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장 지시 수행했던 한인은행 담당 직원
은행 직원이 고객의 부탁으로 고객의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해 고객이 원하는 장소까지 배달을 했다면 이는 고객 서비스 차원의 관행일까 아니면 위법 행위일까?
최근 한 한인 은행에서 VIP 고객의 부탁을 받은 지점장이 부하 직원에게 현금 35만 달러를 고객이 지정한 장소까지 전달하게 한 업무지시를 놓고 한인 은행권에서 논란이 뜨겁다. 이같은 논란은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본점을 둔 퍼스트 IC은행 LA 지점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이 은행 측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소송에서 불거졌다.
LA 카운티 수피리어코트 소송 자료에 따르면 이 직원은 지난 10월26일 접수한 소장에서 올해 7월 중순 한 고객이 은행에 오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계좌에서 35만 달러를 현금으로 인출해 패사디나의 한 업체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 지점장이 자신에게 이 현금을 배달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 직원은 거액의 현금 배달과 관련, 다음날 지점 회의시간에 현금거래보고서(CTR)에 누구 이름을 넣어야 되는지를 지점장에 문의했으나 지점장이 “고객말고 누가 있느냐”고 화를 내며 고객의 이름만을 넣어야 한다고 부당한 지시를 했다고 소장에서 주장했다.
CTR(Currency Transaction Report)은 은행에서 1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입출금할 경우 은행이 연방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 단속 네트웍(FinCEN)에 보고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연방 국세청(IRS)도 CTR 자료를 자금 세탁이나 탈세를 적발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계좌 소유주가 은행에서 현금을 직접 인출하지 않아도 되지만 소유주의 지시를 받고 현금을 찾은 대리자(conductor)의 정보가 CTR에 포함돼야 한다.
소송을 제기한 이 직원은 해고 사유를 분명히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이같은 상황이 빌미가 돼 결국 해고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해당 은행의 지점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그 직원이 해고된 것은 현금 배달 건과는 전혀 다른 이유었다”고 반박하며 “애틀란타 본점에서 변호사를 통해 대응 중이어서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기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퍼스트 IC 본점 측 고위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CFO를 통해 보고를 받았고 자세한 상황을 파악 중”이라며 “은행 변호사가 직원이 제기한 부당해고 소송에 대한 답변서를 이미 LA 카운티 수피리어코트에 보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만약 직원이 지점장의 지시로 고객을 대신해 돈을 전달했다 하더라도 이는 시큐리티 상의 문제이지 관련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한인 은행권에서는 고객이 직접 돈을 인출하지 않고 은행 직원에게 이를 부탁하는 행위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는 반응이다. 한때 다운타운 자바시장 한인 업주들 사이에서 은행 입출금을 지점장이나 직원이 대신 처리하는 것이 관행이었으나, 지금은 은행보안법(BSA)이 강화된데다 수년 전 연방 당국의 자바시장 현금 거래에 대한 대대적 단속 이후 이같은 관행은 대부분 사라졌다는 것이다.
BSA(Bank Secrecy Act)는 자금세탁 및 금융범죄 예방을 위해 제정된 법으로 의심되는 특정 거래 기록을 FinCEN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몇년 전 LA 지역 한 은행 지점장이 고객의 부탁으로 50만 달러의 현금을 업소에서 받아 대리 입금 처리하는 과정에서 위조지폐가 대량 발견돼 규정 위반으로 지점장이 사임하는 사례가 발생했었다.
한인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1만 달러 이상 현금 입출금시 계좌 소유주가 가족이나 회사 직원 등 다른 사람에게 인출을 부탁할 수는 있으나 은행 지점장이나 직원이 이를 대신하는 것은 은행 법규상 명백한 위반사항”이라며 “돈을 배달하는 은행 직원 입장에서 부담감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만약 은행 직원이 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배달사고를 일으키거나 강도를 당했을 경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면서 “아직도 고객 대신에 돈을 찾아 배달하는 관행이 남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