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원작·넷플릭스 방영
자살 여고생이 남긴 테이프 통해
교내 만연한 성폭력·왕따 고발
“자살 미화·모방 등 악영향”
학교당국 경고문 발송
부모들도 대책 마련에 부심
2013년 자살로 아들을 잃은 휴스턴의 한 간호사는 넷플리스에서 드라마 ‘13가지의 이유(13 Reasons Why)’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덜컥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15세 딸은 이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서 본 후였다.
‘13가지의 이유’는 여고생 해나 베이커의 자살을 다룬 드라마다. 성폭행과 추행, 왕따 등 끊임 없이 성적 괴롭힘에 시달린 끝에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나는 죽기 전 자신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한 오디오 테이프를 남겼다. 자신을 강간한 상급생, 변덕스런 친구들, 자신을 괴롭힌 불리들(bullies), 자신의 고통호소에 무관심했던 어른들…그녀가 남긴 테이프는 한편으론 자살을 정당화하는 해명이기도 했고 한편으론 친구들에 대한 복수이기도 했다.
방영 시작 후 한 달 동안 틴에이저들의 선풍적 인기를 끈 이 드라마는 “자살에 대한 메시지가 너무 부정확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하다”는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강도 높은 지적을 받고 있다.
전국의 교육감들과 학교 카운슬러들은 ‘13가지의 이유’가 자살을 미화하면서 상처받기 쉬운 학생들에게 모방행동과 자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문을 발송하고 있다.
“우리는 자살을 낭만적으로, 선정적으로 다룬 이 드라마를 우리 아이들이 성인의 감독 없이 시청하는 것을 우려한다”고 뉴욕 답스 페리의 교육감 리사 브래디는 학부모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말했다.
제작자들은 드라마가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휴스턴 간호사 가정의 경우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재난’이었다. 자살한 오빠의 시체를 맨 처음 발견했던 그녀의 딸은 그 후 계속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려 왔다. 그래도 몇 년에 걸친 검진과 치료요법으로 조금씩 좋아 지고 있었다 - 아이가 ‘13가지의 이유’를 시청하기 전까지는.
이제 아이의 내면엔 절망과 자살 생각이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고 간호사 엄마는 말한다.
“내가 이 드라마에 대해 미리 알았더라면, 딸아이의 넷플리스 어카운트를 좀 더 모니터 했을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아이가 우울증이나 자해 및 자살 성향을 가졌다면 이 드라마를 시청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 금요일, 플로리다 주 팜비치 카운티의 로버트 아보싸 교육감은 이 드라마가 방영을 시작한 후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자해와 자살 위협이 늘어나는 경향이 감자되었다고 밝혔다.
넷플리스의 이 드라마 시리즈는 2007년 베스트셀러였던 제이 애셔의 청소년 소설 ‘열세가지의 이유’를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드라마에는 해나가 면도날로 자살하는 장면 등이 나오는데 제작진은 전혀 미화되지 않은 죽음이며 불필요하게 (선정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한다.
넷플리스는 또 출연진과 프로듀서들,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이 드라마의 힘든 장면들에 대해 토의하는 30분짜리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는데 제작자 브라이언 요키는 “우리는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게 고통스럽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자살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17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에겐 적절치 않은 프로라는 TV-MA 등급을 받은 이 드라마에 대해 발표한 성명에서 넷플릭스는 “우리 (넷플릭스 가입) 회원들은 ‘13가지의 이유’가 그들 가족과 전 세계의 커뮤니티에서 중요한 대화를 촉발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동의하는 학부모도 있다. 16세 딸과 이 드라마를 함께 시청했다는 엄마 돈 자와츠키는 “오히려 우리에겐 경각심을 주었다”고 이 드라마를 옹호했다.
그러나 청소년 자살예방단체 JED 파운데이션의 수석의료담당관 빅터 슈왈츠박사는 이 드라마를 ‘하나의 긴 복수 스토리’라면서 시청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보고 한꺼번에 몰아보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청소년들이 자살을 사람들에 대한 보복의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해나의 자살을 모방할 위험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전국학교심리학자 협회는 자살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 학생들은 이 드라마를 아예 시청하지 말라면서 보더라도 틴에이저들은 반드시 “자살이 어떤 문제에도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해줄 부모와 함께 시청할 것을 권유했다.
청소년 자살방지 관련 전문가인 데이빗 밀러박사는 “성인들이 무능력하고 무신경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 이 드라마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리고 지적했다. 위기에 처한 학생들로 하여금 중요한 도움받기를 아예 포기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한 남학생은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학교 카운슬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 “그녀가 스스로 죽기를 원했다면 우리는 막을 수가 없다” - 이 같은 말은 위험에 처한 틴에이저를 돕는 방법으로 교사나 친구들에게 알려진 지침과는 상반된 것이다.
해나는 자살하기 전 학교 카운슬러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한 상급생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카운슬러는 해나에게 눈물을 닦으라고 휴지를 건네주었을 뿐 자살 위험 평가나 입원 등 자살예방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어른들이 아무 관심이 없다는 위험한 메시지를 주는 “완전 직무 태만”이라고 밀러박사는 말했다.
여고생 해나 베이커(캐서린 랭포드)가 자살하며 테이프에 남긴 원인과 가해자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는 내용의 드라마 ‘13가지의 이유’ 중 한 장면.
해나의 테이프는 가장 믿었던 친구 클레이 젠슨(딜란 미넷)에게도 배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