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신전·개선문‘승리의 아치’등
루이스-프랑수아 카사스가
18세기에 남긴 건축물 드로잉들
프랑스 해군장교 루이 빈뉴가
19세기 찍은 사진들과
폭파된 현재 모습 비교할 기회
시리아 내전은 약 50만명의 사망자를 냈고 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이 나라의 중요한 도시 알레포를 거대한 살육장으로 만들었다.
전쟁은 고대유물 역시 파괴하고 있다. 2015년 5월부터 2016년 3월 사이의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슬람 국가(ISIS)는 3세기 로마 식민지의 붐타운이었던 고대 도시 팔미라(Palmyra)를 장악하고 팔미라 인들이 이슬람 이전에 숭배했던 ‘벨 신전’과 개선문 ‘승리의 아치’ 등을 비롯한 여러 사원들을 잇달아 파괴했다. 그들은 또 이 도시의 박물관을 다 뒤엎어 버린 것도 모자라 팔미라 역사의 권위자인 고고학자 칼레드 알-아사드가 유물들이 보관된 장소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참수해 온라인에 게시했다. 포로로 잡힌 사람들을 폭발물과 함께 고대 유적의 기둥에 묶은 다음 폭파시키는 방법으로 인면수심의 흉악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작년 봄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군이 이 지역을 탈환했으나 12월에 다시 팔미라 지역은 ISIS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지난달 이들은 로마 원형극장과 테트라필론을 폭파시켰다. 3세기 로마시대 유적인 테트라필론은 4개 기둥이 구조물을 받치고 있는 일종의 기념문으로 보존이 잘 돼 있는 유적이었다.
지난 주 러시아 국방부는 새로 파괴된 극장을 보여주는 드론 영상을 공개하고, ISIS가 더 많은 유적 파괴를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 고대 도시의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 ISIS의 파괴로 무엇이 없어졌는지를 알아보려면 게티 연구소(Getty Research Institute)가 열고 있는 온라인 전시 ‘고대 팔미라의 유적’(The Legacy of Ancient Palmyra)을 관람하면 된다. 게티가 이번에 처음 시도한 이 전시는 웹사이트(www.getty.edu)에서 이슬람 시대 이전의 이 도시에 관한 판화 및 사진을 보여주는 디지털 전시로, 연구소의 프랜시스 터팍 큐레이터와 피터 루이스 본피토 연구원이 기획한 것이다.
이 전시는 두 종류의 역사적 이미지를 통해 지금은 거의 다 파괴된 팔미라의 오래전 모습, 혼합주의적이고 다문화적인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는 건축가 루이스-프랑수아 카사스의 드로잉을 모사한 18세기 판화들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해군 장교였던 루이 빈뉴가 찍은 19세기 사진들이다. 특히 게티가 2015년에 구입한 빈뉴의 사진들은 팔미라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사진들이며 일반에 거의 공개된 적이 없는 이미지들이다.
유럽인들이 팔미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691년이다. 알레포에 있던 일단의 영국 상인들이 사막을 건너서 오래전 폐허가 된 도시를 보러 갔다. 그리고 그곳에 남아있는 건물들에서 그레코 로망과 페르시안 무늬가 섞인 문양을 찾아냈다. 1753년 영국의 고전학자 로버트 우드는 팔미라에 관해 책을 썼으며 여기에 이 도시의 건축적 장식들을 자세하게 묘사한 일러스트레이션을 함께 실었다. 이 그림들은 영국의 디자이너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고 당시 런던에서 지어진 건축물에 이런 장식이 유행하기도 했다.
루이-프랑수아 카사스는 로마에서 공부하던 젊은 시절부터 고대 유물에 대한 열정을 갖고 팔미라를 굉장히 자세하게 그림으로 남겼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프랑스 대사에 의해 근동 지역으로 파견되었고 사이프러스, 레바논, 팔레스타인, 시리아의 중요한 유적지를 기록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1785년 5월 그의 29번째 생일 즈음 이곳에 도착한 그는 한달도 안 돼 팔미라에 있는 모든 건축물을 그림으로 그렸다. 대리석 그루터기들과 쓰러진 기둥들이 잔뜩 덮여있는 그림들이었다.
“두 동강이 난 풍요로운 장식의 엔타블라처(기둥 윗부분)와 문틀들이 여기저기 누워있는 가운데 주두와 기둥들이 뒤집혀져 쓰러져 있다. 이렇게 멋진 폐허 더미 너머로 눈부신 모래 바다가 마치 수평선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다”고 카사스는 기록했다. 그는 팔미라에 있는 건축물들의 평면도와 고도를 포함한 상세한 도표를 만들었고 바빌로니아, 페니키아, 그리스의 여러 신들을 숭배했던 이 도시의 묘지와 저수지, 사원들과 아치들, 조각상들 및 건축 프리제 등 수많은 유적들을 그렸으며 나중에 그림들을 책에 출판하기 위해 판화로 제작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 후 빈뉴는 프랑스 과학탐험대를 따라 근동으로 가서 사해와 페트라 유적지를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1864년에 혼자서 팔미라로 들어가 그 고대 도시를 처음 사진으로 찍은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이 탐험의 후원자가 금방 죽어버리면서 그의 팔미라 이미지들은 페트라 사진들과는 달리 공개되지 못했고, 이후 일부는 싱글 프린트만 남았다. 게티는 2년전 그 이미지들을 모두 구입했고, ISIS가 도시를 파괴하기 시작하자 디지털화 작업을 해왔다.
1946년 시리아가 독립한 후 고고학자들이 팔미라의 발굴을 시작함에 따라 이 고대 도시는 카사스와 빈뉴가 남긴 이미지들보다 훨씬 대단한 유적들을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시장도 발견됐고, 포럼들과 신전의 기저부들도 발굴됐다.
이들을 모두 매혹시킨 바로 그 유적들은 ISIS가 증오하고 있는 것들이다. 한때 활발한 동서 교역에 의해 다문화, 다신교, 다중언어가 융성했던 이 도시의 자취는 극단주의 회교 믿음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상타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은 시아파 신도들과 수피 성인들의 무덤도 폭파시키는 등 문화재 파손을 회교도들의 선동의 도구로 삼고 있다.
게티의 온라인 전시가 팔미라의 유적들을 충분히 자세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 이런 이미지들은 디지털 상에서 많이 회자되는 것이 중요하다. ISIS가 디지털 세계에서 그들의 잔인성을 드러내놓고 광고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미 전쟁은 무기만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한 싸움이 돼버렸다. 우리는 곁에 있을 때 그 소중함을 모르는 중요한 이상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들이 필요하다. 이 판화들과 사진들은 사라진 고고학적 유물의 증거로서 뿐 아니라, 지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닫아버리려고 하는 다문화 교환과 탐험의 증거들이기 때문이다. <사진 게티 연구소>
카사스의 드로잉을 시몽-샤를 미게르가 제작한 판화 ‘베두인 시크 교도들에게 선물하는 카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