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바람결도 싱그러운 가을 밤이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어쩔 수 없이 고국, 고향으로 마음이 달려간다. 명절 속에 잠재워져 있었던 일가친척, 이웃, 동무들 얼굴이 추억을 들춰낸다. 아무리 변해버린 고향이라 하지만 고향은 늘 그 자리에 있어주었다. 자연 재해, 정치 혼란, 전쟁 우려로 세계는 불안과 소음으로 가득하지만 명절 하루만이라도 명절 닮은 뉴스가 잠시라도 흘러나오겠지 하는 기대감을 붙들게 된다. 해마다 고향 달을 그리며 올려다본 타향의 달도 어찌 이리 밝을 수 있을까? 낯선 이국에서 맞게 되는 명절은 깊어 가는 이국의 낯 설음을 풀어내라며 담담하게 여운을 남겨주었다. 추석맞이 보름달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완전한 둥근 모습으로 떠오르는 추석 보름달은 추석 이틀 뒤인 9월 27일 밤에나 만날 수 있다. 추석 당일 밤에 만나게 되는 달은 왼쪽 부분이 약간 덜 찬 모습으로 떠오른다. 추석은 음력 8월 보름이다. 해서 음력 날짜와 천문학적 지구와 달의 위치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추석은 가을 달 빛이 가장 좋은 밤으로 찾아온다. 설날과 더불어 한국 전통 명절로 중추절로 부르기도 하지만 한가위로 칭하기도 한다. 한은 크다는 뜻이요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의미한다. 농경사회에서 한 해 수확을 감사하는 풍습의 유래로 원근 각지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이고 햇곡식과 햇과일을 나누며 햅쌀로 빚은 송편은 지금까지 고유의 풍습으로 전해내려 오고 있다. 일 년 중 가장 풍요로운 명절로 한국인 정서와 농경사회의 전통이 담긴 다양한 속담과 명절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한가위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가슴을 저미게 했던 추석날 밤이면 덧없고 뜬구름 같은 세상 시름 잠시 내려놓고 그리운 사람들 이름을 불러보는 한가위 중추절이다.
추석날 보름달은 예로부터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온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고 소원을 빌던 따뜻한 이야기들, 추석 보름달에 얽힌 동화 같은 이야기들로 풍성했다. 친숙하고 정겨운 이야기로 달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다는 전설이다. 설화 속에 토끼가 배고픈 노인을 위해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어 노인을 공양하려는 토끼를 보고 감동한 노인이 토끼를 달로 보내 영원히 기억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보름달을 볼 때 마다 ‘저기 토끼가 아직도 방아를 찧고 있네’ 라면서 정겨운 추억으로 남겨지고 있다.
달이 가장 밝은 추석 밤, 동내 사람들이 모두 나와 손을 잡고 달을 닮은 둥근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던 강강술래는 보름달에 얽힌 가장 역동적이고 신명나는 장관이다. 단순히 노는 것을 넘어, 풍요와 감사를 표하고 마을의 화합을 다지는 따뜻한 공동체 이야기이다. 또한 추석날 저녁, 보름달이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 올라가 달을 맞이하며 마음을 나누는 ‘달맞이 소원 빌기’는 저마다의 소원을 기원하며 가족 건강과 한 해의 농사가 풍년을 이루게 해 달라는 바램과 아웃의 안녕을 비는 마음들이 달 빛 아래 가득했을 것이다. 건장한 남성들이 마을의 명예를 걸고 씨름과 줄다리기, 소 싸움을 하며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기도 했다. 거기에다 가장 먼저 보름달을 보면 길조가 생긴다 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앞다투어 높은 언덕에 오르던 정이 넘치는 훈훈한 풍경도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한 것은, 추수를 끝내고 오곡백과가 풍성한 추석처럼 한 해 내내 먹을 것이 가득하고 굶주림 없이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보름달이 밝아도 내 가슴 속은 어둡다’ 함은 풍요롭고 즐거운 명절이지만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돌아본 겉도는 쓸쓸함을 이르는 말이 속담처럼 흘러오고 있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 했는데 예쁘고 정갈하게 빚어진 송편처럼 삶의 결실도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음이요, 풍요를 상징하며 앞으로 채워질 미래를 상징하는 반달모양으로 빚어졌다. ‘풋나물도 한가위 같다’는 말은 평소에 흔하고 소박했던 풋나물조차도 풍성한 명절 음식과 어우러져 풍미조차 맛있게 느껴진다는 내력이 아낙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고 있다. 맛 갈진 구수한 입담을 지닌 외할머니로부터 내 어머니로 전수되어온 내력 깊은 옛날 이야기이다.
이방에서 만난 추석 서정은 새색시 시절 밤새껏 빚었던 송편이 먼저 떠오른다. 명절에 가족들과 어우러지던 시간까지도. 가족이란 자주 만나서 사는 얘기를 나누어야 정이 쌓여가기 마련이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음이라서 1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이민자의 삶의 옆모습이다.
추석은 밤 하늘에 떠오르는 보름달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그 존재 자체가 명절의 완성을 뜻한다. 가장 둥글고 밝은 달을 바라보며 한 해의 결실에 감사하고 소원을 빌어야 비로소 ‘추석’이라는 단어가 꽉 차오르는 느낌이 된다. 한데 추석 명절을 앞둔 애틀랜타 일기가 흐림이 계속되고, 추석 저녁마저 흐린 일기가 예보되어 있는 터라 보름달 만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을 듯하다. 추석맞이 애틀랜타 하늘에도 휘영청 둥근 달이 떠올라 우리 교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를 소망 드리게 된다. 사무치도록 그리운 고향이요 고국이라서 동화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고향 명절날, 그 애틋한 추억 속으로 우리 교민들을 데려다 줄 것이기에. 내년 한가위애는 가을 달 빛이 가장 좋은 밤이기를 빌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