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삶이 머무는 뜰] 식탁 위에 차려진 위로 한 그릇

지역뉴스 | | 2026-03-19 11:16:11

식탁 위에 차려진 위로 한 그릇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조연혜

 

어떤 만남은 예상을 빗나갈 때 더 특별해진다. 누군가를 격려하고자 마련한 자리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 그날처럼. 

근처 대학 어학원에 다닐 때 한국에서 온 대학생 한 명과 같은 반이 되었다. 그녀는 1년 동안 어학연수 과정을 밟고자 미국에 온 휴학생이었다. 한국 사람을 만난 반가움에 몇 마디 인사를 나누던 중 우리에겐 커다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녀는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있었고, 나는 국문과 출신이었던 것이다. 남의 나라에서 우리글과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과 연을 맺는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같은 길을 걷는다는 사실 하나로 우린 스무 살 가까운 나이 차와 상관없이 친구가 되었다. 

한창 진로 문제로 고민하던 그녀는 내게 조언을 자주 구했다. 미안하게도 실제적인 조언은 해주지 못했다. 그녀는 경험담을 듣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며 내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꿈을 나누거나 고국을 추억하며 영어 공부로 지친 심신을 달랠 때도 많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방의 언어라는 삭막한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허나 우리 우정은 시한부였다. 한 학기가 끝나자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이대로 짧은 인연을 매듭 짓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차려주어야 친구를 보내는 헛헛함이 조금 가실 것 같았다. 결혼한 지 오래인 나도 차갑고 높은 현실의 벽에 서면 소박한 엄마의 밥상머리에서 푸념을 늘어놓던 날들이 자주 스친다. 그녀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아닌가. 아마 입에 익은 손맛과 함께 고단한 하루를 꼭꼭 씹어 넘기던 날들을 무시로 상상했을 것이다. 엄마를 대신할 순 없겠지만, 갓 지은 고슬고슬한 집 밥 한 끼로 다정한 작별을 고하고 싶었다. 

또 다른 출발선에서 불쑥불쑥 솟는 걱정들은 여기 드넓은 땅에 내려놓고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를 집에 초대했다. 둘은 귀국을 코앞에 두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나의 간소한 식탁에 앉은 그들은 누군가 차려주는 식사가 정말 오랜만이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부평초 같은 나날로 생긴 내면의 굳은살이 조금이나마 옅어지길 바라는 진심이 정갈한 음식마다 곁들여졌다. 그들에게 정말 주고 싶었던 건 인생의 다음 걸음을 내딛는 데 필요한 근육이었다.

어떤 넋두리도 들어줄 생각으로 오전 내 마련한 점심. 그 자리에서 그녀의 남자친구가 처음 꺼낸 이야기는 의외로 자신의 고단함이 아니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아이의 안부를 물으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여덟 살 때 온 가족이 홍콩으로 이민을 떠났어요. 처음 2주 동안은 울기만 했죠. 친구들도 보고 싶고 말이 잘 통하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미국에서 학교 다니는 한국 아이들을 보면 남일 같지 않고 괜히 짠해요. 저처럼 힘이 들까 봐요.”

홍콩과 한국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 왕래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가슴 한편엔 늘 고국에 대한 향수가 자리했다. 그때의 경험이 짙게 남아서인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사귄 이민자들에게 자꾸 마음이 쓰인다는 그다. 

본 적도 없는 우리 아이와 이민자의 가족을 걱정해주는 심성에 나는 어느새 초대의 본질을 잊었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삶의 많은 부분을 무장 해제했다. 실은 이민을 결정하고 가장 염려한 부분이 아이 문제였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적응을 잘한 편이다. 등교 첫 주엔 떨어지지 않으려 울기도 했으나 금방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에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2년이 지난 지금, 모든 그리움을 삭힌 건 아니다. 요즘도 아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 한국에 가고 싶다며 갑자기 서러운 눈물을 터뜨리곤 한다.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점점 나아질 거예요.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긴 듯 짧았던 이민 생활을 돌아보는 대화 끝에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는 마치 자기 조카 일처럼 안도하며 밥 한 술을 크게 떴다. 스쳐 지나는 사이라도 진정으로 안녕을 빌며 선뜻 마음의 문을 연 그녀의 남자친구 덕에 우리의 담소는 한층 더 깊고 따스해졌다.

사람을 하나로 엮어주는 가장 강한 끈은 슬픔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의 아픔을 헤아리는 사이 자신의 처지에서 한 발짝 떨어져 더 큰 인생의 동심원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같은 슬픔을 느낀다는 것, 그것이 한국인이라는 동질감보다 더 강한 연결 고리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각자의 지난했던 시절을 반찬 삼아 내일을 버틸 힘을 얻었다. 

