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삶이 머무는 뜰] 헤픈 마음들이 빚어가는 아름다운 세상

미국뉴스 | | 2026-01-08 10:19:30

삶이 머무는 뜰, 조연혜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조연혜

 

어떤 말들은 빛을 발하는 순간이 따로 있다. 함부로 낭비한다는 뜻의 ‘헤프다’도 그렇다. 저무는 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이 단어가 꼭 있어야 할 자리는 ‘마음’ 곁일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성탄절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타국에 삶을 맡긴 지 2년여, 여전히 어리바리하고 어설픈 것투성이인 나를 세심하게 챙기는 미국인 친구로부터 조금 특별한 초대를 받았다. “크리스마스엔 뭐해요? 난 이맘때면 지인들과 홈 파티를 해요. 당신도 별일 없으면 가족과 함께 와요. 그들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겨울이면 유독 먼 땅에 두고 온 그리움이 눈에 밟혀 쓸쓸해하는 속내를 읽기라도 한 걸까. 그의 말은 화려한 성탄의 불빛 아래 더 초라해지는 빈 가슴을 달래는 참 고마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선뜻 응할 수 없었다. 스무 명 남짓 되는 미국인에게 안면도 없는 동양인이 어떻게 비쳐질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내가 가도 될까요?” 갈등하며 대답을 미루는 내게 용기를 준 건 그의 확신이었다. 그는 내가 승낙할 거라는 진지한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이미 약속을 정한 듯 행동하는 그의 태도가 믿음직스러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호스트도 우릴 반긴다는 소식에 맘이 한결 놓였다. 

화려한 자리가 아니라 더 좋았다. 손수 만든 핑거 푸드를 먹으며 간단한 선물을 교환하는 정도라 부담 없이 참석할 만했다. 그는 선물은 충분하게 준비되었으니 걱정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마 편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낯선 객에게 베푸는 그들의 호의, 그건 우리를 이방인이 아닌 진정한 벗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였다. 

며칠 뒤 나는 요즘 미국에서 ‘K-푸드’의 대표주자로 각광 받는 김밥을 정성껏 말고, 한국의 전통 간식을 챙겨 약속 장소로 향했다. 사실 많이 떨렸다. ‘공통점도 별로 없는데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쭈뼛대다 돌아오는 건 아닐까?’ 일행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는 이십 분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작은 가슴에 허락된 용기를 다 소진한 듯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여겨졌다.

허나 소심하게 속 태울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그 집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좋은 사람들에게서 전해지는 편안함이 나를 에워쌌다. 어느새 긴장감은 사르르 사라졌다. 그 모임은 마치 내 친구를 닮아 있었다. 하나같이 따스하게 우릴 환대하면서도 호들갑 피우지는 않았다. 그저 오랜만에 만난 인연을 대하듯 평온한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소란하지 않은 분위기 아래 소박한 음식을 나누는 사이 나는 그들에게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거창한 대화는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주고받은 서로에 대한 고마움이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가진 선물 교환 이벤트에서도 정다움이 묻어났다. 제비를 뽑아 받은 물건이 별로면 다른 참석자 것을 뺏어도 되는 짓궂은 규칙마저 그들에겐 온기를 불어넣는 장치였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주고 트리 아래 놓인 알록달록한 상자들을 흔들어보는 시간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여섯 살인 내 아이가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뽑은 커피는 친구가 가져갔다. 아이는 결국 자신에게 딱 맞는 맛있는 간식을 얻었다. 다소 실망한 아이의 표정을 읽은 그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곳에 모인 모두는 가는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인생의 동반자였다. 그날 처음 만난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다른 세 식구를 가만히 품어주는 다정다감한 파란 눈들과 마주하자 한 책에서 읽은 글귀가 떠올랐다. 세상을 바꾸는 건 위대한 리더도, 거대한 정의도 아니라고, 진심을 건네며 마음을 돌보는 사람, 그리고 지친 이의 등을 살며시 토닥이는 사람이라고. 훈훈한 맘가짐으로 타인을 대할 때 풍기는 진한 인간미는 미처 알지 못해도 늘 곁에 머무는 공기 같은 것이었다.

아낌없이 퍼주는 인정은 20년 넘게 미국에서 사신 큰아버지를 통해서도 전해진다. 1년 전쯤 큰아버지 회사에 한 가정이 이민을 왔다. 이후 큰아버지는 중요한 가족 행사에 그 식구들을 잊지 않고 부르신다. 올해 1월 1일에도 우리는 그들과 함께 세배하고 떡국을 먹었다. 실은 그동안 큰아버지의 행동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다. ‘피붙이도 아닌데 때마다 챙길 필요는 없잖아?’ 그들의 상황을 헤아리기보다 잘 모르는 이들과 한자리에 있으면 어색하고 불편한 내 성격이 앞선 섣부른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모임을 통해 내 속이 좁았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큰아버지의 넉넉한 인품이 일가친척 없이 단출히 지내는 그들에겐 얼마나 아늑한 둥지처럼 느껴졌겠는가. 사람을 향해 베푸는 애정은 아무리 쓰고 써도 소모되지 않는 감정인 것을. 끈끈한 정이 모여 만들어지는 따사한 체온을 잊고 내 앞길만 아등바등 챙긴 지난 생활이 부끄러웠다.

