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속 한인들 ‘짠물 소비’ 백태
한인 김모씨에게 인플레이션은 소주값에서 시작됐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1달러대에 소주 한 병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언감생심이다. 김씨는“이제 소주 한 병이 3~4달러까지 오르니 경제적 부담이 돼 술 마시는 횟수를 줄였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각종 식음료 값도 모두 오른 데다 개스값에 심지어 맥도날드 음식값도 올랐다. 김씨는“물가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힘들 게 한다”며 “앞으로도 고물가가 계속될 것이란 전제로 가계비 지출을 줄여 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역대급 인플레이션 시대 속에 숨막힐 정도로 장바구니 물가 상승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서 한 푼이 아쉬운 한인들이 늘고 있다. 생활비 상승 부담에 샤핑을 자제하는가 하면 좋아하는 커피나 술을 줄이거나 렌트비가 싼 아파트로 이사를 하는 등 ‘짠물 소비’가 한인들 사이에 일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버텨낼 수 있다는 인식이 결국 소비 감소로 이어져 경기침체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지적과 함께 고물가가 경제를 계속 지배할 것이라는 소위 ‘고물가 인식의 고착화’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9.1%나 올랐다. 1981년 이후 최대치라던 5월 8.6%를 상회할 뿐 아니라 시장 예측치 8.8%도 훌쩍 뛰어 넘은 상승폭이다.
각종 장바구니 물가가 일제히 상승하면서 생활비 부담이 커지자 한인들은 소비를 줄이는 것으로 물가 상승에 맞서고 있다.
예전처럼 1주에 1번씩 마켓을 방문해도 씀씀이는 줄었다. 글렌데일에 거주하는 한인 주부 이모씨는 “예전엔 고기를 2팩 구매했지만 1팩으로 줄였고 좋아하는 아보카도도 가격이 비싸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라며 “품목별로 싸게 파는 마켓을 찾아 2~3군데를 들리는 마켓 순례가 이젠 일과가 됐다”고 말했다.
지속되는 고물가의 여파는 직장인들의 일상도 바꾸어 놓고 있다.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점심값이 크게 오르는 ‘런치플레이션’(lunch+inflation)으로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는 직장인들이 늘었다. 커피나 담배와 같은 소위 기호품 소비를 줄이거나 아예 끊는 경우도 나타나며, 주문비와 배달비가 오르자 배달 앱을 스마트폰에서 삭제하는 직장인도 목격된다.
한인타운에 직장이 있는 한인 김모씨는 “사무실 가까이에 스타벅스가 있어 하루에 2잔 정도 마셨는데 가격이 오르면서 1달에 커피값으로 180~200달러 지출했다”며 “물가 상승으로 지출이 많아져 스타벅스 커피를 1잔으로 줄였다”고 씁쓸해했다.
LA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유학생들도 고물가의 직격탄을 맞고 신음하고 있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외식을 줄이고 커피를 끊는 것은 기본이고 싼 렌트비를 찾아 아파트를 옮기는가 하면 항공료가 아까워 여름방학에 한국행을 포기하는 유학생들도 있다. USC에 재학 중인 유학생 이모씨는 “물가도 많이 올라 이번 여름방학에 한국에 가지 않고 남아 있다”며 “한국행을 포기한 유학생들이 주위에 많이 있다”고 말했다.
연방준비제도의 거듭된 ‘자이언트 스텝’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과거보다 높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되면서 고물가가 고착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27일 뉴욕타임스(NYT)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미국 경제의 고질적인 요소로 소비자와 기업의 인식에 각인되고 있다”며 “소비 수요 감소하면 기업이 가격을 올리게 되고 이는 임금 인상 요구로 번지면서 인플레이션 구조를 고착화하는 악순환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