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나 ‘칼훈광장’
남부 조지아주 서배나는 18세기 영국인이 세운 도시다. 식민지 시절 목화와 담배를 수출하고 영국을 오가는 배가 출항하던 대표적인 항구도시였다. 물론 흑인 노예를 사고파는 시장도 발달했다.
지금도 대서양에 면한 항구는 미국 3대 물동량을 자랑한다. 현대자동차가 서배나 외곽에 내년 3·4분기 완공을 목표로 전기자동차 공장을 건설 중일 정도다. 또 도심 역사지구는 미국 최초의 계획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리된 도로와 공원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가 등장했던 공원도 이곳에 있다.
그런데 서배나 23개 공원 중 하나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서배나 시의회가 지난해 11월 칼훈광장이라는 이름을 없애기로 했고 최근 6명의 대체 후보 이름이 나왔다고 미 AP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칼훈광장은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출신으로, 연방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지낸 존 콜드웰 칼훈에서 이름을 따왔다. 칼훈은 1830년대 ‘노예제는 확실한 선’이라고 주장한 대표적인 노예제도 옹호론자다. 미국 남북전쟁 비극의 한 축이 됐던 인물인 셈이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과 함께 노예제 관련 인물에 대한 역사적 단죄가 시작되면서 칼훈은 대표적인 비판 대상이 됐다.
이번에 칼훈광장을 대체할 이름 후보에는 노예였던 흑인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던 여성,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 교회 중 하나를 설립했던 목사, 특수작전 조종사였으나 2014년 서배나 인근에서 훈련 도중 동료들을 구하고 숨진 육군 소령, 1963년 서배나에서 민권운동을 이끌었던 사람 등이 포함됐다. 모두 흑인이다.
1733년 영국 식민지 주민들이 서배나에 처음 정착할 때 이 지역에 살고 있었던 아메리카 원주민, 1950년대 서배나 역사 보존운동을 시작한 여성 운동가들도 후보에 올랐다.
칼훈광장 개명에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서배나 주민 데이비드 투틀은 시의회 투표를 막아달라고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투틀은 AP에 “칼훈은 우리가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미국 역사상 중요한 인물이었다”며 “나는 그가 한 일들 중 일부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것이 미국에 대한 그의 기여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시의회는 오는 24일 광장의 새로운 이름을 결정한다. 이번에 6개의 이름을 권고한 지역 유적지 및 기념물 위원회 크리스토퍼 먼로 위원장은 AP에 “어떤 이름이 선택되든 간에 그것은 서배나의 더 많은 다양성을 대표하는 이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배나 인구 중 54%가 흑인이다.
<워싱턴=정상원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