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
환자의 5년 생존율이 55%로 아주 낮은 희소 질환이 있다.‘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hemophagocytic lymphohistioctosis)’이다. 이름도 생소한 이 질환은 면역 결핍 질환의 하나로 치사율이 높고 조기 발견하지 못하면 병이 급속도로 악화해 심하면 1주일에서 두 달 내로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대부분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정도 미비한 증상이 갑자기 진행되므로 치료 시기를 놓칠 때가 많다.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은 특히 진단이 어렵고 예후가 좋지 않은 질환인 만큼 정확히 알고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발열, 간비종대, 체중 감소 등 증상 발현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은 세균ㆍ바이러스 등을 포식하는 대식세포나 림프구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돼 적혈구ㆍ백혈구 등의 정상 조혈 세포를 탐식하면서 생기는 희소 난치성 질환의 일종이다. 즉 면역반응 생성 및 유지에 중요한 사이토카인이 과다 분비되면서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유전에 의한 원발성과 2차적으로 생기는 2차성으로 나뉜다. 유전학적 문제는 주로 어린이에게 발생한다. 반면 2차성은 감염ㆍ종양 등을 포함한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기에 어느 연령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유전학적 문제로 발생하는 원발성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은 유전성 혹은 가족성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고도 불리며 다양한 유전자 변이로 인해 발생 가능하다. 2차성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2차적으로 유발되는 강력한 면역학적 활성화, 사이토카인 폭풍이 원인이다.
심한 바이러스 감염이나 악성 종양과 연관돼 발생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보고된 감염원은 매우 다양한데 대표적인 바이러스로 아데노 바이러스, 거대 세포 바이러스, 엡스타인-바 바이러스, 사람 면역 결핍 바이러스 등이다.
이 밖에 세균, 진균, 결핵균, 기생충 등도 포함된다. 류마티스 질환이나 다른 자가면역질환과 동반할 때도 있다.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의 증상 발현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원인에 따라 여러 증상이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먼저 전형적인 증상으로는 상기도(인두·후두·비강) 감염이나 위장관 감염 후에 발열, 간비종대(肝脾腫大·hepatosplenomegaly), 혈구감소증, 체중 감소 등이다.
이 밖에 피부 발진이나 황달 및 부종, 림프절 비대나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초기에는 경한 발열이나 림프절 비대 등 비특이적인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단순 몸살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비정상적인 면역반응에 따라 응고 장애, 신경학적 증상, 다발성 장기부전 등 치명적인 질병 악화가 갑자기 일어나기 때문에 예측이 매우 어렵다.
◇sIL2R 진단, 질병 확인ㆍ예후 예측 도움
‘사이토카인 폭풍’이라 불리는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은 다양한 검사법으로 진단 가능하다. 발열ㆍ비장 비대 등의 임상적 양상과 함께 유전자 검사와 다양한 검사를 동시에 시행하며,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진단에 이용한다.
전체 혈구 계산(Complete blood count), 금식 중 중성지방, 섬유소원, 페리틴, 자연살해세포 활성도(Natural Killer cell activity), sIL2R(Soluble IL-2 receptorㆍ인터루킨 가용성 수용체 또는 Soluble CD25)검사 등의 혈액검사를 포함한다.
이 밖에 골수 검사 및 림프절, 간 등 침범이 의심되는 장기에 대한 조직 검사를 시행해 혈구 탐식증 여부 및 바이러스 감염이나 종양 등 동반 가능한 질환에 대해 확인한다.
이들 중 sIL2R는 다양한 사이토카인 또는 사이토카인 수용체 중 유일하게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 진단 기준에 포함된 사이토카인 수용체다. 건강한 사람의 혈청에서 낮은 레벨로 존재하나 종양, 자가면역질환, 감염증 같이 T림프구가 활성화된 사이토카인 과분비 질환 및 상태에서는 높은 농도로 나타난다.
sIL2R 농도가 2400U/mL 이상으로 높은 경우,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 진단을 위한 8개의 진단 범주의 한 가지를 충족하므로, 진단과 예후 예측에 유용하게 활용된다.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 진단됐다면 질병이 악화되기 전에 빠른 치료가 진행돼야 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심한 과염증 상태를 억제하고, 유발 원인이 되는 동반 질환 및 상태를 치료해야 한다.
유전성이라면 결함 있는 면역 체계를 회복하려면 조혈모세포 이식 치료가 필요하다. 항생제 치료가 가능한 감염이 원인이라면 해당 감염원 치료에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하면서 치료하기도 하며, 환자 증상ㆍ상태에 따라 항암제 및 면역 억제제 주사를 사용하기도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