연수를 마친 그녀와 대학을 졸업한 그녀의 남자친구는 이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훌쩍 미국을 떠났다. 몇 달이 흐른 지금, 한국과 홍콩으로 돌아간 둘의 안부가 문득문득 궁금하다. 그들도 종종 내 생각을 할까? 삶의 한 계절을 수놓았던 만남을 온정이 모락모락 피어나던 순간으로 간직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 더 욕심 부려도 괜찮다면, 생의 혹독한 바람이 불 때 그날 내가 끓여준 얼큰한 김치찌개를 떠올리길 가만히 기도한다. 한국에서 가져와 금옥같이 여기던 소중한 김치를 아낌없이 내어준 그날의 정성이 심연의 파동을 잠재워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물론 나도 그럴 테다. 우리 가정의 앞날을 응원하던 둘의 예쁜 맘은 오래오래 내 길을 비추는 별빛이 될 것이다. 작은 위로들로 삶은 부유해진다. 누군가를 보듬는 일이 얼마나 값진지를 알려준 두 사람에게 내내 감사하다. 

살다가 언제라도 먼 길 떠나와 외롭고, 응어리진 가슴에 체증이 가실 날 없는 사람을 만나면 희고 둥근 밥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싶다. 문턱을 낮추고 따뜻한 영혼들이 마주 앉는 자리를 자주 마련하고 싶다. 혹시 또 모르지. 그날처럼 내가 용기를 얻고 위로받게 될지도.

 

댓글 0개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노벨화학상에 '거울분자 편향성' 비밀 푼 카강·소아이
노벨화학상에 '거울분자 편향성' 비밀 푼 카강·소아이

생명체 아미노산이 한쪽 방향만 띠는 100년 난제 해답 제시특정 거울상 분자만 100% 증폭 '비대칭 합성' 성공…신약 부작용 방지 기여일본, 2년 연속 노벨화학상 수상자 배출  

법무부, 귀화자 40명 시민권 박탈 절차 개시
법무부, 귀화자 40명 시민권 박탈 절차 개시

미국 법무부는 8월 21일부터 10월 2일까지 전국 각지의 연방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해 귀화자 40명에 대한 시민권 박탈 절차를 개시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브렛 슈메이트 법무부

SMG, ‘AEP 킥오프 위로의 밤’ 개최
SMG, ‘AEP 킥오프 위로의 밤’ 개최

브로커 초청 행사서 ‘전인적 돌봄’ 선언  ‘괜찮다’고 삼켜왔던 부모 세대…이젠 우리의 보살핌 필요 SMG(서울메디컬그룹)가 연례 건강보험 정기 가입 기간(AEP·Annual En

갱단 연계 대규모 총기 밀매 조직 적발
갱단 연계 대규모 총기 밀매 조직 적발

메트로 애틀랜타 일대서 암약20명 기소∙총기1,500정 압수 메트로 애틀랜타 일대를 중심으로 갱단 조직과 연계해 암약하던 대규모 총기 밀매 조직이 연방수사당국에 의해 적발됐다.연방

ICE 결국 ‘백기’…오크우드 구금시설 포기
ICE 결국 ‘백기’…오크우드 구금시설 포기

DHS∙ICE, 시에 매각 통보주민 반발 ∙ 전략 변화 원인  연방 국토안보부(DHS)가 산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건설을 위해 매입했던 홀 카운티 오크우드 시설을 매각

주말 조지아 올해 첫 허리케인…폭우∙ 토네이도
주말 조지아 올해 첫 허리케인…폭우∙ 토네이도

열대성 폭풍 ‘이사이아스’세력 확장 중앨라배마 ∙플로리다 해안 직접 영향권 열대성 폭풍 이사이아스(Isaias)가 올해 첫 허리케인으로 세력이 확장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판세 흔들 승부 없었다…주지사 후보 첫 토론회
판세 흔들 승부 없었다…주지사 후보 첫 토론회

바텀스∙잭슨  6일 저녁 열띤 토론 데이터센터∙ 최저 임금 놓고 공방잭슨, 트럼프 대신 켐프 선택 눈길 전국적 이슈 ‘이민단속’ 언급 없어 조지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키샤 랜스

귀넷 검찰, 대규모 인력 증원 요청
귀넷 검찰, 대규모 인력 증원 요청

검사보 등 27명 추가 요청“사건 기소 적시 처리 위해” 귀넷 카운티 지방검찰청이 대규모 인력 증원을 요청하고 나섰다.팻시 오스틴-갯슨 귀넷 지방검사장은 지난주 시민예산자문위원회에

트럼프 이민규제 여파…유학생 대출업체 영업 사실상 중단
트럼프 이민규제 여파…유학생 대출업체 영업 사실상 중단

엠파워, 자금조달 막혀…"잠재 고객·대출 의향 등 제약" 미국 유학생 전문 대출업체인 엠파워 파이낸싱이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규제 여파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영업을 사실

입국시 여권 도장 폐지…CBP, 입국 기록 전자화
입국시 여권 도장 폐지…CBP, 입국 기록 전자화

앞으로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여행객들은 공항 입국심사에서 여권에 입국 도장을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 된다. 연방 세관국경보호청(CBP)은 지난 1일 입국심사 과정에서 여권에 입국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