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국제 문화의 중심지 되는 선전
세상의 모든 물건을 만들어 내는 도시
‘프랭키스’에 가보았는가? 중국에 있는 미국이다. 바니시가 칠해진 매대가 가게 내부를 가로지르고, 오크 나무로 만들어진 팻말이 뒤편의 흡연실을 가리키고 있다. 벽돌 벽에는 맥주회사 로고들과, 액자에는 추억을 자아내는 사진들이 잔뜩 붙어 있다. 20대들이 닭날개를 먹으며 키가 큰 테이블 사이를 어슬렁거린다. 다른 많은 술집에서도 보았듯 사내가 빈 의자들 사이에 앉아 있다. 카운터 아래의 못에 코트를 걸고, 와인 한 잔을 가져다 놓고 양초를 바라보고 있다. 어둑한 천정의 조명이 칠판에 써진 맥주 목록을 비추고 있다. 10여 종류의 술 이름이 적혀 있다.
그 중에는 ‘기네스’도 있었고, 캔사스 시티에서 만든 ‘탱크 7 팜하우스 에일’도 있다. ‘탱크 7 팜하우스 에일’은 독하다. 도수가 8.5도나 되기 때문에 1~1.5 리터 이상 마시면 바텐더도 주의를 줄 것이다. 그러나 ‘프랭키스’에서 자랑하는 치즈버거와 함께 먹으면 괜찮다. 손으로 빚은 거대한 패티가 건강에 좋은 치즈 덩어리 위에 얹혀져, 빵 사이에 끼워져 나온다.
전문적으로 요리를 평가하는 어떤 매체에 따르면 “이 도시 최고의 버거다! 지방과 고기의 비율이 최적이다!” 치즈버거가 아닌, 이 가게 특유의 분위기에 초점을 맞춘 리뷰도 있다. “내가 그리워하던 남부식 분위기.” “프랭키스에 오면 고향에 온 것 같다.” 여기서 고향은 미국을 말한다. 그리고 중요한 함정이 하나 있다. 프라이드 치킨 냄새 물씬 나는 이 미국 남부식 가게는 다름 아닌 중국의 선전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가게는 선전에 거주하는 외국인 사회의 명실상부한 중심지에 있다.
프랭키스는 조시 비스마노브스키 같은 이들의 단골집이기도 하다. 비스마노브스키는 샌 프란시스코 베이 에이리어의 토박이다. 그는 화면 속 알프스 시냇가에다가 전선으로 연결된 플라스틱제 게임용 산탄총을 이리저리 겨누고 있었다. 그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자 수북한 갈색 곱슬머리가 출렁거렸다.
그는 플라스틱 총열덮개를 제치고 총을 쐈다. 그의 총탄은 명중했다. 그러나 쏴서는 안 되는 동물에게 맞았다. 팝업 식 대화상자에 경고 메시지가 떴다. “소를 쏘면 안 됩니다!” 게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게임이 끝난 그는 맥주잔을 비우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밤 공기는 따뜻했고, 태풍이 몰고 온 폭우가 도시를 3일째 물청소하고 있었다. 프랭키스 앞에는 유리로 된 차양이 있었다. 그래서 그 아래 있으면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수입산 일제 담배를 꺼내는 비스마노브스키의 시선은 홍콩을 향하고 있었다. 유명한 기하학적인 스카이라인이 있는 홍콩의 도심이 아닌, 교외 지역을 말이다. 녹색의 마이 포 습지대와 음산한 분위기의 록 마 차우가 보인다. 이곳들은 중국 정부가 ‘문화적 무정부 상태’인 홍콩과 ‘깨끗한’ 본토를 분리하기 위해 세운 완충지대다.
