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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오늘도 낯선 듯 걸어간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10-16 0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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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자(시인 수필가)         

 

예순 해 전 가을이 찾아들 무렵, 아버지 유언을 따라 고향에 산소를 모시고 발길을 돌리는 날, 자주 오라시는 숙부님 당부에 고개 숙여 인사를 올리고는 다시 찾지 못했다. 소처럼 크고 선한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담던 사촌 오빠 배웅을 받으며 고향을 떠나고는 아버지 고향을 다시 찾지 않았다. 젊은 날, 아버지께서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서 터전을 잡으시고 결혼을 하시고 우리 오 남매를 두신 사연을 안고 있어서인지 고향길은 뜸해질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를 산소에 모시고 돌아선 길은 아직도 화석처럼 깊이 각인되어 있다. 여대생 책갈피에 꽂혀 있던 낡은 사진처럼 이름 없는 낡은 이정표처럼 남겨져 있을 뿐이다.

 

아버지를 뜻밖에 일찍 여읜 여대생은 길이 끝나는 절벽 위에 서 있었지만 절망 속에서도 헤쳐가야 할 초점을 잃지 않으며 어머니와 5남매 장녀 자리에서 버팀목이 되고자 했었다. 스스로 새로운 길이 되어 걸어가야 한다는 집념으로 길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오늘도 낯선 듯 길을 간다. 이국 땅에서 낯선 길이 열리고 이방인 흔적을 남겨오는 동안 시간이 길을 만들고 추억이 농축되고 깊어지면서 길은 조금씩 새롭게 열리곤 했었다. 노년의 아낙이 되도록 생애를 걸어도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길, 유사 이래 무수한 사람들이 지나갔을 길들 위에 내 발자국을 얹으며 선명하게 길을 다지듯 걸어간다. 

 

낯선 길을 만나기도 하고, 길 머리나 길 어귀가 어렴풋한 길도 계속 걷다 보면 길이 트이기도 하고, 끝 없는 아득한 길을 정처 없이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었다. 평생을 걸어도 다시 열리는 길. 내가 길을 택한 것인지 걷고 있는 나를 손짓으로 불러들인 것인지. 정답이 없는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생애를 걸고 유일한 내 길을 찾아 걷고 또 걷는다. 헤매는 시간도 더러 있긴 했지만 결코 낭비는 아니었 듯이 가끔 길을 잃는다 해서 영영 잃는 것도 아니었다. 길 어귀가 보이지 않는, 가늠할 수 없는 막막함을 안고 직관으로 걸어가다 보면 만나지 못했던 길로 들어서기도 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도전은 미지의 여정으로 이어졌다. 

 

두 길이 만나 한 길이 되기도 하고 한 길이 나뉘어져 두 길이 되기도 하는 길. 홀로 걷는 길이 다른 이들이 걷는 길과 다르다 해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인생들은 스스로의 길을 걷고 있기에 어느 누구도 그 길을 평가하거나 판단하거나 비평해서는 아니될 일이다. 길이란 마냥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진전을 거듭하며 오르막과 내리막을 만나면서 나아가고 있음이기에. 나아가지 못하거나 진행되지 못하는 길은 DEAD END일 뿐이다.

 

길을 놓칠 때면 되돌아 보는 것 조차 용납치 않으며 줄기차게 걷고 또 걸었다. 앞이 안 보일 때, 빛 없는 어둠의 골짜기에 내팽개쳐졌을 때도, 믿음으로 헤쳐 나가면 분명히 길은 있었다. 길 찾기는 멈출 수 없는 순례자의 운명이라 믿었기에. 누가 인생길을 탄탄대로나 지름길로만 걸으라 할 수 있을까. 가시밭 길, 진흙길도 마다 않으며 길 같지 않은 길들과 마주하며 어설프게 길을 만들어 내려다 상처를 입기도 하지 않았던가. 길들은 항상 열려 있지만 새로운 길, 유일한 길을 찾아 우리네 인생은 걷고 또 걸으며 새 길을 만들어 간다. 

다시금 산길, 물길, 오솔길을 돌아 교차로 앞에 서게 되면 욕심도 자랑도 내려놓게 되고,마치 새들의 날아오름 같이 가벼워져서 다시 앞길을 재촉하게 된다. 끝 없는 아득한 길을 동행 없이도 터덜터덜 걸어가는 것이 생의 여정이다, 노정 중에 동행을 만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홀로 길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새로운 길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 말 것은 길이 끝나는 곳에는 때를 따라 새 길이 있을 터이기에. 나를 지으신 이의 부름에 뒤돌아 보지 않을 발걸음이 될 수 있기를 염원하면서 낯선 이국의 길을 오늘도 낯선 듯 걸어간다. 가던 길이 끝난 곳에서 스스로 새로운 길이 되어 걸어가는, 길이 되고 픈 사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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