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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의 사람과 사람 사이] 어떤 역이민

지역뉴스 | | 2023-12-19 12:06:59

안상호의 사람과 사람 사이, LA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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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타운에서 작은 스시 집을 하던 허정호(66) 씨는 이번 연말로 미국 생활을 접었다. 업소를 넘긴 그는 지난 주 한국 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생활 23년을 끝내고 역이민을 결심했던 이유는 그렇게 오래 살았어도 미국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여전히 불편한 것투성이였다. 원인은 무엇보다 너무 일만 하고 산 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에 갇혀 산 것이니 일은 감옥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IMF 금융위기 당시, 다니던 회사가 없어졌다. 대책이 없었다. 미국이 떠올랐다. 2000년 초 LA에 왔다. 공항에 픽업 나온 친구를 따라다니며 한 2주 페인팅을 했으나 맞지 않았다. 미국가서 스시를 배우면 먹고는 살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국서부터 들었다. 스시 학교를 다니다 바닥부터 배우자는 생각에 뷔페 식당에 들어갔다. 초보 스시 맨도 할 만한 일이었다. 잠시 마켓 생선부와 푸드 트럭을 한 적도 있으나 지난 20여년 간 스시 한 길을 걸었다. 할리웃 배우 손님이 많았다는 선셋의 스시 집, 타운의 알만한 스시 집 등을 두루 거쳤다. 애리조나도 갔다 왔다.  

여러 식당을 옮겨 다닌 것은 영주권 때문이었다. 가족 모두 방문 비자로 눌러 앉은 케이스. 영주권 스폰서를 약속하는 업소를 찾아 다녔다. 분통 터지는 일도 많이 겪었다.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하면서도 일했는데 막판에 말을 바꾼 업주도 있었다. “친구들은 다 운전시험 봤는데…” 라는 아들에게는 자전거를 사 줬다.                                                                                                                                                 우여곡절 끝에 체류신분 문제가 해결된 뒤 타운에 작은 스시 집을 열 수 있었다. 600스케어 피트 남짓, 테이블 4개에 많이 앉아야 19명. 리커 라이선스가 없었다.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하지만 이 식당을 10여년 하면서 여기서 돈을 벌었다. 

스시 집은 소셜 미디어에서 5점 만점에 4.7 정도를 유지했다고 한다. 모르는 손님들이 이걸 보고 찾아왔다. 앉을 자리가 없을 때도 적지 않았다. 매일 새벽 장을 봤다. 그날 생선은 그날 다 쓰는 것이 원칙. 여기에 부부의 솜씨와 정성이 더해졌다. 홀에 파트 타임 서버를 썼으나 주로 일은 부부 둘이서 했다. 특히 팬데믹 후에는 딴 사람을 쓰지 않았다. 

한 번도 술을 판 적이 없지만 술 때문에 법원에 3번 불려 갔다. 술을 판다는 주변 신고 때문이었다. 매일 두 차례씩 끈질기게 신고가 들어온 적도 있다는 이야기를 주류통제국 검사관에게서 들었다. 더러 술을 들고 와 마신 손님은 있었다. 법원에서는 모두 경고로 끝났다. 

나이가 들면서 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아내에게서 전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인건비를 아낀 만큼 몸에 무리였을 것이다. 영업 시간도 크게 줄였다. 일주에 이틀 쉬고, 점심과 저녁에 각 2시간 반 정도만 열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시간, 미국 생활이 뻔해 보였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지금처럼 살면 억울하다는 생각을 코로나 전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르는 전화가 오면 “노 땡큐” “노 잉글리시” 하면서 끊었다. 별거 아닌 우편물도 부담이었다. 학교 산악반 출신인 그는 산에 다닌 지 50년이 넘었다. 하루 쉬는 날 바위 타는 게 거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새 두 자녀는 모두 결혼했다. 막상 여유가 생겨 부부가 이제 여행을 떠나려고 해도 예약부터 쉽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미국서 섬처럼 살았다. 다른 데 눈 돌릴 여유가 없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 밥을 번다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아파트 렌트는 월 2,500달러, 20년가까이 타운 한 아파트에서만 산 덕에 이 정도다. 이 집세면 한국서 살겠다는 계산이 섰다. 한국서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 내외의 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 놨다. 고향인 대구에서 외곽으로 좀 빠지면 이런 집들이 많다고 들었다. 

20년이 넘는 한국과의 시차 극복은 걱정이다. 그새 알게 모르게 미국물이 들었다. 한국은 많은 것이 변했다고 들었다. 반면 더 단단하게 고착된 것도 있는 듯하다. 한국은 말이 통하는 또 다른 외국일 수 있다. 적응에 문제는 없을까.

한국가면 내 식 대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우선 전국의 전통 장을 다닐 계획이다. 마라톤 대회도 알아봤다. 각처에서 열리고 있는 대회가 수 백개 된다고 들었다. 4년 됐지만 8,000마일 밖에 뛰지 않았다는 사륜구동 지프를 먼저 배에 실어 보냈다. 크리스마스 날 도착한다. 탱크처럼 지프를 몰고 산천을 누빌 생각이다. 불교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말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역이주 대열에 합류한 허정호씨의 이야기는 그만의 스토리가 아니다. 그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미국에 정착한 이웃이 한 둘일 것인가. 말만 하지 않을 뿐 들키고 싶지 않은 상처와 좌절을 경험한 이민 인생은 많다. 지금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 이주를 고려하고 있다는 이도 적지 않다. 

헤어지면서 2년쯤 뒤 다시 만나 그의 좌충우돌 한국 정착기를 한 번 듣자고 했다. 피차 확신할 수 없는 약속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안상호 LA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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