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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마지막 숨에 터져나온 샹베르탱

미국뉴스 | 라이프·푸드 | 2021-11-12 15:26:04

나폴레옹, 샹베르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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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실의 역사 속 와인

“샹베르탱…. 조제핀.”

1821년 5월 5일, 아프리카대륙에서 서쪽으로 1,900km 떨어진 세인트헬레나섬에서 나폴레옹은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는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알고는 샹베르탱을 마시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과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마지막 숨에 담고는 눈을 감았다. 사실 그의 전기에는 나폴레옹이 “프랑스, 군대, 군대의 수장, 조제핀”이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나온다. 나폴레옹의 곁을 지킨 베르트랑의 일기에 따르면 그는 생을 마감하기 며칠 전 커피 한 모금을 마시게 해달라고 애타게 간청했다.

 

■포병장교, 부르고뉴... 나폴레옹 와인 사랑의 시작

나폴레옹과 와인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그는 프랑스 코르시카 아작시오 마을에서 8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만 열 살이 되던 해 프랑스 본토로 건너가 부르고뉴 오툉 학교를 거쳐 상파뉴의 브리엔 유년 군사학교에 다녔다. 그곳에서 5년 동안 기숙하며 학업을 하는 동안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민족주의적 색채와 특이한 억양 탓에 다른 학생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소년 나폴레옹은 고대 군사 지도자들 이야기와 역사책에 빠져 지냈다.

코르시카는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1년 전만 해도 프랑스가 아니라 제노바공화국의 영토였다. 지리는 물론이고 언어와 역사 등 모든 것이 이탈리아에 더 가까웠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란 이름도 ‘나폴레오네 부오나파르테’를 프랑스식으로 바꾼 것이다. 코르시카의 와인 역시 프랑스 와인보다는 이탈리아 와인에 가깝다. 이탈리아, 특히 토스카나 지역에서 많이 쓰는 산지오베제의 변종인 니엘루치오나 시아카렐로, 베르멘티노 등이 코르시카의 자생 품종이다.

1784년, 나폴레옹은 유년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왕립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장 자크 루소나 몽테스키외와 같은 계몽주의 학자의 책을 탐독하며 지냈다. 1년 만에 사관학교를 조기 졸업한 나폴레옹은 발랑스와 오손에서 포병장교로 근무했다. 그는 당시 새벽 4시에 일어나 온종일 독서만 했다고 한다. 돈을 아끼려고 오후 3시에 한 끼만 먹으면서.

글머리에 언급했지만, 사실 나폴레옹은 샹베르탱을 무척 좋아했다고 알려졌다. 샹베르탱은 부르고뉴 코트 도르의 북쪽에 위치한 즈브레 샹베르탱 마을에서 피노누아로 빚은 그랑크뤼 와인이다. 아마도 포병장교 시절 근무지에서 가까운 부르고뉴 와인을 접했으리라.

조국의 땅이라고는 하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외롭게 성장한 그에게, 샹베르탱은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다. 흔히 술은 자신의 내면에 침전한 사람에게 친숙한 법이니까. 적어도 사람의 심연을 건드려 터트리거나 달래주니까.

“그 어느 것도 한 잔의 샹베르탱을 통해서 보이는 장밋빛 미래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고 보면 알렉상드르 뒤마의 이 말이 단순히 샹베르탱 예찬만은 아닌 듯하다.

나폴레옹이 와인잔에 어린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초급장교 시절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 기회가 온 것이다. 왕당파가 프랑스 남부 툴롱항으로 영국군을 불러들여 혁명정부에 맞섰다. 그는 혁명정부의 편에 서서 영국군을 몰아내고 툴롱항을 되찾았다. 이어 폴 바라스의 추천으로 파리에서 일어난 왕당파의 봉기까지 진압해 출세의 기반을 다졌다.

