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수필] 찌그러진 소묘

지역뉴스 | | 2026-06-29 09:49:52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찌그러진 소묘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데생 클래스에서 강사님이 회원들에게 그림 한 장을 들어 보여주었다. 전 권사님이 그려낸 핸드 그라인더 소묘였다. 그 그림은 한마디로 파격적이었다. 전통적인 규칙인 평행이나 원근법은 완전히 무시되어 있었고, 사물의 각도와 균형도 사정없이 깨져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제멋대로 그려놓은 것처럼 비뚤어지고 찌그러진 형태였다. 세부 표현 기법을 가르치는 강사님의 시선으로 보면 기술적인 기본기와는 거리가 먼 그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반듯하게 잘 그린 그림들 사이에서 그 스케치는 단연 독특했다. 찌그러진 소묘를 보는 순간, 눈을 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뿜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어머나, 너무 멋져요”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강사님조차 그 매력에 푹 반해버렸다고 고백했다. 그 순간 문득 화가 피카소가 떠올랐다. 평생을 바쳐 원근법을 부수고, 결국에는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했던 그의 파격이 전 권사님의 스케치북 위에 그대로 겹쳐 보였다. 자로 잰 듯 정확한 형태보다, 그 비뚤어진 선들이 보여주는 날것의 생동감이 더 강력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규칙을 깬 소묘 한 점에 감동받고 보니, 문득 내 글을 읽으며 공감해 주던 독자들이 생각났다. 사실 나는 평생 문필가들의 견고한 문장력을 기준 삼아, 내 글은 늘 촌스럽고 부족하다는 열등감을 품어왔다. 가끔 독자들이 보내는 찬사 앞에서도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고, 그저 다정한 인사치레려니 하며 밀어내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규칙을 무시한 전 권사님의 스케치에 내가 이토록 진심 어린 감탄을 보내면서, 내 투박한 글에 보내준 독자들의 공감 역시 계산 없는 진심이었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원근법을 벗어난 소묘 한 장이 큰 울림을 주었듯, 화려한 문체가 아니어도 덜 익은 내 글 속에서 누군가는 삶의 진정성을 읽어내었던 것이리라. 매끄럽게 잘 그려진 수많은 그림보다 삐딱한 소묘 한 점이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처럼, 독자들 역시 내 글에서 자신과 닮은 삶의 무늬를 발견하고 위로를 얻었을지 모른다. 오늘 우연히 만난 스케치 한 장이, 나의 오랜 열등감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어릴 적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던 문학소녀였다. 그러나 자라서는 문학과 무관한 학문을 공부했다. 일과 가정 그리고 양육에 치여 내 안의 문학소녀는 서서히 잊히는 듯했다. 그러다 불쑥 찾아온 병마로 죽음과 맞서는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기적 같았던 시간을 통과하며 삶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배웠고, 죽음의 문턱에 서보고 나서야 비로소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때 다시 찾아온 글쓰기는 내 삶의 가장 아끼는 선물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글쓰기였지만, 여전히 기성 문인들의 세련된 문장 앞에서는 주눅이 들곤 했다. 그랬다. 글을 완벽한 표현의 경연으로 보면 나는 영원히 아마추어일 것이다. 하지만 삶의 진실을 비추는 거울로 보면, 전 권사님의 비뚤어진 그림처럼 내 투박함도 나만의 독창적인 빛깔이 될 수 있다. 문장이 조금 거칠면 어떤가. 유수한 세련미는 없을지언정, 그 안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길어 올린 나만의 인생이 담겨 있을테니까. 이제 나는 남의 매끄러운 글과 비교하며 위축되기보다, 내 안의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이야기에 당당한 자부심을 가지려 한다.

화려한 문체를 부러워하며 주저하던 마음을 오늘로 기꺼이 내려놓는다. 전 권사님의 독특한 스케치가 그 자체로 빛나는 그만의 예술이 되었듯, 남들의 평가를 떠나 내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내 글도 이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내게 허락된 소중한 하루를 원고지 위에 당당하게 적어본다.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건져 올릴 수 있는, 투박하지만 가장 솔직한 나만의 이야기를.

