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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탕 친 동료 끼니 챙긴 이민자 어부들… 정 담긴‘품앗이 스튜'

미국뉴스 | 라이프·푸드 | 2026-11-04 10:28:10

여행카세, 샌프란 대표 향토 요리, 치오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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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카세

샌프란 대표 향토 요리

해산물 스튜 치오피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스코마스의 레이지 맨스 치오피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스코마스의 레이지 맨스 치오피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대표 향토 요리로는 해산물 스튜인 치오피노가 꼽힌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만든 미국 요리로, 음식을 나누며 공동체를 중시하는 이탈리아의 식문화가 녹아 있다.

19세기 미국 서부에 정착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어업에 다수 종사했다.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한 어부는 빈 냄비를 들고 동네를 돌았고, 이웃 어부들은 팔고 남은 해산물을 조금씩 넣어 그가 가족과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때 해산물을 내준 어부도 어황이 나쁜 날에는 똑같이 냄비를 들고 나섰다. 어부들의 품앗이인 셈이다. 그래서 민간 어원으로 '조금씩 보태다'라는 뜻의 영어 '칩 인(chip in)'이 이탈리아 억양을 거쳐 치오피노가 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다른 설로는 이탈리아 리구리아주의 생선 수프인 치우핀(ciuppin)이 변형돼 치오피노가 됐다고도 한다.

본래 한 끼를 때우기 위한 어부들의 '막요리'였지만, 세월이 지나며 샌프란시스코의 대표 요리로 자리 잡았다. 치오피노가 처음 기록에 등장한 시점은 1901년. 지역 신문 샌프란시스코 콜에 레시피가 실렸는데, 당시엔 체스피니(chespini)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그날의 어획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가 달랐던 요리인 만큼 넣는 해산물은 집집마다 다르다. 보통 던지니스 크랩, 오징어, 새우, 홍합, 흰살생선 등 갖은 해산물에 진한 토마토소스와 와인을 넣고 끓인다. 신선한 해산물의 야들야들한 식감과 감칠맛이 농축된 토마토소스가 잘 어울린다. 제대로 조리하는 집은 비린 맛이 나지 않아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스튜 국물에 빵을 찍어 먹는다. 치오피노의 주재료인 던지니스 크랩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제철이니, 이 시기에 맛보면 더 좋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치오피노를 맛보기 좋은 곳은 피셔맨스 워프(Fisherman’s Wharf·어부의 부둣가)다. 바다사자 서식지로 유명한 피어39에서 서쪽 하이드 스트리트 부두까지 약 1㎞ 구간에 해산물 식당과 노점이 줄지어 있다.

이 일대에서 1850년대부터 제노바 출신 이민자들이 삼각 돛을 단 작은 배 펠루카로 어업에 나섰다. 1880년대부터는 시칠리아 출신 이민자들이 합세했다. 선원들이 품삯으로 받은 생선과 게를 길가에서 팔던 것이 지금의 해산물 노점으로 이어졌다. 1950년대 말부터 관광 시설이 하나둘 들어서며 어촌 상당 부분이 관광지로 바뀌었지만, 워프 안쪽 어항에는 지금도 상업 어선이 드나든다.

대표적인 식당은 피어47의 스코마스다. 1965년 앨·조 스코마 형제가 어부들에게 아침과 햄버거를 팔던 의자 여섯 개짜리 커피숍을 사들여 문을 열었다. 형제는 어부들이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식당에 직접 생선을 넘길 수 있도록 하역장도 지었다. 지금도 갓 조업한 수산물이 하역장으로 들어와 바로 음식점으로 전달된다. 일대 맛집으로 자리 잡자 2002년 시의회는 식당 앞 부둣길에 창업자 이름을 딴 앨 스코마 웨이라는 도로명을 붙였다.

대표 메뉴는 '레이지 맨스 치오피노(게으른 자의 치오피노)'다. 통상 치오피노는 게를 껍데기째 조리한다. 이 때문에 껍데기를 깨는 집게가 포크와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스코마스의 치오피노는 게살을 발라낸 채로 조리해 편하게 먹기만 하면 된다. 맛있지만 먹기 번거로운 갑각류의 단점을 덜어준다. 토마토소스는 시칠리아 출신인 형제의 어머니 레시피 그대로라고. 간이 조금 센 듯하지만 한 숟갈만 떠도 해산물의 선도가 훌륭하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촉촉하게 입에서 녹는 오징어가 특히 일품이다. 중후한 원목과 빛바랜 사진이 가득한 인테리어도 1960년대 미국 어촌 분위기를 느끼기에 좋다.

<샌프란시스코=글·사진이한호 기자>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정착하며 조성된 어촌 피셔맨스 워프.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정착하며 조성된 어촌 피셔맨스 워프.

 

 

스코마스 내부는 따뜻한 우드톤 위주로 마감돼 있다.
스코마스 내부는 따뜻한 우드톤 위주로 마감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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