■ “조제핀 샹베르탱 향기에 매료”

이때 나폴레옹은 운명의 여성을 만난다. 혁명정부의 실력자이자 나폴레옹의 후원자인 폴 바라스의 애인 로즈 드 보아르네. 바로 그 유명한 조제핀이다. 나폴레옹은 그녀에게서 풍기는 샹베르탱 향기에 매료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그녀는 주로 샴페인을 마셨다고 한다. 모엣샹동 샴페인하우스에는 1807년 1월 조제핀이 방문해 샴페인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조제핀은 카리브해 마르티니크섬에서 태어났다. 열여섯에 파리로 건너와 보아르네 장군과 결혼해 두 명의 자녀를 낳았다. 하지만 혁명 피바람 속에 보아르네 장군은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말았다. 그 후 조제핀은 사교계에 진출해 폴 바라스의 애인이 되었고, 이윽고 나폴레옹의 마음마저 사로잡았다.

둘은 결혼했으나 허니문은 잠시였다. 결혼식 이틀 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원정에 나섰다. 나폴레옹은 전장에서 조제핀에게 여러 차례 연서를 보냈다. 그런데 조제핀은 편지 전달자인 장교들과 샴페인을 즐기며 뜨거운 밤을 보냈다고 한다.

아무튼,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물리치면서 나폴레옹은 유럽에 명성을 떨쳤다. 그는 다시 학술원 회원들과 함께 이집트 원정에 나서 승리를 거듭하며 카이로에 입성했다. 그러나 프랑스 함대가 지중해에서 영국의 넬슨 함대에 격파된 탓에 이집트에 고립되었다.

전황이 여의치 않을뿐더러 당시 총재 정부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듣고, 나폴레옹은 중도에 파리로 돌아갔다. 총재의 일원인 시에예스가 브뤼메르 쿠데타를 계획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시에예스와 함께 이를 성공시켜 실권을 잡고 통령에 올랐다. 이어 이탈리아 대통령과 프랑스 종신 통령 자리에 오르더니, 1804년에는 나폴레옹법전을 선포했다. 국민투표를 거쳐 대관식을 거행해 드디어 황제가 된 것이다. 조제핀 역시 황후 자리에 올랐다.

■ 정복의 길에 찾은 와인셀러

황제 나폴레옹은 더 큰 야욕을 드러냈다. 이탈리아 왕위에 오르더니 대프랑스동맹을 맺은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싸웠다. 비록 트라팔가 해전에서는 패했지만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다. 여세를 몰아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왕국, 네덜란드, 베스트팔렌왕국, 스페인 등 여러 곳을 점령해 형제들을 왕으로 앉혔다.

1806년에는 베를린에 입성했다. 그러고는 모든 국가에 영국과 무역을 금지하라는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러시아가 저항하자 나폴레옹은 다시 전쟁을 벌였다. 승리를 거머쥔 그는 1807년 7월 틸지트 조약을 맺었다.

모엣샹동 기록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틸지트 조약을 맺고 돌아가다가 모엣샹동(당시 메종 모엣)을 방문했다. 지금도 그곳 입구에는 “1807년 7월 26일 위대한 황제께서 쟝 레미 모엣의 안내로 셀러를 방문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나폴레옹이 이곳에서 샴페인 병목을 칼(Saber)로 자르는 의식(Sabrage)을 치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쟝 레미 모엣은 나폴레옹으로부터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모엣샹동에서는 1869년 나폴레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모엣샹동 브륏 임페리얼’을 출시했다.

한편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관계는 극으로 치달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증오했다. 공식적으로는 조제핀이 후계자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1810년에 이들은 이혼했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마리 루이즈 공주와 결혼해 ‘로마 왕’을 낳았다.

그사이 기회를 노리던 러시아는 틸지트 조약을 깨고 대륙봉쇄령을 어겼다. 1812년 나폴레옹은 47만 군사를 이끌고 러시아로 진군했다. 고생 끝에 모스크바를 점령했지만 혹독한 추위와 러시아의 계략에 말려 결국 후퇴하고 말았다. 이듬해에는 대프랑스 동맹국과 치른 라이프치히 전투에서도 참패해 결국 퐁텐블로 조약에 서명해야 했다.

하루아침에 황제에서 영주로 강등된 나폴레옹은 패전국 죄인 신분으로 엘바섬으로 유배됐다. 입도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그는 조제핀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다. 조제핀은 1814년 5월 샤토 말메종에서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보나파르트… 엘바… 로마 왕”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크게 충격받은 나머지 이틀 동안 방 안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그가 한 말을 보면, 끝내 조제핀을 사랑했던 자신의 마음마저 속일 수는 없었던 듯하다. “단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소. 어떤 여인도 그대만큼 사랑하지 않았소.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오.” 자신의 몰락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지내야 했던 엘바섬은 나폴레옹에게는 지옥과 같았으리라.

