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독점서 중저가 중심 일반인들도 몰려
작가 이름 맹신하지 말고 시장 제대로 공부를
‘인간의 가장 수준 높은 정신을 감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능력’(헤겔) ‘삶의 긍정이자 축복, 삶을 완성시키는 것’(니체) 그런 예술의 환금성과 시장성을 따지는 게 여전히 불편한가. 그러나 예술은 열심히 그리고 만들고 찍어 내는 예술가들의 열정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후원해야 한다. 화랑에서, 경매에서, 아트 페어에서, 온라인 상점에서 치르는 가격은 신진 작가, 젊은 작가, 가난한 작가에 대한 투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위한 투자다. 침실에 건 화사한 꽃 그림을 보면서, 거실 장식장에 놓아 둔 백자를 보면서 기뻐할 수 있다면, 당장 대박이 나지 않아도 즐겁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초저금리 시대에 힘을 못 쓰는 재테크 대신 ‘아트 테크’에 눈을 돌려 보는 것은 어떨까. ‘우아하고도 영리한 투자 활동’으로 해석되는 세상. 그 세계를 살짝 들여다봤다.
▶보고, 느끼고, 공부하라
세계 경제 흐름에 울고 웃는 금융 상품, 감가상각 비용이 크고 중고 가격이 확 떨어지는 사치재, 리스크가 큰 부동산… 미술품이 대체 투자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컴퓨터 모니터의 숫자나 무게로만 존재하는 금융자산이나 금과 달리 취향에 따라 고른 작품을 즐기면서 보유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미국에서는 투자액의 전부를 미술품에만 쏟아 붓는 아트전용 펀드까지 등장할 정도로 대중화 추세다. 마땅한 투자 상품을 찾지 못한 사람들 중 미술품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이 있다면 고려해 볼만하다.
물론 세상은 넓고 작가는 많다는 것은 문제다. 모든 미술품이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미술 투자 입문자를 위한 현실적 팁을 모아봤다.
우선 △원로 대가의 회화, 드로잉, 소품에서 시작하는 게 안전하다. 판화보다는 사진이 낫다. △저평가된 젊은 작가, 미술계에서 검증 받았지만 아직 회고전을 열지 않은 작가를 부지런히 찾아내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언젠가 뜨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자. △사려는 작품이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자. 작가의 화집을 살펴보고 공부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스스로 보는 눈이 없다고 생각하면 경매사를 택하라. 현 시점에 가장 잘 팔릴 만한 작품들이 세심하게 선별돼 나온다. 경매사가 출품 가격을 낮추려 하기 때문에 합리적 가격에 좋은 작품을 구할 기회가 많다.
△취향이 분명하고 안목에 자신이 있다면, 또 장기 투자를 고려한다면 화랑으로 가자. 역량 있고 검증된 화랑이 개최하는 개인전과 회고전을 노려라. 다양한 전시를 찾아보고 자신과 취향이 맞는 화상을 만나는 것도 좋다.
참고로 미술품 경매 투자 원칙도 살펴보면 △작가에 대한 공부 필수-작가의 스토리, 작품 흐름, 작품 세계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좋은 작품을 살 수 없다. 같은 작가, 같은 크기의 작품이라도 대표작, 희귀작, 스토리가 있는 작품을 고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좋다. 스토리가 있는 작품들의 경우에는 급격히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작품들에 투자한다면 리스크를 관리하면서도 투자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조언을 해줄 컨설턴트 필요-어느 분야에나 컨설턴트가 필요하다. 경매회사의 스페셜리스트 등 미술시장의 정보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자.
△미래의 문화에 대한 투자-좋은 작가, 좋은 작품에 대한 투자는 미래 문화 자산에 대한 후원이자 투자이다. 당장은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이런 투자가 늘어날수록 미술시장의 여건도 좋아지고 투자 수익도 얻을 수 있게 된다.
▶실망으로 끝난 사례
미술품 투자가 재벌가와 부유층이 독점하는 취미 생활 또는 탈세 수단이던 시절이 저물고, 미술 시장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업계는 월급을 아끼고 아껴서 미술품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미술품 투자 초보의 한 회사원은 “1, 2년 지나면 옷장에 처박히는 명품 핸드백 대신 미술품에 투자하려 한다”고 했다.
하지만 초보자들의 무모한 미술품 투자는 종종 쓴맛을 보기 일쑤다. 주식 시장의 개미 같은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미술과 시장을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한국의 한 초보투자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부모님 소장품인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와 헝가리 옵아트 작가 빅토르 바자렐리의 석판화 두 점의 시세를 미술품 시세 감정 애플리케이션인 ‘프라이스 잇’(Price It)을 통해 알아보았다. 작품 사진을 찍어 올리고 며칠 만에 감정가가 나왔는데 결과는 황당했다.
1990년대 서울 삼청동 화랑에서 오르내린 가격이 수백만 원이었다는 석판화 두 점의 시세가 각각 100만~300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석판화는 “진품으로 최종 확인되면 경매에 내놓을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확연했다. △무어와 바자렐리는 유명하기는 하지만 요즘 미술 시장에서 각광받거나 활발하게 거래되는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요이 쿠사마, 요시토모 나라를 비롯한 극소수 작가 작품이 아니면 판화는 별로 인기가 없다는 것이 미술품 감정 평가사의 설명이다.
미술시장이 단지 작가의 이름이나 왕년의 가격만 믿고 덤비면 안 되는 냉정한 곳이라는 깨달음만 얻었다.
최근 부유층이나 전문가들이 독점하던 미술품 투자시장에 중저가를 중심으로 일반인들도 몰려들고 있다. 미술전시회에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