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거래가 늘어나는 여름철을 앞두고 주택 시장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높은 집값과 이자율에도 불구하고 내 집 마련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뜨겁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팔겠다는 사람이 없어 일부 지역에서는 지난해 초와 비슷한 과열 경쟁이 재현되고 있다. 이자율이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올라 수요는 한풀 꺾였고 주택 가격이 상당 폭 떨어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재융자를 통해 낮은 이자율로 갈아탄 주택 소유주들이 집을 내놓지 않는‘스테이 풋’ 현상이 나타나면서 집값은 요지부동이다. 최근 주택 시장 상황을 살펴본다.
떨어져야 할 집 값은 매물 가뭄으로 안 떨어져
재융자로 낮은 이자율 받은 소유주 집 내놓기 꺼려
미국인 10명 중 8명,‘집을 사기에 좋지 않은 시기’
◇ 소득 30% 내야 임대 가능
높은 집값도 문제지만 주택 렌트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높은 렌트비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기정사실처럼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시장 조사 기관 무디스는 지난해 4분기 미국 평균 주택 렌트비 부담이 중간 가구 소득의 30%를 넘어섰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무디스가 조사를 시작한 1999년 이후 처음으로 해를 넘긴 올해에도 큰 변화가 없다. 올해 1분기 렌트비가 가구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6%로 지난해와 비슷하다.
재정 전문가들은 주택 렌트비가 가구 소득의 30%를 넘으면 가계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조언하는데 렌트비 부담이 이 경계선을 2분기 연속 넘어선 것이다. 무디스에 따르면 주택 렌트비는 연간 약 2%씩 오를 전망으로 앞으로도 세입자 가구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루 첸 무디스 이코노미스트는 “임금 상승 속도가 주거비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미국 가구에 재정적 어려움이 클 것”으로 우려했다. 주택 렌트비 비중이 높은 도시는 뉴욕, LA 등 대도시와 팬데믹 기간 일시적으로 이주가 급증한 도시들이다.
◇ 10명 중 8명 ‘지금 집 사면 불리’
본격적인 성수기를 맞아 주택 시장이 후끈 달아올랐지만 주택 시장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은 뜨뜻미지근하다. 매물 부족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다시 과열 경쟁 현상 나타나는 것과 달리 지금을 주택 구입 적기로 생각하는 미국인은 크게 줄었다.
여론 조사 기관 갤럽의 발표에 따르면 ‘집을 사기에 좋지 않은 시기’라고 생각하는 미국인은 78%로 1978년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금 집을 사면 안 된다’는 답변은 지난해에도 69%로 높았는데 올해 더 많아진 것이다. 반면 지금 ‘집을 사기에 좋은 시기’라는 생각의 미국인은 올해 21%로 지난해 30%에서 더 떨어졌다.
주택 구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늘어난 것은 높은 주택 가격과 높은 모기지 이자율의 영향이 크다. 또 향후 주택 가격에 대한 부정적 전망도 미국인들의 주택 구입을 망설이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의 조사에서 앞으로 주택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는 미국인은 지난해 70%에서 올해 56%로 줄었지만 하락할 것이라는 답변은 12%에서 19%로 늘었다.
◇ 다운페이먼트 비율 낮아져
지난해 내 집을 마련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다운페이먼트였다. 다운페이먼트 비율을 높여야만 치열한 구입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올들어 구입 경쟁이 다소 완화되면서 다운페이먼트 부담도 줄었다. 온라인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터닷컴에따르면 올해 1분기 다운페이먼트 비율은 평균 13%로 지난해 2분기 최고치 14.1%보다 소폭 떨어졌다.
지난해와 2021년 주택 시장이 매물 부족으로 전례 없이 ‘핫’한 시기였다. 매물 한 채에 여러 명의 바이어가 오퍼를 제출하는 현상이 일반적이었고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높은 바이어가 매물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높은 오퍼는 모기지 대출 승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거래가 깨질 위험 낮은 것으로 여겨진다.
올들어 주택 시장 열기가 한풀 꺾이면서 다운페이먼트 비율을 높일 필요가 없어진 이유도 있지만 모기지 이자율 상승과 인플레이션으로 바이어들의 현금 사정이 악화된 원인도 있다. 주택 거래 감소로 낮은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적용되는 정부 보증 융자를 고려하는 셀러가 많아진 점도 다운페이먼트 비율 하락 요인이다.
◇ 미국 디폴트, 주택 시장에 직격탄
미국 부채 한도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주택 시장이 한순간에 얼어붙게 될 것이란 보고서가 나왔다. 온라인 부동산 업체 질로우닷컴의 제프 터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를 내고 미국이 디폴트 위기에 빠질 경우 주택 거래가 일시 중단되고 모기지 이자율이 급등해 페이먼트 부담이 최고 20%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터커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시장이 이제야 6%대의 높은 모기지 이자율에 적응해 가는 중”이라며 “디폴트로 이자율이 급등할 경우 주택 시장이 일시에 동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터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과거에 디폴트에 빠진 전례가 없고 이번에도 가능성은 낮지만 부채 한도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빠르면 6월에 예산이 소진될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려대로 디폴트 상황에 빠지면 모기지 이자율은 9월 중 8.4%까지 급등한 뒤 내년에야 7%대로 떨어질 것으로 질로우측은 예측했다. 모기지 이자율이 지난 20년간 8%대를 넘은 적은 없다. 모기지 이자율이 8%대로 상승하면 모기지 페이먼트 부담도 지금보다 20%나 더 늘어나게 돼 내 집 마련은 더욱 힘들어진다.
◇ ‘재융자의 역습’, 매물 품귀 원인 돼
팬데믹 기간 1,400만 명이 재융자를 실시했는데 이로 인해 현재 주택 시장이 심각한 매물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뉴욕연방 준비은행에 따르면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2021년 사이 약 1,400만 명이 재융자를 실시해 이른바 재융자 붐 시대를 열었다.
경기 침체를 우려한 연방 준비 제도가 기준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유지한 기간으로 모기지 금리가 한 때 약 2.65%까지 떨어진 바 있다. 사상 최저 수준의 이자율로 갈아타려는 재융자 열풍이 불었고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재융자 실시 가구당 월평균 약 220달러를 절약하는 혜택을 누렸다.
그런데 재융자 붐으로 인한 부작용이 올해 초부터 주택 시장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자율이 급등하면서 재융자는 이미 거의 중단됐고 낮은 이자율로 갈아탄 주택 소유주들이 집을 내놓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이자율이 올라도 집을 사려는 수요는 여전히 많은데 기존 주택 보유자들이 집을 내놓지 않아 주택 거래가 곤두박질쳤다. 3월 재판매 주택 거래는 전년동기 대비 22%나 감소했고 5월 시장에 나온 재판매 매물은 전년동기 대비 16%나 줄었다. 결국 바이어들이 신규 주택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3월 신규 주택 판매는 약 10%나 증가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