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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의 세상읽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비극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05-21 09:09:30

권정희, LA 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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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기온은 화씨 80도 전후, 겨울 기온은 50대 중반.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연중 온화하고 선선한 기후에 땅은 비옥하니 선사시대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4000년 고도, 가자가 있는 이 지역을 구약성경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출 3:17)는 여호와의 약속에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히브리 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존의 족속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하며 땅을 차지한 결과 이스라엘 왕국이 건설된다. 유대인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땅’)의 배경이다.

 

당시 가나안 족속들 중 가장 강적은 블레셋이었다. 삼손이 쳐부순 대상도, 다윗이 맞서 싸운 골리앗도 블레셋 사람이었다. 블레셋은 훗날 바빌론에 멸망당해 지구상에서 사라졌지만 용케도 그 이름을 남겼다. 블레셋 사람의 땅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필리스티아/팔레스티아’를 어원으로 ‘팔레스타인’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상극의 뿌리는 깊고 오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충돌이 위험수위를 넘었다. 양측이 공습과 로켓포 발사로 맞선 지 10여일, 하마스 통치구역인 가자지구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연일 거대한 화염과 굉음 속에 건물들이 파괴되고, 애꿎은 아이들과 여성들 등 민간인들이 무참하게 죽어가고 있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보면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느냐 만큼 삶을 좌우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외세의 침략을 면해본 적이 없었다. 고대 이집트로부터 아시리아 제국, 알렉산더의 그리스, 로마제국 등 왕국들이 번갈아가며 그 땅을 지배했다. 오늘의 수난은 오토만제국이 1차 대전에서 국제연맹에 패하고,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하면서 시작되었다. ‘유대인 국가’ 논의가 활발해지던 중 나치 대학살을 피해 많은 유대인들이 여호와로부터 약속받은 땅이라며 모여들었다.

 

1948년 건국 후 이스라엘이 4차례의 중동전쟁을 거치며 영토를 확장하는 동안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삶은 날로 처참해졌다.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겨난 이들이 살 수 있는 지역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단 두곳, 팔레스타인 자치국의 영토다.

 

나라 없는 설움, 그 차별과 압박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의 비극에 감정이입을 할만도 한데, 현실은 정반대다. 특히 그들이 테러집단으로 여기는 하마스 집권 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 통하는 모든 육로와 해로를 봉쇄했다. 검문소를 통과하지 않고는 밖으로 나올 수 없으니 감옥 그 자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서안지구에서는 곳곳에 유대인 정착촌을 세움으로써 사실상 상당부분을 점령했다.

 

시오니즘의 이스라엘은 최대한 영토를 확장하며 영원한 유대인 나라를 추구하고, 팔레스타인은 7세기 이슬람제국의 정복 이후 줄곧 아랍민족의 영토인 그 땅에 독립국가 건설을 꿈꾸고 있다. 태생적으로 충돌이 불가피한 구도다.

 

‘영토’에 더해 양측의 증오를 더욱 심화하는 것은 ‘종교’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이번 충돌은 지난달 동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라마단이 시작된 4월13일 밤, 이슬람 신도들에게 기도를 중계하던 사원에 이스라엘 경찰이 들이닥쳐 확성기 케이블을 끊어버렸다. 때마침 바로 밑 유대교 성지 ‘통곡의 벽’에서는 전몰장병 추모일을 맞아 이스라엘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이슬람 기도에 연설이 묻힐까봐 경찰이 확성기를 꺼버린 것이었다. 알아크사 사원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승천했다는 성지. 이스라엘 경찰의 침범은 무슬림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무슬림의 분노와 적개심을 자극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고, 무슬림과 극우 유대인 간 충돌이 고조되던 순간, 하마스와 이스라엘군이 끼어들었다. 과격투쟁으로 정치적 주도권을 잡으려는 하마스, 그리고 부패혐의로 기소돼 위기에 처한 네타냐후 총리가 기회를 잡은 것이다. 강경여론을 부추기며 무력충돌로써 서로의 이득을 얻는 적대적 상호의존관계가 되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평화공존은 불가한 걸까. 한때 ‘2개 국가 해법’이 진지하게 논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너무 강하고 팔레스타인은 너무 약하다. ‘무력충돌’이라고 하지만 구식 로켓포의 하마스와 최첨단 무기의 이스라엘은 싸움이 되지 않는다.

 

힘의 불균형 상황에서 평화공존의 길은 국제사회의 압력뿐이다. 이스라엘보다 더 이스라엘 편인 미국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나오니 반갑다. 버니 샌더스,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진보 의원들, 일한 오마르 등 무슬림 의원들이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한 공정한 시각을 촉구하고 나섰다. “마이크 타이슨이 갓난아기를 패는 격”의 싸움에서 누구를 보호할 것인가. 팔레스타인인 목숨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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