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앙지 유럽, 보름 지나도록 오염 계란 확산 일로
네덜란드·벨기에서 유럽 17개국·홍콩 등으로 퍼져
미국은 계란 살충제 오염 관련‘무풍지대’
유럽에서 촉발된 이른바‘살충제 계란’ 파동이 한국을 비롯한 일부 아시아 지역 국가들로까지 확산되면서 이들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이번 파동의 핵심은 계란에서 검출돼서는 안 될 살충제 성분인‘피프로닐’이 오염된 계란이 유럽 각국에서 대규모로 유통된 것으로, 유럽에서는 파문이 수면 위로 드러난 지 보름이 지나도록 오염 계란의 유통 확산을 막지 못해 사태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한국에서도 남양주 지역 양계농가에서 출시된 계란의 일부에서 이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되면서 전국에서 계란 유통이 일시 중단되는 등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계란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발단은 유럽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살충제 계란’ 파동이 처음 불거진 곳은 네덜란드와 벨기에다. 지난 1일 네덜란드와 벨기에 정부가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피프로닐이 계란에서 검출됐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된 이번 파동은 오염된 계란이 각국으로 수출되면서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특히 네덜란드는 유럽 최대 계란 및 계란 가공식품 생산국으로, 네덜란드산 계란이 오염에 노출되면서 급속도로 피해가 확산됐다. 네덜란드는 매년 약 100억개의 계란을 생산해 이중 65% 가량을 수출한다.
포브스는 “벨기에·네덜란드·독일·프랑스 등에서 오염 계란이 발견됐고 다른 국가들이 이 계란들을 수입했다”고 확산 경위를 설명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현지시간 지난 14일까지 확인된 오염 계란 유통국은 약 18개국에 이른다.
여기에는 EU 16개국과 비EU 유럽 국가인 스위스, 아시아의 홍콩까지 포함된다. 앞서 지난 11일 EU가 피프로닐 오염 사례를 확인한 회원국은 벨기에·네덜란드·독일·스웨덴·영국·프랑스·오스트리아·아일랜드·이탈리아·룩셈부르크·폴란드·루마니아·슬로베니아·슬로바키아·덴마크 등이다.
이후 추가로 EU 회원국인 스페인 북부 지역에서 추가로 감염 사례가 등장하면서 총 감염국은 18개로 늘어났으며 피해 국가는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신선란이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된다며 EU 발표를 부정했으나, 14일 피프로닐에 오염된 계란 가공품이 처음으로 적발됐다. 이날 오스트리아 식품안전청(AGES)은 “마요네즈와 제빵 상품 등 계란이 들어간 80개의 제품을 임의로 골라 분석한 결과 이 가운데 약 25%에 해당하는 18개에서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피프로닐이란
문제가 된 계란에서 검출된 ‘피프로닐’은 벌레의 중추 신경계를 파괴하는 살충제로 사람에게도 두통이나 감각 이상, 장기 손상 등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방질병예방통제센터(CDC)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피프로닐은 주택이나 가축, 개와 고양이 등 애완동물에 기생하는 벼룩과 진드기 등을 없애는 데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닭에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백색 분말 형태이며 흡입과 섭취로 인체에 흡수될 수 있다.
노출 시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인 증상이 경련과 떨림이다. 미국에서는 피프로닐이 발암 물질로 지정돼 있다. 국립직업안전보건연구소(NIOSH)는 피프로닐에 장기간 또는 반복적으로 노출됐을 경우 간에 병변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제보건기구(WHO) 역시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문이 일자 피프로닐을 과다 섭취할 경우 간장·신장 등 장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가장 흔한 증상은 두통, 현기증, 감각 이상과 같은 신경 증상(50%)이었고 다음으로는 안구(44%), 위장관(28%), 호흡기(27%), 피부 증상(21%) 등이었다.
■한국도 일파만파
유럽에서 이른바 ‘살충제 계란’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한 가운데 한국에서도 국내산 계란에서 같은 성분이 검출돼 식품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한국내 친환경 산란계 농장을 대상으로 일제 잔류농약 검사를 하던 중 지난 14일 경기도 남양주시 소재의 8만 마리 규모 산란계(알 낳는 닭) 농가에서 ‘피프로닐’ 살충제가 검출됐다는 것이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국제식품규격에 따라 정한 피프로닐 잔류 기준은 계란 0.02ppm, 닭고기 0.01ppm인데, 이번에 경기 남양주 양계 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에서 검출된 양은 0.0363ppm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15일 전국 모든 3,000마리 이상 규모 농가에서 생산되는 계란 출하를 전격 중단하고 전수검사에 돌입했다.
한국 정부는 살충제가 함유된 계란의 섭취 안전성에 대해서는 인체에 해가 될 정도의 함유량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국민들의 불안은 극에 달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살충제 계란이 나온 경기도 남양주의 친환경 산란계 농가에서 생산된 문제의 계란이 최소 10만개 이상 이미 시중에 유통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내 주요 대형마트·수퍼마켓·편의점과 온라인몰까지 계란 판매는 물론 계란이 들어간 샌드위치·김밥·장조림 등 관련 식품을 전량 폐기 처분하고 판매를 중단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어떻게 발생했나
현재 정부의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정확한 발생 원인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산란계 농가가 닭을 키우는 케이지(철재 우리)에 살충제를 뿌리는 과정에서 닭의 몸속으로 살충제가 들어갔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살충제를 흡입한 닭이 나은 계란에 피프로닐이 넘어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케이지에 계란을 둔 채 살충제를 사용한 경우에도 살충제 성분이 계란 속으로 스며들었을 수 있다.
원칙적으로 케이지에 살충제를 뿌릴 때 닭과 계란을 빼내야 하지만 이를 따르지 않는 농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밀집 사육을 하는 양계장 특성상 관행적으로 닭이 들어 있는 케이지 안에 살충제를 뿌리는 경우가 있고, 이때 피프로닐이 닭의 피부 표면을 통해 체내로 흡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무풍지대
이번 이른바 ‘살충제 계란’ 파문과 관련 미국은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
유럽이나 한국에서 직접 수입되는 계란은 없기 때문이다. 또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 경우는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한국과 유럽에서 미국으로 수입된 제빵과 제과 제품 등에서 혹시 살충제 오염 계란이 사용됐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확인된 것은 전혀 없는 상황이어서 향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살충제 계란 파문이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 루마니아의 한 계란 처리공장에서 관계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