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창세기 Genesis 44: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남아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창세기 44:33).
1. 족장(Patriarch)의 성화와 성령의 새 창조 역사
창세기 44장은 요셉의 잔에 얽힌 드라마의 극치이자, 야곱의 족장(Patriarch) 가문에 임한 ‘영적 회심과 성화’의 위대한 분수령입니다. 지난 과거, 형제를 노예로 팔아넘기던 유다가, 이제는 막내 동생 베냐민을 대신하여 자신이 노예가 되겠노라 ‘자천(自薦)’하며 나섭니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남아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창 44:33).
이 고백은 단순한 형제애나 윤리적 결단이 아닙니다. <쉽지 않은 양심의 실천>이자, 자신을 대속의 몸값인 랜섬(Ransom)으로 내어놓은 <족장 시대 최고의 결단>이었습니다. 이기적이고 타락했던 한 인간의 심령 속에 임한 ‘성령의 새 창조 역사(New Creation of the Holy Spirit)’였습니다.
2. 겟세마네의 결단과 초대교회, 그리고 ‘Realized Eschatology’
유다의 이 <자천된 랜섬>은 훗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며 철야 기도하신 후, 온 인류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로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 결단>으로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그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미 시작되고 실현된 종말론적 시대(The Inaugurated and Realized Eschatological Era)’가 개막되었으며, 사도행전의 성령 역사를 통해 이 땅 위에 ‘성령의 새 언약 창조물’인 초대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과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오늘 내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실제로 누리며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의 진수를 온몸으로 살아냈습니다.
오늘을 사는 교회의 사명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한계와 죄악이 공존하는 ‘이미와 아직 아니(Living faithfully within the tension of the 'Already and Not Yet')’의 거룩한 영적 긴장감 속에 서 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는 관념적 신앙을 넘어, 유다처럼, 그리고 예수님처럼 스스로를 내어주는 '양심의 실천'을 통해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이 땅에 증명해 내어야 합니다.
3. <달을 쏘다>: 어둠의 시대를 꿰뚫는 거룩한 화살
윤동주 시인은 그의 수필 <달을 쏘다>에서 캄캄하고 냉혹한 시대적 어둠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영혼의 결단>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 밤도 달이 뜨고, 바람이 불고, 인간인 까닭에 기울이던 흙냄새도 안다.... 나는 꼿꼿한 나뭇가지를 고나 띠를 째서 줄을 메어 훌륭한 활을 만들었다. 그리고 좀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 무사의 마음을 먹고 달을 쏘다.”
흙냄새 나는 고단한 육신을 입고 '<이미>와 <아직 아니>'의 긴장 속을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때로는 시련의 바람이 불고 어둠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그러나 유다가 자신을 ‘랜섬’으로 던졌듯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의 잔’을 받으셨듯이, 그리고 시인이 ‘무사의 마음’으로 밤하늘의 달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듯이,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어둠에 타협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대속(Ransom)이 선사한 구원의 확신을 훌륭한 ‘활’로 삼고, 성령의 권능을 ‘화살’ 삼아, 우리는 오늘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향해 <거룩한 화살>을 쏘아 올립니다. 그 화살이 꽂히는 정곡(正鵠)이 바로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이 우리 삶 속에 실제가 되는 <거룩한 제단>입니다.
4. 결단의 기도
창조주 하나님,
이기적이고 허물 많은 저희를 성령의 새 창조 역사로 부르시고, 대속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베냐민을 위해 자신을 랜섬으로 내어놓았던 유다의 결단과, 겟세마네의 통곡 속에서 온 인류를 향해 십자가의 잔을 들으셨던 주님의 최종 결단을 기억합니다. 동서남북을 분간하기 힘든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흙냄새 나는 육신을 입고 살아갈지라도 타협하지 아니하고 **‘이미와 아직 아니(Already and Not Yet)’**의 거룩한 긴장 속에서 성령의 새 언약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초대교회가 성령의 권능으로 실현된 종말론의 진수를 살아냈듯이,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말뿐인 신앙이 아닌 **‘쉽지 않은 양심의 실천’**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십자가 랜섬의 정곡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어둠을 향해 믿음의 활시위를 당기는 참된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몸값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