■ 패전 후 유배된 섬에 만든 포도원

그런데 섬에 유배된 300여 일 동안 그는 섬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 엘바섬 사람들은 무척 건강했다. 나폴레옹은 이를 엘바섬의 와인 덕분이라고 여겨, 섬에 포도원을 만들기도 했다. 엘바섬은 지금도 와인이 유명하다. 알레아티코 품종으로 파시토 스타일로 만든 스위트 레드 와인이 특산품이다. 2011년에는 ‘엘바 알레아티코 파시토 DOCG’로 지정되었다.

1815년 2월 26일 나폴레옹은 영국군의 감시를 피해 엘바섬을 탈출했다. ‘나폴레옹 루트’를 따라 추종자들과 함께 3월 20일 파리로 입성한다.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루이 18세는 도주했다. 빈회의 중이던 동맹국들은 회의를 중단하고 나폴레옹에 맞설 대책을 세웠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았다. 돌아보면 한평생 전쟁 속에서 살지 않았던가. 그는 워털루로 향한 진군을 멈출 수 없었다. 결국 운명의 전장에서 그는 영국의 웰링턴이 이끄는 동맹군에 패하고 말았다. 엘바섬을 탈출한 지 100여 일 만에 나폴레옹은 황제퇴위문서에 이름을 적어야 했다. 영국의 포로로 다시 유배길을 떠났다.

■ “나폴레옹 워털루 패전, 샹베르탱이 없어서?”

로버트 파커는 그의 저서 ‘부르고뉴 와인’에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배한 원인을 와인 평론가답게 기록했다.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하는 샹베르탱을 마시지 못한 탓이라고. 펠리스 마크헴이 쓴 ‘나폴레옹’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실패한 러시아 원정과 패배한 라이프치히 전투 때에도 샹베르탱을 마셨다. 이를 보면 적어도 나폴레옹이 샹베르탱을 무척 좋아했음은 알 수 있다.

전쟁에 패한 나폴레옹은 망망대해에 멀뚱히 떠 있는 섬, 세인트헬레나에 유폐됐다. 최고의 권력자에서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를 가둔 대서양의 물로도 그의 텅 빈 가슴을 채우진 못했으리라. 다만, 지독한 농담 같은 자신의 생을 돌이켜보며, 나폴레옹은 가끔 와인을 마신 듯하다.

당시 섬의 영국 총독이었던 허드슨 로의 기록에 따르면, 보르도 9병, 카프(케이프 와인) 24병, 테네리프와 그라브, 콩스탕스 6병, 마데이라 1병, 매달 샴페인 14병, 포트와인 4병을 나폴레옹 거처에 공급했다(‘나폴레옹-세인트헬레나로의 항해’(장 폴 카우프만)를 ‘역사와 와인’(최훈)에서 재인용).

특히 뱅 드 콩스탕스를 약처럼 마셨다고 한다. 이 와인은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인근 콘스탄시아에서 뮈스카 품종으로 만든 스위트 와인이다. 토카이, 소테른과 더불어 당대 최고급 와인이었다. 필록세라 탓에 생산이 끊겼다가 2000년부터 다시 생산된다.

그런데 목록에 샹베르탱은 없었다. 자신을 사로잡았던 연인의 향을 다시는 맡지 못했으리라. 6년이 지난 어느 날, 나폴레옹은 위암(비소중독 가능성이 높다)으로 연인 곁으로 갔다. 그는 세인트헬레나의 이름 없는 무덤에 묻혔다가 20년이 지나서야 파리 앵발리드로 돌아왔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스러졌다.

나폴레옹과 관계된 와인들. 코르시카 아작시오, 샹베르탱, 모엣샹동 브륏 임페리얼, 엘바 알리아티코 파시토, 뱅 드 콩스탕스. <각 와이너리 홈페이지 캡처>
나폴레옹과 관계된 와인들. 코르시카 아작시오, 샹베르탱, 모엣샹동 브륏 임페리얼, 엘바 알리아티코 파시토, 뱅 드 콩스탕스. <각 와이너리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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