프랭크 런츠는 “30년간 여론조사 업무를 해왔지만 이렇게 빠르고 깊게 여론이 바뀌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첫 흑인 재무장관인 코네티컷주의 숀 우드 재무장관은 1955년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14세 흑인 소녀가 집단린치를 당해 숨진 사건을 거론하며 “당시 많은 백인들이 인종차별의 잔인성에 눈을 뜨면서 민권운동이 촉발됐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했다.

여론의 변화는 정치권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그간 법질서를 강조하며 인종차별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해온 공화당도 자체 경찰개혁안 마련에 착수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개혁안 중 면책특권 폐지 등에 대해선 여전히 거부감을 보이면서도 경찰개혁의 필요성·당위성 자체는 인정하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NYT)는 “여론의 급격한 변화 속도와 강도에 깜짝 놀란 공화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법질서를 강조하며 이념 대결에 몰두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는 최근 시위대의 핵심 구호 중 하나인 ‘경찰 예산 지원 중단’을 거론하며 “급진좌파에 끌려 다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경찰을 없애려 한다”고 주장했다.

또 시위 도중 경찰에 떠밀려 넘어져 중상을 입은 70대 노인을 상대로 “극좌파 앞잡이의 ‘설정’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한 것도 하나같이 백인 지지층의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정략에 다름 아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백인 정체성 정치’를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백인들이 인종차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급격한 여론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이번 대선의 정치 풍경은 이전과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9일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조지 플로이드 추모소 앞에서 한 여자 어린이가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연합]
지난 9일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조지 플로이드 추모소 앞에서 한 여자 어린이가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