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보다 집, 가방보다 그릇으로 트렌드 변화 감지
대부분 패션 브랜드들 홈 리빙 아이템 출시 경쟁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 아닌 스스로의 만족
‘잇백’과 ‘먹방’의 시대를 거쳐 집 꾸미기, 홈 인테리어가 트렌드의 화두가 됐다. 아무리 근사하고 값비싼 가방이라고 해도 상품 하나로 우리의 삶이 달라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이에 반해 홈 인테리어는 한 때의 호사가 아닌 항시적 쾌락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가성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처럼 되었다. 패션에서 리빙으로, 라이프 스타일의 패션화에 대해 조명해본다.
▶홈 리빙 인테리어 관심 급증
‘럭서리 패션의 관심 대상이 달라지고 있다. 물론 잇백의 열기가 아주 식은 것은 아니지만 럭셔리 패션에 대한 관심이 음식을 거쳐 집 꾸미기로 급격히 이동 중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날마다 자고 먹고 쉬는 공간의 스타일리시한 갱신이야말로 상품이 아닌 경험을 산다는 최근의 소비 철학에 부합하는 것. 1년 365일 온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공간-그 아무리 좁고 계약 만기면 이사가 불가피해도-을 안락하고 쾌적하며 멋지게 꾸민다는 것은 시대정신이 된 ‘가성비’의 측면에서도 잇백과 맛집의 쾌락을 압도한다.
집밥, 집술, 홈파티, 홈트레이닝, 홈바캉스(스테이케이션) 등 웬만한 활동을 집에서 해결하려는 최근의 트렌드는 홈 인테리어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다가 경기 침체로 인해 주머니가 가벼워지면서 이에 따른 심리적 위축도 ‘집 안에서의 힐링’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 ‘홈인테리어는 나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응답이 절반 이상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이 말 그대로 메가 트렌드가 된 이유다.
▶패션브랜드에서 리빙 제품이
‘이 브랜드에서도 리빙 제품이?’ 요즘 홈 인테리어 제품은 웬만한 브랜드에서는 거의 나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패션 브랜드들의 토털 리빙화는 더 뚜렷하다.
미쏘니, 랄프로렌, 에르메스, 펜디, 루이비통 같은 명품 브랜드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 브랜드의 그릇이나 침구, 소파 등은 럭서리 인테리어의 핫 아이템이 된지 오래다.
물론 최근에 불고 있는 이런 홈 인테리어 바람이 모두 명품 브랜드에만 향한 것은 아니다. 경기침체와 함께 대중화 된 트렌드로 인해 되도록 저렴하지만 세련되고 깔끔한 제품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아이키아(IKEA)를 필두로 메이시스, JC 페니 같은 백화점들과 H&M과 자라(Zara)의 패션브랜드까지 총망라, 홈 컬렉션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부 패션브랜드 매장은 아예 대형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어 층별로 패션과 생활가구, 인테리어 소품 등을 판매하기도 한다.
이 같은 추세에 대해 업계는 “디자인과 트렌드에 대한 소비자 관심과 욕구가 증가하면서 라이프스타일의 패션화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소비자들은 범주를 가리지 않고 작은 소품 하나도 자신의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패셔너블한 상품을 선택하려 하고 주력업종이 무엇이든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아우르는 형태로 제시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판매하려는 상품이 무엇이든 그들이 파는 것은 라이프스타일이어야 하므로 장르 간 장벽 철폐 는 자연스런 일이라는 것. 전혀 다른 브랜드 간 콜라보레이션도 빈번해졌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유명한 테이블웨어 브랜드 ‘이딸라’는 최근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와 협업해 홈 컬렉션 제품군을 선보였다. 4년여에 걸친 작업을 통해 식기뿐 아니라 쿠션과 테이블매트, 냅킨, 에코백 등 패브릭 소품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패션의 리빙화도 두드러졌다.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마틴싯봉이 선보인 테이블웨어 ‘마틴싯봉리빙’은 지난 해 한국에서는 ‘품절 소동’까지 생길 정도로 빅히트를 쳤다.
패션과 리빙을 접목시켜 새롭고 창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겠다는 포부로 런칭한 마틴싯봉 리빙은 패션의 패턴을 그릇에 얹은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스타일리시한 일상을 위한 테이블웨어를 보여줬으며 침구류까지 제품군을 확장했다.
▶스스로 즐기는 홈 인테리어
이제 집 꾸미기는 누군가에게 과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하는 유쾌한 작업이 됐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웍서비스와 블로그가 대세인 시대인 만큼 ‘온라인 집들이‘ 같은 것을 하기는 한다.
인테리어가 신혼부부나 가정주부들만 관심을 갖는 분야라는 생각도 시대에 뒤떨어진 선입견일 뿐 이다.
2030 젊은이들, 특히 독거남성들이 셀프 인테리어 바람은 유독 거세다. 북 유럽풍으로 꾸민 침실과 킨포크 스타일의 작은 원목 테이블, 영국식 애프터 눈 티타임이 부럽지 않은 근사한 그릇에 소박한 집밥을 담아 먹는 모습도 더 이상 낯설지 않을 정도다.
작은 소파에는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패턴의 쿠션들이 지친 허리를 받쳐주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차려입은 홈패션은 누가 찾아와도 부끄럽지 않다.
인스타그램이 없어도 포기할 수 없는, 이것이 ‘나’의 라이프스타일이다.
H&M 홈 인테리어 제품으로 꾸민 실내 모습(사징 위)과 화이트와 베이지, 브라운의 컬러믹스로 내추럴하게 꾸민 마틴싯봉리빙의 오가닉 클래식 홈세트.
소품으로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데 쿠션만한 것도 없다. H&M 홈 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