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새 420억 달러 ‘뱅크런’ 패닉… 전격 폐쇄
지난 40년간 스타트업 신생 기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 왔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예금 인출 사태와 주가 폭락으로 전격 폐쇄되는 파산 사태가 일어나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금융권에 일파만파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인 SVB의 급작스런 붕괴는 역대 미국 내 파산 은행 가운데 2위 규모이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금융권 전반으로 위기가 전이되는 ‘제2의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 속에 13일 금융시장의 ‘검은 월요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연방 정부는 일요일인 12일 이례적으로 신속히 SVB 은행 고객들에 대해 FDIC가 보증하는 25만 달러 이하 예금은 물론 다른 모든 비보호 예금들에 대해서도 전액 보증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는 등 금융시장 혼란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금융당국 전격 폐쇄 결정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지난 10일 SVB에 폐쇄 명령을 내리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예금 지급 업무를 하도록 했다. FDIC는 ‘샌타클라라 예금보험국립은행’이라는 이름의 새 은행을 설립하고, SVB의 모든 자산과 예금을 몰수해 이 은행으로 이전했다. 지난해 말 기준 SVB의 보유 자산은 2,090억 달러, 총예금은 1,754억 달러에 각각 달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무너진 워싱턴뮤추얼 은행 이후 최대 규모의 은행 파산이라는 분석이다.
■왜 무너졌나
북가주 샌타클라라에 본사를 둔 SVB는 1983년 설립돼 캘리포니아주와 매사추세츠주에 모두 17개 지점을 보유한 신생 기술기업 전문 은행이다. 이 은행이 무너진 것은 위기가 수면 위로 부상한 지 불과 이틀도 안돼서였다. 주요 고객인 스타트업들의 예금이 줄어든 탓에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을 어쩔 수 없이 매각, 18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는 전날 발표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1년간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올린 여파로 기술기업들의 돈줄이 말라버리면서 SVB로 유입되는 신규 자금이 끊겼고, 이로 인해 과거 비싸게 샀던 채권을 낮은 가격에 팔아야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발표 직후 주가가 60% 이상 폭락하고, ‘빨리 자금을 빼라’는 벤처캐피털 회사들의 경고까지 나오면서 고객들의 예금 인출이 가속돼, 하루만에 무려 420억 달러의 ‘뱅크런’, 즉 연쇄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SVB는 22억5,000만 달러의 증자 계획이 무산되자 회사 매각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금융당국은 인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주지 않고 이례적으로 빠르게 칼을 빼들었다. 이번 사태로 지난 10일에도 퍼스트리퍼블릭 은행과 시그니처 은행 주가가 장중 20% 이상 폭락하는 등 월가에는 공포가 가시지 않고 있다.
■연방 금융당국 발빠른 대응
연방 정부도 이같은 후폭풍을 우려, 발 빠른 대응에 착수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대책을 논의했고, 뉴섬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연방 금융당국은 이어 일요일인 12일 고객이 실리콘밸리은행(SVB)에 맡긴 돈을 보험 한도와 상관 없이 전액 보증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연병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날 이 같은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이 연준과 FDIC의 권고를 조 바이든 대통령과 협의한 결과 모든 예금주를 완전히 보호하는 방식의 사태 해법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조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