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거래가 시작되면 셀러, 바이어, 리스팅 에이전트, 바이어 에이전트는 모두 하나의 목표를 위해 힘쓴다. 체결된 구입 계약이 무사히 완료되는 것이 주택 거래 당사자들의 한결같은 희망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예상치도 못한 이유로 잘 진행되던 주택 거래가‘산’으로 향하기도 하고 급기야 에스크로 마감을 앞두고 깨질 때도 무수히 많다. 주택 거래가 중도에 무산되면 당사자들은 한결 같이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는 특히 부동산 에이전트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해였다. 주택 거래 취소율이 전년에 비해 2배나 높아졌던 것으로 조사됐다. 블룸버그 통신이 온라인 부동산 업체‘트룰리아 닷컴’ 조사를 인용, 지난해 주택 거래 취소 현황을 분석했다.
가족이 사고를 당해서
LA 동부 지역의 한 한인 에이전트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전 내놓은 집을 보러 오는 바이어가 단 한명도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중이었다. 쥐죽은 듯 조용하던 바이어들의 발길이 대선이 끝남과 동시에 하나, 둘씩 이어지면서 다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때마침 모기지 이자율이 급등하면서 집을 보러 온 바이어들은 모두 당장 집을 살 것 같은 분위기였다.
결국 기다렸던 바이어의 오퍼가 지난해 연말 한 건 제출됐다. 그것도 셀러가 내놓은 가격에 ‘한 푼’도 깎지 않은 가격에 구입하겠다는 오퍼였다. 셀러와 한인 리스팅 에이전트는 모두 들뜬 마음으로 에스크로를 개설하고 주택 거래를 진행할 준비 중이었다.
에스크로를 오픈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바이어측이 갑자기 뜬금 없는 소식을 전해왔다. 바이어의 형제 중 한명이 갑작스런 사고로 응급 치료를 받게됐다는 것. 결국 주택 구입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구입 계약을 취소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셀러는 주택 구입 취소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됐지만 이미 바이어의 마음이 주택 구입을 떠난 것 같아 아쉽지만 취소 요청에 응하고 디파짓을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뒷집에 닭장이 있어서
다시 집을 내놓고 바이어들의 ‘입질’을 기다리던 중 관심을 보이던 중국계 바이어가 오퍼를 집어넣었다. 리스팅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제출돼 큰 기대 없이 높은 가격에 바이어측과 흥정을 시작했다.
몇 번의 흥정이 이어진 끝에 셀러측에게 제법 만족스러운 가격에 구입 계약이 체결됐다. 중국계 바이어가 지불할 다운페이먼트 금액도 높아 셀러측은 내심 높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에스크로를 다시 개설하고 바이어측이 디파짓을 입금한 뒤 주택 거래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홈 인스펙션을 실시했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홈 인스펙션이 진행된 뒤 인스펙션 결과를 토대로 바이어측은 셀러측에게 수리나 수리비를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중국계 바이어는 수리 요청 대신 난데없이 에스크로 취소 요청을 보내왔다.
바이어의 취소 사유는 뒷집에 거주는 이웃이 담 가까이에 닭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사유지만 취소 사유에 해당된다고 판단돼 셀러측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집을 내놓고 바이어의 발길을 기다리는 중이다.
지난해 주택 거래 중도 취소율 급증
지난해 이 한인 에이전트의 사례처럼 주택 거래 취소라는 ‘쓴맛’을 본 셀러와 에이전트가 급증했다. 온라인 부동산 업체 트룰리아 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주택 리스팅중 구입 계약 체결을 뜻하는 ‘펜딩’(Pending) 상태에서 다시 매물로 나온 리스팅 비율이 약 3.9%로 2015년이 비해 2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주택 거래 취소는 전국 100개 대도시 지역 중 약 96개 지역에서 일제히 증가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주택 거래 취소 비율이 높은 지역 중에는 LA, 벤추라카운티, 오렌지카운티 등 남가주 대도시 지역도 많이 포함됐다.
주택 중간가격이 약 54만8,000달러로 비교적 높은 벤추라 카운티의 경우 지난해 리스팅 10채중 1채(약 11.6%)는 에스크로를 개설했다가 중도에 취소됐다는 기록을 남겼다.
벤추라 카운티의 주택 거래 취소 비율은 전국 대도시중 가장 높은 비율로 2015년 약 3.1%에서 3배나 치솟았다. 주택 가격이 낮은 지역도 마찬가지로 높은 취소 비율을 보였다.
주택 중간 가격이 약 17만6,000달러대인 아리조나 투산 지역의 취소 비율은 약 10.8%로 전국에서 2번째로 높았다. 이른바 ‘실패한 거래’는 주로 저가대 리스팅과 건축 연도가 오래된 리스팅 사이에서 높게 발생했다.
첫주택 구입용으로 가격대가 낮은 ‘스타터 홈’(Starter Home) 리스팅의 거래 취소 비율은 약 6.3%로 높게 나타난 반면 고가 주택인 ‘프리미엄 홈’ 리스팅의 취소 비율은 약 3.6%로 낮은 편이었다.
건축 연도별로는 1960년대 지어진 리스팅의 취소 비율이 가장 높았고 새집과 60년대 이전에 지어진 주택의 취소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출 거절, 낮은 감정가, 리스팅 결함’ 취소 3대 요인
모기지 대출이 거절돼 주택 거래가 취소되는 사례가 가장 흔하다. 모기지 대출 거절은 사전 승인을 받은 바이어들 중에서도 흔히 발생한다. 주택 구입에 필요한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거래는 취소가 불가피하다. 그래서 주택 구입 계약서상에도 주택 구입이 모기지 대출을 승인받는 조건이라는 조항이 항상 명시된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현상은 주택 거래 취소 비율이 높았던 지난해 모기지 대출 승인 비율은 낮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기지 시장 조사 기관 엘리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경우 모기지 대출 승인률은 약 77%로 2012년 이후 가장 높았다.
낮은 감정가도 주택 거래가 취소되는 흔한 사유중 하나다. 낮은 감정가는 주택 수요가 높아 가격이 빠르게 오르는 지역에서 자주 발생한다. 셀러와 바이어간 체결한 거래가격보다 감정가가 낮게 나오면 바이어와 대출 은행측이 문제를 삼을 수 있다.
대출 은행은 감정가를 기준으로 모기지 대출액을 제한하려고 하고 이에 따라 바이어측은 셀러와 가격 협상을 한차례 더 치러야 하는 것이다. 만약 셀러측이 감정가에 맞춰 거래 가격을 인하하지 않으면 바이어측이 추가 자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두 방법이 실패할 경우 주택 거래는 취소된다.
리스팅에서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도 주택 거래가 순탄하게 이어지기 힘들다. 주택 거래가 시작됨과 동시에 바이어는 홈 인스펙션을 통해 리스팅의 상태를 점검하게 된다.
점검 결과 수리비가 많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나 주택 가치에 영향을 줄만한 요인이 발견되면 바이어는 주택 거래 취소쪽으로 기울기 쉽다. 특히 FHA융자를 받는 바이어의 경우 주택 상태와 관련된 융자 규정이 까다롭기 때문에 거래 취소율도 비교적 높다.
<준 최 객원기자>
지난해 주택 거래가 체결됐다가 중도에 취소되는 비율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기지 대출 거절 등 기존 취소 이유 외에도 지난해 다양한 이유로 주택 거래가 깨지는 사례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