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서늘해진 기온과 함께 뜨거웠던 주택 시장의 열기도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매물 한 채에 수십 명의 바이어가 몰리거나 나온 가격보다 수십만 달러씩 더 제시하는 비정상적인 거래 모습은 많이 줄었다. 바이어스 마켓으로 보기에는 이르지만 주택 시장이 어느 정도 정상 국면에 진입하는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 전문 머니 매거진이 최근 주택 시장 상황을 진단했다.
바이어스 마켓 속단은 일러, 주택 시장 정상 모습 찾아가는 중
◇ 집값 상승세 주춤
지난 1년간 주택 가격은 무서운 속도로 올랐다. 부동산 정보 업체 리얼터닷컴의 4월 조사에 따르면 셀러들이 집을 내놓는 리스팅 가격은 전년대비 무려 17.2%나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셀러들이 ‘부르는 것이 값’이던 시기였는데 최근 들어 리스팅 가격 상승세가 둔화되는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월 중 리스팅 가격은 전년보다 약 8.6% 웃도는 수준으로 상승폭이 4월에 비해 절반으로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집을 내놓은 뒤 가격을 내리는 셀러들도 최근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집이 팔리기 전까지 가격 인하를 한차례 이상 실시한 매물이 최근 3개월 연속 증가했다. 가격을 인하한 리스팅 비율은 주택 시장이 활황에 진입하기 전인 2016년 수준으로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셀러들의 콧대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이야기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 가격 상승세 둔화 현상이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정보 분석 업체 ‘코어로직’(CoreLogic)은 내년 9월까지 주택 가격 상승률이 2%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주택 가격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 비율로 급등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상승폭이라 할 수 있다.
국영 모기지 보증 기관 프레디 맥과 ‘모기지 은행업 협회’(MBA)는 내년 주택 가격 상승 전망치로 이보다 조금 높은 5%~7%를 내놓았는데 올해 집값 상승률과 비교할 때 훨씬 안정적인 수준이다.
이처럼 여러 기관의 전망치를 통해 주택 시장 열기가 가라앉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택 가격이 연간 3%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때 주택 시장이 건전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해와 같은 비정상적인 주택 가격 상승세가 사라지고 내년부터 주택 시장이 건전한 회복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저가 매물 증가
현재 주택 시장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매물 부족 현상이다. 특히 첫 주택 구입자가 많이 찾는 저가대 매물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 저가 매물 부족으로 젊은 층의 자산 축적 기회가 사라지는 등 사회적 문제로도 지적되고 있다.
반갑게도 최근 저가대의 ‘스타터 홈’(Starter Home) 매물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조사돼 매물 가뭄 현상에 단비를 뿌려줄 것으로 기대된다. 부동산 중개 업체 레드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와 올해 3분기 사이 중간 가격 12만 6,500달러대의 신규 매물이 약 32%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보다 가격이 조금 높은 21만 달러대의 신규 매물 역시 같은 기간 약 16% 늘어 첫 주택 구입자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레드핀은 모기지 유예 프로그램 종료로 그동안 씨가 말라가던 저가대 매물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모기지 유예 프로그램은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재정이 악화된 주택 소유주를 대상으로 최장 18개월간 모기지 페이먼트 납부를 유예해 주는 구제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수백만 명에 달하는 주택 소유주가 모기지 유예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는데 최근 순차적으로 프로그램이 종료되기 시작했다. 일부 소유주는 유예 기간 중 재정 상황이 개선돼 모기지 페이먼트 지불 능력을 갖췄지만 여전히 재정난이 해결되지 않은 일부 소유주들이 그동안 연체된 모기지 페이먼트 상환을 위해 집을 내놓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사상 최악의 매물 부족 현상이 당장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주택 시장은 이미 수년째 신규 주택 공급 부족으로 심각한 주택 재고난에 빠져 있는 상태다. 국영 모기지 보증 기관 프레디 맥은 현재 약 400만 채의 주택이 부족한 상황으로 주택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기까지 적어도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 과열 경쟁 줄어
올해 이른바 입찰 경쟁에서 패해 쓴맛을 본 바이어가 많다. 입찰 경쟁은 매물 한 채에 여러 명의 바이어가 오퍼를 제출하는 현상으로 어느덧 주택 시장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올해의 경우 일부 매물에 30명이 넘는 바이어가 몰리는 등 마치 한국 아파트 청약 경쟁을 연상케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지만 최근 들어 비정상적인 입찰 경쟁이 잦아든 것으로 나타났다.
올 여름철 성수기에만 해도 바이어 4명 중 3명은 다른 바이어와 경쟁 상황을 경험했던 것으로 조사된 바 있는데 10월 조사에서 입찰 경쟁 비율은 약 59%로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과 비교할 때 여전히 높은 비율이지만 불과 수개월 만에 입찰 경쟁 현상이 크게 완화된 것이다. 바이어들이 컨틴전시 조항 포기, 웃돈 오퍼 등 불리한 조건으로 주택을 구입해야 하는 일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입찰 경쟁이 잦아든 이유는 모기지 이자율 상승으로 주택 거래가 일시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국 부동산 중개인 협회’(NAR)에 따르면 지난 9월 주택 구매 계약 체결 건수는 전달보다 약 2.3%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9월은 8월에 비해 주택 거래가 뜸해지는 시기지만 최근 폭발적인 주택 수요를 감안한 전문가들은 주택 거래가 8월보다 많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같은 기간 모기지 신청 건수 역시 올해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 주택 수요가 다소 위축되고 있음을 나타냈다. 이처럼 입찰 경쟁 및 주택 거래가 줄어들면서 비싸게 팔리는 집도 감소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 업체 ‘OJO 랩스’(OJO Labs)에 따르면 리스팅 가격보다 비싸게 팔린 집은 지난 7월 약 50%에서 10월 약 41%로 감소했다.
◇ 팔리는 기간도 길어져
나오자마자 팔리는 집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집이 팔릴 때까지 걸리는 기간도 조금씩 길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매물이 시장에 나온 뒤 팔릴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6월 이후 매달 길어지고 있으며 10월에는 평균 45일을 기록했다.
팔릴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주택 시장 열기가 식고 있음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부동산 업체 오픈 도어의 케리 멜처 대표는 “집 앞에 내걸린 매물 사인이 제거되지 않고 계속 있다는 것은 시장의 열기가 가라앉고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주택 시장이 갑자기 바이어 위주의 상황으로 전환됐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치 캐피털 서비스 모기지 그룹의 파커 로스 이코노미스트는 “나온 지 2주 안에 팔리는 매물이 지난해보다 많을 정도로 수요가 많다”라며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보면 주택 시장은 여전히 ‘핫’하다”라고 설명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