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맞아 편성전략 마련 부심
“유별난 대통령 취재 큰 도전 될 것”
케이블 뉴스 네트웍들로서는 2016년을 마치면서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감정을 가질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트럼프의 역사적인 캠페인 덕에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런 애증관계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CNN, 폭스 뉴스, MSNBC의 이번 달 시청률은 놀라운 수준으로 치솟았다. 트럼프를 둘러싼 온갖 논란들을 실시간으로 보도한 덕분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면서 이들은 미디어를 불신하고 조롱거리로 여기는 대통령을 취재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런 대통령은 전례가 없다. 트럼프의 전투적 스타일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전대미문의 대통령은 미디어 기관들의 중추적 기능을 시험하게 될 것이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CNN 사장을 지낸 베테런 TV뉴스 전문가 조너던 클라인은 “트럼프는 정당성을 지닌 언론 탐사보도의 가장 적합한 목표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규칙 위반자 혹은 게임의 변화자라는 위치를 설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통성에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언론인들이라면 이런 것들을 취재하는 일에 입맛을 다시는 게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언론인 출신으로 조지 워싱턴 대 언론학과장인 프랭크 세스토 역시 “트럼프 같은 독특한 성격의 인물이 아무런 정부 경험이나 이념적 지도 없이 백악관에 입성한다는 전례 없는 일 자체가 케이블 뉴스 매체들에게는 ‘목적의 시간’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선 후 케이블 매체들의 시청률 하락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폭스뉴스 시청률은 2016년 1월에 비해 26%가 올랐다. CNN 역시 15% 시청률 증가를 기록했다. 특히 MSNBC의 경우 시청률이 무려 36%나 뛰어 올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마치 캠페인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케이블 매체들은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CNN은 2016년 캠페인 기간 중 늘렸던 정치 평론가들을 한층 더 보강했다. 시청률 폭등을 맛본 진보성향의 MSNBC는 종종 트럼프의 공격을 받은 캠페인 보도기자 케이티 터를 새 행정부 출범 후 100일 동안 낮 뉴스 앵커로 기용하기로 했다. 폭스 뉴스는 공화당이 깜짝 승리하자 메긴 켈리 대신 보수적 논평가인 터커 칼슨을 밤 9시 프로그램에 기용했다. 켈리는 이 방송의 다른 앵커들보다 트럼프에 더 비판적이었다. 이런 조치는 공화당 골수 지지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트럼프에 표를 던진 사람들 가운데 40%는 폭스 뉴스를 통해 뉴스를 접한 것으로 퓨리서치 조사에서 밝혀졌다.
칼슨은 최근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트럼프나 그 누구를 위한 치어리더가 되고 싶지 않다며 트럼프의 떠벌리는 언사보다 그의 정책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청자들의 정치적 성향이 무엇이든 트럼프의 대한 뜨거운 관심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클라인은 “세계가 곧 끝나지 않을 것이며 핵전쟁이 발발하지 않을 것이라 것을, 또 소요사태가 전국을 휩쓸지 않을 것이라 사실을 대중이 인식하고 안심하게 되면 시청률은 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 첫 한 달 동안은 시청자들이 TV앞을 떠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예선기간 중 일부 평론가들은 CNN이 트럼프가 시청자들에 어필하는 힘을 의식해 그에 대해 너무 유화적으로 보도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의 당선 후 CNN은 공격적 보도를 해 왔으며 러시아가 트럼프에 대한 개인적 정보를 갖고 있다는 특종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방송은 자사 기자인 짐 아코스타의 보도에 대해 트럼프가 ‘가짜 뉴스’라고 잘못 비난하자 기자를 적극 감싸왔다. 한 관계자는 이 보도 이후 CNN 내부 분위기는 크게 고무됐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CNN을 가장 많이 비판한다. 그것은 그가 이 채널을 가장 많이 시청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한 관계 때문에 이 매체의 모기업인 타임워너가 AT&T와의 854억달러짜리 초대형 합병을 위해 CNN을 분사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트럼프는 이 합병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런 입장은 규제를 비판해 온 그의 기존 입장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하지만 AT&T의 랜달 스티븐슨 회장은 현상 과정에서 뉴스커버리지에 관한 내용이 거론된 적은 없었다며 이런 관측을 부인했다. CNN은 논평을 거부했다.
역대 다른 대통령들도 미디어들과 충돌했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기자들 전화 도청을 지시하기도 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보좌관들은 맘에 들지 않는 보도를 하는 NBC 방송을 음해하기 위해 주요도시들에서 편지쓰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자신에 대해 신랄한 보도를 계속한 폭스 뉴스를 비난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자로서 트럼프가 언론에 보인 적대적 태도와 매체 공격을 위한 소셜미디어의 잦은 사용이 던진 여파는 한층 더 크고 즉각적이었다. 그는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비판을 많이 퍼부었다. 가장 최근 목표물은 미국기업들이 해외 이전을 취소한 것과 트럼프는 별 상관이 없다는 내용을 보도한 NBC 방송의 ‘투데이’였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이 방송을 맹비난했다.
케이블 매체들이 시청률 상승 속에 트럼프의 또 다른 주요 공격목표가 돼 온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역시 대선 이후 구독자가 상당히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LA타임스 본사특약>
취임식에 앞서 열린 후원자 리셉션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 당선 후 케이블 뉴스 채널들은 시청률 상승효과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