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노인 요양원 거주 비율 인종 중 가장 낮아
80 넘어 ‘커밍아웃’, 동성파트너와 제2의 인생 만끽
미국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늙으면 어디서 살아야 하나? 나도 돌봄이 필요할까?’를 걱정하는 미국인이 많다. 대부분 요양원에서 노후를 보내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워싱턴포스트가 센서스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85세 이상 노인 중 약 10%만 요양원 생활을 한다. 85세 이상 노인 인구 950만 명 중 절반은 요양원 대신 배우자나 성인 자녀 등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약 40%는 생활 지원 주택 등의 시설에서 홀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85세 이상 노인 중 약 25%는 자녀 및 손주 세대 등과 함께 한 지붕 아래 사는 다세대 가구 생활자였고 약 8%는 요양원이나 기억보호시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전국 각지에서 거주하는 85세 이상 노인의 삶을 추적한 결과도 조사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가주 샌린드로 거주 89세 여성
교사로 평생 헌신한 나티비다드 소리아노 페르난데즈(이하 페르난데즈)는 필리핀에서 나고 자랐다. 페르난데즈는 현재 북가주 샌 린드로에서 딸과 함께 노후를 보내고 있는데 딸은 평생 어머니 곁을 떠난 적이 없다. 페르난데즈에 따르면 자녀와 함께 여생을 보내는 것이 필리핀 문화이고 그녀도 그렇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
페르난데즈 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도 비슷한 방식의 노후를 선택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2021년 미국 지역 사회 조사’(2021 American Community Survey)에 따르면 아시아계 미국인 중 요양원 생활을 하는 비율은 전체 인종 중 가장 낮았다. 필리핀에서는 가족들이 한 부지에 작은 집을 여러 채 짓고 함께 모여 사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페르난데즈 가족은 이 같은 필리핀식 가족 문화를 미국으로 옮겨왔다. 페르난데즈가 딸, 사위, 두 손주와 사는 집 옆에는 장남이 살고 있고 그 옆에는 온 가족이 출석하는 교회가 있다. 페르난데즈는 매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교회에 걸어가 예배를 드린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거주 101세 남성
레스터 발레 시니어(이하 발레) 무려 50년 전인 1972년 불과 1만 8, 500달러에 장만한 집에 지금도 살고 있다. 집을 살 때 한 집에서 평생 살겠다는 각오를 101세를 넘긴 지금까지 꿋꿋이 지켜 나가는 중이다. 그의 일과는 반려견 피위와 함께 시작한다.
오전 피위를 데리고 인근 샌드위치 가게로 산책해 아침을 먹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그가 100세를 넘긴 나이에도 혼자 살 수 있는 것은 친절한 이웃이 많기 때문이다. 발레는 “이웃 주민들이 나를 마치 아들처럼 대한다”라며 “아들(?) 걱정에 음식을 들고 오는 이웃이 많다”라고 이웃 자랑을 했다.
루이지애나주에는 발레처럼 고령에도 혼자 거주하는 노인이 적지 않다. 85세 이상 남성 중 약 24%가 독거노인으로 전국 평균보다 조금 낮은 수치다.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높은 여성 독거노인 비율은 훨씬 높다. 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루이지애나주 85세 이상 노인 여성 중 약 44%가 독거노인이다.
젊어서 미식 축구팀 루이지애나 세인츠의 구장 감독관으로 일했던 발레는 50년간 동고동락한 부인이 사망한 6년 전부터 혼자 생활하고 있다.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이 자기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자고 여러 번 권유했지만 발레는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라며 “천국에 갈 때까지 이 집에서 혼자 살고 싶다”라며 완강히 거절하고 있다.
■유타주 사우스 오그던 거주 89세 남성
래리 퀸은 90세를 앞둔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활동적이다. 여전히 등산을 즐기는 그는 하루 5,000보를 걷는 것이 주요 일과 중 하나다. 집안에서뿐만 아니라 산책 그룹, 영화 그룹, 테라피 그룹 등 여러 그룹에 참가하며 사회적으로도 무척 바쁜 노후를 보내고 있다.
퀸은 84세였던 2018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했다. 그리고 85세인 이듬해 부인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부인과 이혼한 해 그는 처음으로 견딜 수 없는 고독함을 경험했지만 2021년 동성애 그룹에 가입하고 파트너를 만나면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퀸과 파트너는 작년부터 한 집에서 거주하는데 퀸의 자녀들과 이웃 주민들은 보수적인 지역사회 분위기와 달리 이들에게 우호적이다. 이른바 ‘인싸’를 자처하는 퀸과 파트너도 이런 주민들과 매우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퀸은 “나를 인정해 주는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어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파트너와 매일 5,000보를 목표로 산책에 나선다.
■하와이 카우아이 거주 93세 여성
캐롤 칸나의 삶은 가족을 떠난 적이 없다. 현재 그녀는 딸과 사위와 함께 그녀의 집에 살고 있고 아들의 집은 바로 옆집이다. 그리고 두 집 건너에는 다른 딸이 살고 있다. 칸나는 “가까운 이웃인 자식들을 매일 볼 수 있어 행복하다”라며 입가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하와이에는 칸나처럼 가족과 함께 사는 노인 비율이 매우 높다. 센서스 자료에 의하면 85세 이상 하와이 주민 중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노인 비율은 약 66%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딸 가족이 칸나의 집으로 들어온 것은 2001년 칸나의 남편이 병을 앓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남편은 안타깝게도 그해 결국 세상을 떠났다. 딸이 인근에 혼자 살 수 있는 다른 집을 알아봐 주겠다고 했지만 텅 빈 집에서 혼자 살기 싫었던 칸나는 딸을 불러 같이 살기로 결심했다. 오래 산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어 좋지만 나이가 들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딸 가족이 집을 들어오면서 그녀의 한계 극복에 도움이 되고 있다.
■오하이오 프레드릭타운 거주 100세 남성
1세기를 살아온 로버트 S. 그렉은 2주마다 집에서 직접 초콜릿 칩 쿠키를 굽는다. 인근 농장에서 일하는 아들에게 갖다주기 위해서다. 올해 3월 100세 생일 잔치를 한 그렉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쿠키를 계속 만들어 아들에게 갖다줄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전 면허증이 필요한데 100세 생일이 지나자마자 운전 면허증을 갱신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렉도 다른 노인과 마찬가지로 6년 전 부인과 사별한 뒤부터 독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인근에 사는 아들이 매일 와서 아버지 안부를 챙기고 딸은 아버지를 정기적으로 병원에 모시고 간다. 그의 딸은 “아버지가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 요리하고 생활하는 것이 아버지가 오래 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준 최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