그러고 보면 나는 헤픈 마음이 주는 힘을 익히 알고 있었다. 열 번 가까이 본 영화〈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는 절친 론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난생처음 선물을 받는다. 론의 어머니가 그의 이니셜을 새겨 직접 뜬 스웨터. 계단 밑 벽장에서 긴 시간 외로움을 견딘 해리에게 그것은 단순한 옷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인격이란 기쁨이며,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2026년에도 살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테다. 그러나 우린 혼자가 아니다. 내면은 단단하게 다지면서 다른 이들에게로 흐르는 온정을 꽁꽁 가두지 않는 한 우리는 더 아름다운 미래와 마주할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햇살 같은 심장을 지닌 사람들의 헤픈 사랑이니까.

글/ 조연혜, 프리랜서 편집자

 

댓글 0개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완도산 미역귀·오키나와 모즈쿠 배합
완도산 미역귀·오키나와 모즈쿠 배합

우미노시즈쿠 후코이단, 원료 차별화 내세워25년 브랜드 역사와 '한·일 원료 배합'으로 시장 입지 강화 건강 제품 선택 시 가격이나 단순 광고 문구보다 원료와 브랜드 역사를 중시하

세계 최초 '드라마 삼국지' 1권 출간
세계 최초 '드라마 삼국지' 1권 출간

1,675개 단막극으로 재구성성균관대 전광진 명예교수원전 재정립 기반 '드라마 에디션 삼국지' 선봬 성균관대학교 중문과 전광진 명예교수가 나관중 원작 및 모종강 개정본의 방대한 서

민주당 아시아계 의원·후보들 투표참여 촉구
민주당 아시아계 의원·후보들 투표참여 촉구

조지아 민주당 하시아계 의원들과 후보자들이 23일 도라빌 필리피노 레스토랑인 카마얀 ATL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안 아메리칸 유권자들의 사전 조기투표 참여를 촉구했다.이 자리에는

주말 귀넷서 인도 페스티벌 열려
주말 귀넷서 인도 페스티벌 열려

24일 카멜 인디아 가을 페스티벌 귀넷 지역 주민들을 위한 다채로운 음식과 문화,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이번 주 토요일 펼쳐진다. '카멜 인디아 가을

조지아 중간선거, 흑인 및 젊은층 투표 참여 급증
조지아 중간선거, 흑인 및 젊은층 투표 참여 급증

바텀스·오소프 진영에 유리하게 작용 조지아주에서 진행 중인 사전 조기 투표에서 흑인 유권자와 30세 미만 청년층의 투표 참여율이 지난 중간선거 때보다 눈에 띄게 가파른 상승세를 보

조지아 대선 출마 1순위? 오소프·켐프 ‘청신호’
조지아 대선 출마 1순위? 오소프·켐프 ‘청신호’

AJC 조지아주 여론조사 애틀랜타 저널-컨스티튜션(AJC)이 실시한 새로운 여론조사는 조지아주 유권자들 사이에서 2028년 대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주 내 주요 정치인들에 대한

조지아 부주지사·주무·법무장관 선거 초첩전
조지아 부주지사·주무·법무장관 선거 초첩전

AJC 조사, 민주당 후보들 약간 앞서 조지아주의 주요 선거구에서 치열한 초접전 양상이 벌어지면서, 내년 1월 주 정부 운영 방향에 막대한 파장을 미칠 마지막 총력전이 펼쳐지고 있

델타항공, 애틀랜타 공항 스피릿 탑승구 인수
델타항공, 애틀랜타 공항 스피릿 탑승구 인수

1,200만 달러 인수, 시의회 승인 애틀랜타 시의회가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 내 운항을 중단한 스피릿 항공의 탑승구를 델타항공이 인수하는 안건을 최종 승인했다.파산 절차

호텔이 서민용 임대아파트로 탈바꿈
호텔이 서민용 임대아파트로 탈바꿈

귀넷 ‘크레스트 포인트 빌리지’ 완공노후 장기투숙용 호텔 매입해 개조주거불안 청년∙저소득층 노인 대상  노후 장기투숙용 호텔을 매입해 저소득층 주거시설로 전환하는 시도로 주목을 받

챔블리 18층 옛 주세무국 건물 폭파 철거
챔블리 18층 옛 주세무국 건물 폭파 철거

24일 오전 7시 45분에…2초 남짓 소요최초 삼각형 고층건물 폭파에 주민 관심 챔블리에 있는 18층 옛 조지아 주세무국 건물이  마침내 폭파 방식으로 철거된다.24일 오전 7시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