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 실천 앞장 산악인 엄홍길 대장
세계 최초로 8,000미터 이상의 최고봉 16좌 정상에 오른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인생 17번째 도전에 나서고 있다. 가난한 네팔 어린이들의 문맹을 깨우치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그것이다. 높은 산 정상에 서는 것을 넘어 산에서 만난 오지 사람들을 위한 인류애를 실천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엄홍길 대장이 지난 13일 본보에 방문해‘엄홍길 휴먼재단’ 설립 계기와 추진 중인 사업 등을 설명했다. 다음은 엄홍길 대장과의 일문일답.
-산을 오르게 된 계기는
▲어렸을 적엔 산이 싫었다. 가난 때문에 의정부 원도봉산 선인봉 바위 밑에 집을 짓고 살았다. 집에 올라가려면 40분을 걸어야 했는데 오르고 내리면서 에너지가 발산했다. 어느 순간 산이 나를 끌어당겼다. 1985년 겨울 첫 에베레스트 도전에서 처참한 실패를 맛본 후 이듬해 도전에서도 실패했다. 2차 도전에서는 낙석에 맞아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네팔인 셰르파의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충격이 너무 커서 다시는 산을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산이 나를 또 불렀다.
-세계 최초로 8,000미터 고봉 16좌 정상에 올랐다
▲8,000미터 이상의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은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이다. 등반하는 도중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산은 화창한 날씨로 품어주다가 갑자기 흐려지며 눈폭탄을 쏟아 내거나 예보와 달리 강풍이 휘몰아치는 경우도 있다. 산에 딱 가보면 인간이란 존재는 거대한 자연 앞에 먼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의 힘은 위대하고 그 힘이 내제돼 있는 산을 오른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고 위험한 일이다. 8,000미터 16좌 성공은 22년 동안 38번 도전해서 얻은 눈물의 결실이다. 그동안 10명의 동료들을 잃었다. 산은 내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허락해 잠시 길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이 받아주고 선택해줘야 이룰 수 있는 일이다.
-고 박무택 대원의 시신 수습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박무택 대원과 8,000미터를 4번 같이 올랐다.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형제 같은 관계였다. 박무택 대원은 에베레스트 8,750미터에서 망막이 손상돼 시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동료들을 먼저 내려 보내고 구조를 기다리다 사망했다. 절벽에 사망한 상태로 줄에 매달려 있는 박 대원을 생각하니 그냥 있을 수 없어 휴먼 원정대를 꾸렸다. 내 몸 컨디션이 많이 나빴고 기상상태도 나빴다. 험난한 과정을 뚫고 올라가 1년 동안 매달려 있던 박 대원 시신을 마주한 순간 끌어안고 엄청 울었다. 무거운 시신을 끌고 내려오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휴먼 원정대도 위험해 질 수 있다고 판단해 에베레스트의 양지바른 곳에 안장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인생 17번째 도전은 어떤 의미인가
▲히말라야 8,000미터 16좌 성공할 때까지 많은 생과사의 기로가 있었다. 산에게 나를 보호해 달라고 기도할 때 항상 먼저 간 동료의 가족들과 자식들을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16개 정상 등정을 마치고 어느 순간 산 아래 세상이 보이면서 먼저 간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2008년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행동했다. 가난한 네팔 어린이들의 문맹을 깨우치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엄홍길 휴먼재단’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네팔 아이들을 보며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것은 일시적인 도움이고 교육만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10년 2번째 에베레스트 도전 때 잃은 셰르파의 고향 해발 4,960미터 팡보체에 1호 학교를 세웠다. 그 후 히말라야 오지에 16개 학교를 세웠다. 16개의 휴먼학교에 재학 중인 유·초·중·고등학생은 총 8,000명 정도 된다. 현재는 3개 학교가 건립 중에 있다. 의료 복지를 위해 자그마한 병원도 세웠다.
-재단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개인 회원들의 정기 후원금과 일시적으로 기부해주시는 분들, 기업 후원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다. 엄홍길 휴먼재단 웹사이트에서 기부가 가능하다.
-이외의 활동은
▲올해부터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내 유일의 산악영화제인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세계 산악영화를 한 데 모아 소개하면서 산악문화의 흐름과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영화제다. 56개국 120여 편의 영화가 출품됐다. 10월20일부터 10일간 진행된다. 한국 방문하는 미주 한인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한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네팔은 경제적으로 너무 가난한 나라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는 무한한 꿈과 희망이 있다. 이 어린이들의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아가고 싶다. 저의 인생 17좌를 향한 발걸음에 미주 한인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황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