프랭키스 바 앤 그릴이 위치한 광동 성(省) 선전 시(市) 푸티안 구(區) 귀후아 로(路)는 엄연히 중국 본토다. 그리고 이 가게는 자유무역지대에서 약 15m 정도 떨어져 있다. 프랭키스의 가게 앞면은 좁고, 녹색으로 빛나는 간판이 없다면 그 옆의 창고 건물들과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이 가게는 트랙터 크레일러들이 잔뜩 주차해 있는 거리 맨 끝에 있다. 그러나 5년 전에 문을 연 이 가게가 급변하는 선전 시에서 제일 가 볼만한 술집이라는 데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 곳의 시간은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흐른다. 지난 1980년 등소평은 목가적인 시골 마을에 불과했던 선전 시를 경제특구 시범지역으로 지정했다. 경제특구는 서구 기업들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는 장소다. 그리고 경제특구는 성공했다. 그 2년 전인 1978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무역 진흥 정책, 저렴한 숙련 노동력에 매료된 전 세계의 기업인들은 선전으로 공장을 차리러 몰려왔다. 경제특구 지정 전, 선전 시의 인구는 3만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재의 인구는 1000만 명이 넘는다. 선전 시의 항구는 중국에서 제일 바쁜 항구다. 사실 이것은 이전에도 잘 알려진 바다. 선전에서는 아이폰을 비롯해 만들지 않는 제품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는 중국의 기술을 다루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의 생활을 다룰 것이다.
2013년 현재 선전 시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은 22,000명에 달한다. 그리고 매년 이 도시를 방문하는 외국인은 8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의 출신성분은 다양하다. 집까지 구입해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제조업계의 베테랑, 드높은 열정과 약간의 담보금만 가지고 비행기에서 막 내린 신생기업 사장, 첨단과학기술에 대해서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만큼 무식한 영어 교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과의 접촉을 원하기에,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고 있는 이 도시에 매료되어 모인 이 지극히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은 사업과는 거리가 먼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새로운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혁신적인 변화다. 더워진 바다가 태풍을 키워내듯이, 인류의 불가피한 진보는 국경을 지우고 있다. 변화는 폭풍처럼 격하고, 선전은 미개척지다. 전 세계의 모습을 바꾸는 변화는 이곳 선전에서 가장 극렬하게 일어나고 있다. 10억 명이 넘는 국민이 자유롭게 인터넷을 할 수 없게 하는 강력한 정부를 가진 중국. 그러나 그 본토에 서구의 경제와 인력, 문화가 침공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얼마 전 미국 대선 때 터져 나온 격렬한 반 세계화 구호조차도 말이다.
물론 변화로 인한 고통도 크다. 그러나 이 혼란이 지나가고 나면 어떤 것이 성장할지가 벌써 보이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해리스 뉴욕 바(프랑스 파리에 있는 바 이름)에서 고국을 떠나 온 외국인들이 압생뜨(쓴 쑥으로 만든 초록빛 술)를 들이킨 이후, 가장 강력한 문화적 힘을 가진 외국인들이 바로 선전의 외국인 사회다. 해리스 뉴욕 바의 외국인들 역시 힘든 경제적 여건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파리에 와, 변화의 에너지를 제어해 미술, 문학, 음악 등을 만들었다.
선전의 거리를 걸으면 국경 없는 세상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해리스 뉴욕 바 시절과 같은 인물들이 보일 것이다. 꿈을 쫓는 사업가들, 영감을 추구하는 미술가들, 몰락한 상류층들, 자아를 탐구하며 방황하는 이들. 물론 아직 이들 중에 선전판 헤밍웨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 외국인들의 실험 정신, 그리고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는 이 환경 속에서 선전판 헤밍웨이의 싹은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우리가 선전판 헤밍웨이를 찾지 못한 이유는, 그런 사람은 책을 만들 거라고 선입견을 가진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펜 대신 땜납과 전선을 붙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이나 시가 아닌 전자기기와 앱에 마음을 빼앗긴다. 전 세계에서 온 창의 인재들이 모인 이 곳은 기존의 미술 중심지가 아니라, 이제 막 커나가는 글로벌 경제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시장’으로 알려진 SEG 전자광장 내에는 없는 전자제품이 없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