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폭 3%대 하락에도 식비·주거비 등 상승 더 높아
LA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한인 최모씨는 요즘 들어 가계부를 정리하는 일이 고역이라고 했다. 수입은 크게 늘지 않았는데 식비를 비롯해 주요 생활 경비들의 오름세가 여전해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식비는 갈수록 올라 가계부에서 엥겔지수가 강제로 높아지면서 다른 곳의 지출을 줄이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외식비와 식비만을 줄여서 해결되지 않는 데 있다.
최씨는 “렌트비와 자동차 보험료 등 움직이지 않아도 지출되는 경비에 대한 물가가 여전히 비싸다 보니 어찌할 방도가 없다”며 “인플레이션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체감 물가는 더 올라 사는 게 더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폭은 3%대로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한인 및 미국 가계들이 체감하는 물가 부담은 상당하다. 특히 식비와 주거비 등 일상 생활 물가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는 데다 수입 상승은 거북이 걸음이다 보니 한인 및 미국 가계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 부담은 인플레이션의 둔화에도 불구하고 심화되고 있다.
14일 CNN비즈니스는 지난 7월 미국의 소비자 물가 인상이 한풀 꺾이면서 둔화세를 보인 것과는 달리 2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인플레이션 여파로 물가 인상이 눈덩이처럼 쌓이면서 미국 가계들의 생활 물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0일 연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는 전달의 상승률 3.0%보다는 소폭 상승한 수치지만 시장이 예상한 3.3%보다는 낮은 것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이 3%대 초반에 머무르자 전반적으로 물가 상승 둔화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인 및 미국 가계들이 느끼는 생활 물가는CPI의 둔화세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식탁 물가를 비롯해 각종 생활 관련 물가 상승은 CPI에 비해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6배에 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바구니 물가의 경우 소고기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5.3%나 올랐고 닭고기와 터키도 지난해에 비해 9.4%, 외식비는 전년보다 7.1%나 가격이 상승했다.
아파트 거주자들의 렌트비는 1년 사이에 8%나 올라 있고 자동차 수리 비용은 12.7%, 리스 비용은 10.8% 오른 상태다. 자동차 보험료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17.8%나 뛰면서 CPI 3.2%에 6배 가까이 올랐다.
다만 29.5%나 떨어진 건강보험료를 비롯해 전자와 가전제품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2년 가까이 물가 상승이 지속된 탓에 가계의 생활 물가는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상황이라 가계의 부담도 더 커졌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같은 물건과 같은 서비스를 이용했을 경우 미국 가계가 부담하는 지출 비용은 전년에 비해 매월 709달러가 더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물가 상승이 지속되면서 눈덩이 효과가 나타난 까닭이다.
물가 상승에 비해 임금 상승은 거북이 걸음이다. 지난달 임금 노동자의 시급은 전년에 비해 4.4% 인상됐다. 하지만 올해 2분기 임금 상승률은 1%에 그쳐 1분기 1.2% 상승률을 밑돌고 말았다.
이제 관심은 미국의 물가 하락 지속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6월에 비해 지난달 물가가 소폭 상승하면서 물가 하락이라고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연방준비제도 내에서도 ‘물가가 확실히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기 전까지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연준의 물가 관리 기준인 2%대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보니 미국 가계의 체감 물가 상승세 역시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