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2세 소송 승소
법무부 국적이탈 불허 제동
미국에서 태어나 평생 미국에서 살아온 한인 2세가 한국 국적이탈 신고 기한을 놓쳤다는 이유로 국적 포기를 불허한 한국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한국 법원이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 문제에서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만을 앞세운 법무부의 경직된 법 적용에 제동을 걸고, 당사자의 성장 환경과 실제 생활 기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한국 국적을 가진 사실조차 모르다가 법정 신고 기한을 놓쳐 취업과 진로 등에 제약을 받아온 미주 한인 2세들에게 국적이탈의 길을 넓혀줄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9일 한국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1-2부는 미국 태생 선천적 복수국적자 A씨가 한국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국적이탈허가신청 불허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국 국적의 아버지와 시민권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A씨는 출생 이후 줄곧 미국에서 생활해 왔다. 그러나 자신이 미국 시민권뿐 아니라 한국 국적도 자동으로 보유하게 된 선천적 복수국적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면서 법정 국적이탈 신고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현행 한국 국적법에 따르면 선천적 복수국적 남성은 만 18세가 되는 해의 3월31일까지 한국 국적이탈 신고를 마쳐야 한다. 이 기한을 넘기면 원칙적으로 병역의무를 해소하기 전까지 자유로운 국적이탈이 제한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거주한 적이 없는 한인 2세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 국적을 보유하게 되고, 정해진 시기를 놓쳤다는 이유로 국적 포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서는 2022년 10월부터 신고 기한을 놓친 선천적 복수국적자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 국적을 이탈할 수 있는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그동안 국적이탈 신고 기한을 지키지 못한 사유와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 등을 엄격하게 판단해 왔으며, A씨의 신청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이에 A씨는 미국에서 평생 살아왔고 병역을 회피할 목적도 없었다며 법무부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A씨의 부모가 한국 출생신고를 늦게 하면서 A씨가 한국 국적 보유 사실을 제때 알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해 신고 기한을 지키지 못한 데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A씨의 실질적인 생활 기반이 한국이 아닌 미국에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판단해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무부는 A씨의 아버지가 한인 목사이고 부모가 한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국적 관련 규정을 몰랐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러한 사정만으로 A씨가 자신의 복수국적 사실과 국적이탈 신고 기한을 알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가 출생 이후 현재까지 한국을 방문한 횟수가 세 차례에 불과하고, 방문 당시 평균 체류 기간도 23일 정도였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또 A씨가 미국에서 직장을 구해 생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만큼 한국 국적이탈을 허용하더라도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선천적 복수국적 피해 한인 2·3세들을 대리해온 전종준 변호사는 한국 법원이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 문제에 대한 법무부의 지나치게 엄격한 해석에 분명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전 변호사에 따르면 그동안 법무부가 첫 번째 요건인 ‘정당한 사유’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 단순히 복수국적 사실이나 신고 기한을 몰랐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객관적이고 불가피한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이번 법원 판결은 당사자가 복수국적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경위와 부모의 출생신고 지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당한 사유를 인정한 것이다.
전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법무부가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 요건을 경직되게 적용해 온 관행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국에서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미국 시민으로 성장한 한인 2세에게 한국 병역의무를 이유로 국적이탈을 제한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는 지적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미주 한인사회에서 오랫동안 개선을 요구해 온 선천적 복수국적 제도의 불합리성을 바로잡고, 당사자의 실질적인 생활 현실에 맞춰 국적이탈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한층 힘이 실릴 전망이다.
전종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그동안 미주 한인사회가 요구해왔던 주장을 한국 법원이 인정한 것으로, 이를 계기로 한국 국회가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나서야 한다”며 “한국에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해외 출생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대해서는 과거와 같은 자동 국적상실 제도를 재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스앤젤레스 황의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