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변호사
영사가 비자를 거부하면 이 결정에 대해서 항소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없다. 법원은 영사의 결정을 심사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원칙에도 예외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판결이 제9항소법원에서 나왔다. 비자 거부에 대해 제소의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결정이다.
-영사의 비자 거부를 법원이 심사할 수 없다는 룰은 어떤 것인가
영사의 비자 심사는 법원의 제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오랫동안 지켜져 온 원칙이다. 입법부나 행정부가 폭넓게 권한을 행사하는 이민 문제에는 법원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삼권분립의 정신에 부합하다는 과거 대법원 판례에 기초해 자리잡은 관행이다. 비자 결정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이 원칙은 비이민비자나 취업이민비자 뿐만 아니라 시민권자나 영주권자 가족 케이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민권자 가족이민 케이스라도 영사가 비자를 거부하면서 외견상 정당하고 악의가 없는 거절사유를 밝히기만 하면 법원에 이의 제기를 해 볼 수 조차 없는 것이다.
-이번 케이스를 설명한다면
2005년에 미국에 와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한 엘살바도르 국적의 남편이 이민비자를 받기 위해서 2015년 본국으로 출국했다. 그러나 비자 인터뷰만 마치면 곧 돌아올 줄 알았던 남편의 이민비자는 거부되었다. 영사가 써 준 거부 사유는 달랑 한 줄이었다. “미국에 입국하면 범죄활동을 할 것으로 믿어지는 자는 입국을 거부한다”는 이민법 조항만 적어 놓은 것이었다.
영사가 무슨 근거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전혀 설명이 없었다. 남편은 전과도 없었다. 결국 2017년 LA 연방지방법원을 통해 소송을 시작한 다음에야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영사가 인터뷰, 범죄기록, 비자신청자의 문신들을 통해서, 비자 신청자가 엘살바도르에서 활동하는 악명높은 MS-13갱의 멤버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비자 거부 3년만에 얻는 답이었다.
-제9항소법원은 어떻게 판결했는가?
항소법원은 결혼과 미국에 사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 시민권자의 자유권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시민권자의 남편의 비자는 시민권자 부인의 자유권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보았다. 국무부가 외견적으로 정당하고 악의없는 비자 거부 사유를 밝혔다고는 하지만, 3년이 지난 후에야 밝힌 것은 헌법이 보장한 적정절차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항소법원은 헌법이 보장한 적정절차의 원칙에 부합하려면, 시민권자가 배우자 이민비자 심사의 거부사유를 합리적인 시간안에 통보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항소법원은 배우자가 이민비자 인터뷰를 한 후 국무부가 3년 뒤에야 비자거부 사유를 밝힌 것은 시민권자 부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자 거부는 타당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이번 케이스가 중요한 이유는
비자 결정이 시민권자의 자유권과 관계가 있을 때, 영사는 외견상 정당하고 악의적인 의도가 없는 거부 사유를 시민권자에게 알려야 할 뿐 아니라 적정시점 내에 시민권자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9항소법원은 적정기간은 30일 이내이며, 아무리 늦더라도 1년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번 결정은 시민권자나 영주권자 가족이민 케이스인데도 심사 기간이 지나치게 길거나 뚜렷한 이유없이 비자 승인혹은 거부 결정 자체를 하지 않았을 때는 직무집행영장소송인 맨다무스를 통해서 법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영사 비자거부가 법원이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시민권자나 시민권자와 관련이 없는 영사의 비자 결정은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