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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3도 화음

지역뉴스 | | 2024-05-17 08:13:40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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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자(시인·수필가)  

 

정기검진으로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팬데믹 이전에 만나 뵙고는 긴 시간을 보낸 우연한 만남이 예측없이 이루어졌다. 우선 반가움을 나누고 오랜만에 이루어진 만남이라 두서 없는 이야기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진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두었기에 그 동안의 이야기가 앞다투듯 밀려나올 형국이라 엉겁결에 질서를 잃기 전에 차분히 여쭙게 되었다. 시한부였기에 무엇보다 마음이 저려왔던 터였는데 다행히 특별한 놀이터에 아이를 잠시 맡겨두고 두 분이 건강상담차 병원을 방문하신 것이라 한다. 단기 돌봄 센터의 재택 의료 담당을 만나게 되면서 가끔씩 시간 여유를 얻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아이를 돌보면서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셨던 지난날 기억이 새롭다. 아이도 그 사이 많이 자랐고 엄마 아빠를 부를 줄도 알게 되었고 시한부로 받은 생명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시며 엷게 그 기쁨을 내색하시는 은은한 표정 속에서 아픈 아이를 둔 부모 마음을 여실히 읽을 수 있었다. 시한부 삶을 이어가고 있던  아이 모습이 떠오른다. 가슴이 깊은 물 밑에서 호흡 곤란을 느끼는 것처럼 아팠다. 살아온 세월이 노년에 접어든 우리보다는 한참을 더 살아내야 할 분들이지만 존중받으며 주위에 영향력을 끼치는 부모였었고 본을 보이시는 분들이셨다. 진료를 기다리시는 두 분과 만남을 약속하고 석별을 나누었다. 아릿한 통증 같은 서정이 스치운다.

한적한 오후 시간에 읽고 있던 수필집을 다시 집어 들었다. 어느 청년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 의미 없이 보내는 하루하루,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왜 살아야만 하는지.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다. 그동안 내가 배워온 것은 그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들, 무엇이 될 것이다 하는 것들, 시간은 흐르는 대로 그냥 흐르고 나는 내가 누구 인지도 계속 모르고 있다. 계속되는 상념과 그 상념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것은 죽음, 존재의 죽음이란 것에 대한 호기심, 열정, 근원적 공포, 내 삶의 죽음과 그 인식의 멎음과 이어지는 영겁의 시간, 그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나의 죽음, 아니 존재하지 않는 나의 존재.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일상이란 존재하지 않고 이젠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도 회의를 느낀다.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 세상에 대한 회의, 영겁의 시간에 대한 회의, 몇 그램 무게의 영혼과 정신에 대한 회의……’. 읽던 책장을 덮었다. 더 읽어지지가 않아서.

늦은 밤, 묵상 시간에 내가 낼 수 있는 소리는 어떤 소리들이 있을까. 생각이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 숨이 막힐 정도로 세상은 온통 옳고 그름의 판단이 희석되는 오리무중 지경에서 앞으로도 전진할 수 없는, 뒤로도 물러설 수 없는 마치 논밭에 풀이 무성해 호랑이가 새끼 칠 지경이라는 속담이 떠오를 판국이다. 어느 한 군데 상큼한 구석이 없다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미학 부재가 장기전에 돌입한 것 같다. 

고국 또한 정계가 교체되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했지만 이념 기습이 무섭게 덤벼들고 당장의 현실만 바라보는 치국이 활개를 치고 있다. 선거를 앞둔 이 땅도 여론조사를 통한 일시적인 승리와 덧없는 영광으로 점철된 최근의 나날들이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진정한 성공, 의미 있는 발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유익한 삶의 원천이 태초부터 현대라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한 치도 변하지 않은 한 톨도 덜어낼 수 없는 한 통속이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창조 이후 흘러간 시간이 무색하게 질서가 아닌 어쩌면 적당한 반칙에다 비리, 약속 따위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세상으로 가고있다.

위배와 비위는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고 편법으로 약조를 깨뜨리고, 신실한 믿음을 저버리고는 힘을 과시하고 버티며 유능한 자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워주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세상 속에 둘러싸여 있는 환경을 통제할 수 없음을 간파해 버렸기에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해낸 것이리라. 가까운 예로 속도 위반은 교통법규상 제한되어 있는 차량의 속도를 넘어 속력을 내는 위배행위다. 사람의 의지를 갖추고 사회질서를 지키지 않고 어기는 짓거리는 법률에 의한 처벌 대상으로 일정한 규칙이나 관습 위반에는 제재가 가해진다. 

공법에서 의무 이행을 태만히 한 사람에게 벌금, 형벌을 부과하게 되고, 경제 무역 거래에서도 수량, 품질, 포장 등의 계약 위반 사항이 있는 경우에는 클레임 제재로 손해 배상을 청구하거나 의의를 제기하게 된다. 선거법 위반 행위, 건축법 위반 행위들도 고발 대상이 된다. 세상이 발전이라는 바탕 위에 질서를 지켜내려는 일환으로 법률을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살아가면서 규범을 깨뜨린 결과이다. 하지만 인간은 일찍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한계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기도 하고 이 한계를 어떤 측면이든 능력없음을 무마하기 위해 외양이라도 번듯하게 가꾸려 한다. 

자신만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기에 여념이 없는 현대인들이 성공과 행복 개념을 규정 짓는다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해 낼 수 있을까. 쓸모 없는 자리에 서 있음도 잊은 채인데. 세상의 작은 측면이라 우길 수도 있겠지만 인생들의 또다른 이면의 부끄러움을 무엇으로 덮을 수 있을까. 독백이 아닌 외침이 되려 한다. 오전 일정과 오후의 책 읽기, 늦은 밤 묵상 시간까지. 오늘 하루 일과를 그려낸 화음은 3도 화음 연주였다. 세상은 무수한 화음으로 어우러지며 색다른 화음을 창출해낼 것이나 작은 자의 하루 일상은 2도 화음 정도면 족할 것 같다. 화성학에서 2도화음, 3도화음은 불완전 협화음으로 ‘간이 딱 맞는 음식’과 비견된다고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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