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에 당한 후
신고하자 디렉터까지
과다업무로 보복 해고
첫 직장 취업의 부푼 가슴을 안고 부모님의 나라에 취업한 한인 2세 여성의 꿈이 직장 내 성폭행으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상사들의 부당한 행위와 폭력을 신고했으나 돌아온 건 해고 조치였다. 결국 회사를 상대로 소송전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WP)가 전한 버지니아주 카일리 이(34)씨의 눈물겨운 ‘미투’ 이야기다. 이씨는 지난 2013년 부모님의 나라인 한국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나 20대 사회초년생이 감당하기 힘든 직장 내 성폭행의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연방정부 계약업체인 블랙박스 네트웍 서비스에 문서관리 전문가로 취업하게 된 이씨는 서울지사에서 파견 근무하게 되면서 “한인으로서의 정체성도 확인하고 자랑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자란 이씨에게 한국의 직장생활, 음주문화는 충격이자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유일한 여성 직원이었던 이씨는 수시로 술자리에 불려나갔으며 직장 동료와 상사들의 상습적인 성추행이 이어졌다. 회사에서 엉덩이를 만지는 것은 다반사였으며 만취 상태에서 직장 상사 2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26세였던 이씨는 “연봉 9만 달러에, 해외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2014년 어느 날엔 술자리 이후 직장 상사가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이씨가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속옷이 거꾸로 입혀져 있었고, 상사가 집 비밀번호를 묻고 샤워기를 튼 기억만 어렴풋이 났다.
그는 성폭행 사실을 서울지사 최고위 관리자인 프로그램 디렉터에게 알렸다. 이씨는 자신의 멘토이기도 했던 그 디렉터를 신뢰했다. 하지만 디렉터는 신고를 묵살하더니 오히려 이씨를 성폭행하기에 이르렀다. 외부미팅을 한 날 택시를 같이 타자고 하더니 회사가 ‘사무공간 임대업’을 할 수 있어 이씨가 거주하는 건물을 둘러보고 싶다고 했다. 디렉터는 이씨를 방으로 밀어 넣은 후 성폭행했다고 이씨는 소장에서 주장했다.
이씨는 2017년 같은 회사의 버지니아 지사로 옮겼는데, 이듬해 그 디렉터로부터 자신이 버지니아 지사에 출장 왔으니 단둘이 만나자는 연락까지 받았다.
당시 확산된 ‘미투’ 운동에 힘을 얻어 이씨는 회사 인사 담당자와 법률팀에 과거 성폭행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그 이후 직장 상사들이 자신을 피하거나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마감 시한을 설정하는 등 본격적인 ‘괴롭힘’이 시작됐다.
이씨는 연방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에 성차별 혐의로 회사를 신고하고, 국방부 감찰관실에도 내부고발자 보복 혐의로 신고했다. 결국 다음 달 그는 해고됐다.
현재 회계법인 딜로이트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는 이씨는 전 직장을 정식으로 고소했다. 이회사 측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씨가 지목한 성폭행 가해자 2명은 한국에 위치한 다른 정부계약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회사 측으로부터 비밀유지 각서를 쓰면 6개월치 퇴직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법원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이씨는 “자신의 경험이 공개돼 다시금 미투 운동이 공론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