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인플레 우려 속 연준 FOMC회의 주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과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겹치면서 신흥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으로 직격탄을 맞은 세계 경제도 이번 주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12일 경제 방송 CNBC에 따르면 연준은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첫 금리 인상이다. 2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하원 청문회에서 “0.25%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금리 인상 폭이 예고된 만큼 시장은 파월 의장의 입에 주목하고 있다. CNBC는 “시장은 연준이 우크라이나 위기를 어떻게 보는지, 이것이 그들의 경제 전망과 금리 인상 경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를 예의 주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도 높다. 루블화가 이미 50%가량 폭락하고 주식거래 중단 기간을 14일에서 18일로 연장하는 등 러시아 경제가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JP모건은 러시아가 16일 만기 도래하는 채권을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1991년 옛 소련 붕괴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게 됐다”고 진단하며 디폴트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국제사회의 제재로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할 예정”이라며 “러시아의 디폴트 선언은 더 이상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시 중단된 이란 핵 합의 협상과 러시아의 키이브 총공세가 임박한 우크라이나의 전황에 따라 현재 배럴당 110달러를 오르내리는 국제 유가가 어떻게 움직일지도 주목된다.
월가의 관심은 제롬 파월(사진·로이터)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어떤 언급을 할지,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힌트를 내놓을지에 쏠려 있다. 3월 인상 폭은 정해졌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국제 유가와 각종 원자재 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금리 인상 속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마크 카바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미국 단기금리전략부문장은 “기본적으로 성장 전망에 대한 하방 위험은 커졌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상방 리스크는 높아졌다”며 “연준이 오는 5월 양적 긴축(QT)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기본 가정”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더 공격적인 긴축을 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로 원자재 가격이 고공 행진하면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9% 이상 폭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분위기에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과 함께 매파적 발언을 내놓을 경우 글로벌 자금 이동이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 주요 5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미 2%가량 오른 99.1로 100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 주 이후 달러화 강세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도 시장에 부담을 주는 요소다. 이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피치 등 3대 글로벌 신용평가사는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C(디폴트 임박)’로 낮춘 상태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 입장에서는 굳이 부채를 상환할 이유도 없어진 상태다. 당장 1억 1700만 달러 상당의 달러 표시 채권 이자 지급 만기일인 16일이 첫 관문이다. 로베르토 시폰 S&P 글로벌애널리스트는 “러시아의 디폴트가 상당히 임박했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점은 러시아 디폴트가 초래할 연쇄 효과다. 현재 이탈리아 은행들의 러시아 여신 규모는 253억 달러에 달한다. 강력한 대러 제재에 러시아 정부의 디폴트 선언까지 현실화하면 ‘유럽 은행 손실→신흥국 등의 여신 회수→글로벌 금융 시장 타격’이 불가피하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