 

 

 

댓글 0개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노벨화학상에 '거울분자 편향성' 비밀 푼 카강·소아이
노벨화학상에 '거울분자 편향성' 비밀 푼 카강·소아이

생명체 아미노산이 한쪽 방향만 띠는 100년 난제 해답 제시특정 거울상 분자만 100% 증폭 '비대칭 합성' 성공…신약 부작용 방지 기여일본, 2년 연속 노벨화학상 수상자 배출  

법무부, 귀화자 40명 시민권 박탈 절차 개시
법무부, 귀화자 40명 시민권 박탈 절차 개시

미국 법무부는 8월 21일부터 10월 2일까지 전국 각지의 연방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해 귀화자 40명에 대한 시민권 박탈 절차를 개시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브렛 슈메이트 법무부

SMG, ‘AEP 킥오프 위로의 밤’ 개최
SMG, ‘AEP 킥오프 위로의 밤’ 개최

브로커 초청 행사서 ‘전인적 돌봄’ 선언  ‘괜찮다’고 삼켜왔던 부모 세대…이젠 우리의 보살핌 필요 SMG(서울메디컬그룹)가 연례 건강보험 정기 가입 기간(AEP·Annual En

갱단 연계 대규모 총기 밀매 조직 적발
갱단 연계 대규모 총기 밀매 조직 적발

메트로 애틀랜타 일대서 암약20명 기소∙총기1,500정 압수 메트로 애틀랜타 일대를 중심으로 갱단 조직과 연계해 암약하던 대규모 총기 밀매 조직이 연방수사당국에 의해 적발됐다.연방

ICE 결국 ‘백기’…오크우드 구금시설 포기
ICE 결국 ‘백기’…오크우드 구금시설 포기

DHS∙ICE, 시에 매각 통보주민 반발 ∙ 전략 변화 원인  연방 국토안보부(DHS)가 산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건설을 위해 매입했던 홀 카운티 오크우드 시설을 매각

주말 조지아 올해 첫 허리케인…폭우∙ 토네이도
주말 조지아 올해 첫 허리케인…폭우∙ 토네이도

열대성 폭풍 ‘이사이아스’세력 확장 중앨라배마 ∙플로리다 해안 직접 영향권 열대성 폭풍 이사이아스(Isaias)가 올해 첫 허리케인으로 세력이 확장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판세 흔들 승부 없었다…주지사 후보 첫 토론회
판세 흔들 승부 없었다…주지사 후보 첫 토론회

바텀스∙잭슨  6일 저녁 열띤 토론 데이터센터∙ 최저 임금 놓고 공방잭슨, 트럼프 대신 켐프 선택 눈길 전국적 이슈 ‘이민단속’ 언급 없어 조지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키샤 랜스

귀넷 검찰, 대규모 인력 증원 요청
귀넷 검찰, 대규모 인력 증원 요청

검사보 등 27명 추가 요청“사건 기소 적시 처리 위해” 귀넷 카운티 지방검찰청이 대규모 인력 증원을 요청하고 나섰다.팻시 오스틴-갯슨 귀넷 지방검사장은 지난주 시민예산자문위원회에

트럼프 이민규제 여파…유학생 대출업체 영업 사실상 중단
트럼프 이민규제 여파…유학생 대출업체 영업 사실상 중단

엠파워, 자금조달 막혀…"잠재 고객·대출 의향 등 제약" 미국 유학생 전문 대출업체인 엠파워 파이낸싱이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규제 여파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영업을 사실

입국시 여권 도장 폐지…CBP, 입국 기록 전자화
입국시 여권 도장 폐지…CBP, 입국 기록 전자화

앞으로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여행객들은 공항 입국심사에서 여권에 입국 도장을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 된다. 연방 세관국경보호청(CBP)은 지난 1일 입국심사 과정에서 여권에 입국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