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소재 영화로 9년만 스크린 복귀…감기로 무대 인사는 불참
송일곤 감독 "김혜자 클로즈업에 우주 있어…찬란하고 아픈 시절 기억해야"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 속 장면[페이지원필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image/fit/297561.webp)
1942년 경상도 산골에 사는 두 소녀 순옥(박서경 분)과 정임(최주은)은 둘도 없는 단짝이다.
둘은 함께 나무를 베고 풀뿌리를 캐는 고된 노동 속에서도 웃음과 꿈과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대는 그런 행복을 가만 누리게 두지 않는다. 태평양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조선의 젊은 남녀를 강제로 끌고 가고, 그 마수가 외딴 산골에 사는 두 소녀에게까지 뻗는다.
"여러분이 만나게 될 두 소녀를 그저 아픈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바라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의 배우 김혜자가 15일 취재진에게 쓴 친필 편지에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슬픈 역사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기억해야 한다"며 두 소녀의 찬란했던 시절도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여전히 찬란하게'는 순옥이 인생의 찬란한 순간을 함께한 단짝 친구 정임과 60년 만에 재회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오직 그대만'(2011), '거미숲'(2004) 등을 선보인 송일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했다. 소녀로 잔인한 시절을 살아낸 과거와 할머니가 된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김혜자는 친구와의 특별한 우정을 기억하는 순옥 역으로 2017년 개봉한 '길' 이후 9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그는 이날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시사회에 앞서 무대 인사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감기로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대신 취재진에게 직접 손 편지를 썼다.
김혜자는 직전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2025) 이후 연기 활동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송일곤 감독 전언에 따르면 김혜자는 "집 앞에 있는 들꽃처럼 가만히 있고 싶어 했다." 그런 그를 송 감독이 오랜 기간 설득해 결국 출연이 성사됐다.
김혜자는 송 감독이 쓴 편지의 한 문구가 영화 출연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작년 가을 송 감독이 보낸 편지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순옥은 울지 않습니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한 시간이 여전히 찬란하다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믿는 사람입니다.' 그 말이 참 오래 마음에 남았어요. 저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살고 싶어 했는지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혜자는 "잊지 않고 마음에 품고 있으면 아주 오래전의 작은 빛도 다시 우리를 비춰줄 수 있다고 믿는다"며 "이 영화를 보시고 여러분의 마음에도 작은 빛 하나가 남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송 감독은 김혜자가 그간 선보인 다양한 모습이 이 영화에 필요했다고 말했다. 김혜자는 1961년 KBS 공채 탤런트 1기로 합격한 이후 65년간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송 감독은 이날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화는) 순옥의 시선으로 전개가 된다. 인간을 따뜻하게 보고 연민을 가지고 보는 순옥의 시선이 중요했다"며 "김혜자 선생님이 65년간 쌓아온 수많은 캐릭터들이 순옥에 투영되면, 새로운 느낌으로 과거를 반추하는 느낌을 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송 감독은 인물의 아름다웠던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클로즈업을 많이 활용했다며, 김혜자의 얼굴이 드러내는 다채로움을 잡아내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그는 김혜자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배우"라고 말했다.
송 감독은 "이 작품을 인물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클로즈업이 중요했다"며 "특히 김혜자 선생님 클로즈업에 큰 우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사를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바라보는 모습이나 미묘한 미소, 작은 표정 등을 포착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선생님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연습하셨다. 지독하게 연습하신 분이었고 현장에 오니 이미 그 캐릭터가 돼 있었다"며 "그 여정이 감동스러웠다"고 떠올렸다.
배우들도 현장에서 김혜자와 호흡을 맞춘 경험이 영광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할머니 정임 역으로 김혜자와 같이 연기한 차미경은 "선생님께서는 하얀색 도화지 위에 물감을 떨어뜨려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번지게 하는 것 같다"며 "촬영할 때 상황을 머릿속에 넣지 않아도 같이 그 상황 속으로 스며들고 번졌다. 정말 아름다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소녀 정임 역의 최주은은 "너무 존경하는 선배님이어서 엄청나게 떨었는데, 촬영 들어갈 때 선생님이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으면 좋겠다'고 용기를 주셨다"며 "후배 배우를 존중하고 배려해주시는 모습이 너무 감사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산골 마을의 이장 곽씨 역을 맡은 조성하는 "연기에 있어 인간문화재시고 우리나라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며 "그 연기를 찬란하게 보석처럼 펼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고 바랐다.
송 감독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기억'이라며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난 뒤 훈훈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섰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송 감독은 "(영화 속 대사인) '기억할게'가 중요한 메시지"라며 "우리의 찬란했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기억되어야만 했다"고 의도를 전했다.
"김혜자 선생님이 '극장 나설 때 마음 따뜻해지고 훈훈해지면 좋겠다, 실컷 울고 난 뒤에는 사람이 순해진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대신 전해드려요. 많은 분이 저희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