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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겨울 소곡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1-24 08:16:34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겨울 소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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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평소엔 원고지를 외롭게 만들곤 했는데, 눈이 내리는 날이면 원고지 앞으로 서슴없이 다가 앉는 나를 발견 하게 된다. 마치 손 끝이 살아나 듯 펜을 붙든다. 생성과 소멸의 반복 과정에서 시적 앵글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잡아두려는 서두름으로 보여 진다. 지난 주엔 메트로 애틀랜타와 조지아 북부 지역에 10일 새벽부터 7년만에 눈이 내렸다. 오전 9시부터 메트로 일부 지역에는 눈이 진눈깨비로 바뀌면서 도로가 얼자 운전이 어려워지고 도로교통이 마비되면서 교통대란으로 혼란 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Harts field-Jackson Atlanta International Airport에서도 항공편 무더기 취소 사태로 결항이 속출되었다. 공항과 Marta 환승 전철이 운행차질을 빚는 등 도시 기능이 잠시 마비된 적이 있었다. 이번 주 21일, 22일 이틀동안 스쿨버스가 올 스톱 되고 학교마다 원격수업을 진행했다. 21일 해질 무렵에 잠시 내린 눈이 지붕을 하얗게 덮고 들판까지 하얀 눈으로 덮어 놓았다. 창에 턱을 고이고 앉아 하얀 눈이 내려앉아 차선이 분간 되지 않는 도로를 내려다 본다. 다니는 차량도 보이지 않고 사람 모습은 얼씬도 않는 하얗게 드러난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문득 세월 따라 함께 했던 여러 모습들이 오버랩 되면서 떠오른다. 

 

감사해야 할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도 세월을 함께 보낸 사람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의식하지 않은 채 어느 날 문득 세상 구비를 돌아가다 함께했던 시간들을 인식하게 된 것일 게다. 세월 구비 마다 에서 그저 흘러가는 타성에 젖어 떠 밀리   듯 사느라 주변을 둘러 볼 여유도 없이 세월이 저 혼자 흘러가듯 지나 오다가 어느 날 문득 함께했던 사람들을 발견한 것처럼 불현듯 얼핏 떠오른 것이다. 이럴 땐 달력이라는 종이 위에 배열된 날짜들은 단조로운 숫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도 참 이상한 일이다. 달력은 정말 내가 무심히 쳐다보기만 했을 뿐인데 나를 조율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월 속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을 어김없이 절실한듯 필수인 것처럼 의식하면서 일상을 꾸려 왔더라면 심리적으로 긴장감이 몰려 왔을 터이다. 마치 겨울 폭풍이 폭설과 동반하다 보면 길이 마비 되고 정전사태가 발생하고 급기야는 비행기가 이륙을 하지 못해 공항 대합실에 갇혀 버린 것 같은 불안과 안도가 교차하는 묘한 심사로 하루들을 보내왔으리라. 더는 세월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멋쩍고 어색해서 조금은 외면하고 싶은 감정의 소강상태를 경험했을 것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지구는 여전히 변함없이 인류역사 기록을 하고 있다. 세월의 자유를 어이 하리요. 세월 수레바퀴는 이상이나 개념 논리로 움직이지 않으며 가슴으로 바퀴를 굴리고 사람 냄새가 배어버린 세월을 동행해 왔던 터라 새삼 그간의 일상들을 아름다웠 노라 하고 싶다. 아름다운 풍광이 흘러왔던 시간을 이쯤에 와서야 돌아 볼 수 있게 된 것에도 감사 할 일이다. 이렇듯 세월 속을 함께한 사람들로는 먼저 가족일 수도 있을 것이요 마지막 까지 함께하는 부부일 수도 있겠지만 피붙이가 아니 면서도 세월을 쌓아가며 알듯 모를 듯 정에 묻혀 지내온 우정을 잃었거나 잊어버린 기억들을 돌아보게 된다. 눈이 내리는 날 은발의 아낙은 함께 했던 우정들로 하여 아릿한 여운이 남겨 짐을 문득 떠올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추억이 많은 사람은 외롭지 않다 했기에 매서운 추위 앞에서도 한결 훈훈해 진다. 하지만 세월이 시침을 뚝 떼어버린 건 아닐까 마음이 출렁인다. 사람은 세월 따라 겉모습은 옛 시절을 잃어가지만 추억 속의 풍경과 함께 했던 사람들은 기억 속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언제든 현실로의 복귀가 가능하다. 오늘처럼 눈이 내릴 때나 삶이 고단하고 지칠 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스해 진다. 엄동설한 겨울임에도. 

겨울로 환승 한지 며칠 아닌 것 같은데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정경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겨울 또한 숱한 추억을 안겨주고 떠나겠지만 다가올 생의 겨울까지 무던히 보살펴 줄 것이라는 믿음에 한결같이 든든해 진다. 겨울이 가는 길은 마냥 한가지 갈로만 우리네 인생들에게 알려주진 않았다. 그저 특이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하고 미지근한 하루들이 있는가 하면 순간 순간을 특이하게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이변을 당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또 다른 길을 열어주곤 한다. 오늘 하루에도 기적에 가까운 축복의 순간들이 찾아오면 모두 내 것으로 보듬기 위해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마음 그릇을 넉넉하게 준비해 두어야 할 일이다. 겨울이 지나가는 길섶에서 겨울 소곡이 나지막하게 읊어주는 음률이 소복소복 쌓여 간다.

 

겨울이 가는 길에 동승하며, 버리고 내려놓아야 할 일에도 마음을 기울이며 간직해야 할 것은 빈틈없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 눈이 내린 만상 앞에서는 모든 순간들을 긍휼과 진실, 사랑으로 품고 가야 할 것 같다. 겸허한 마음으로 겨울이 가는 길을 따라가며 삶을 대하는 지혜를 배워가면서 이번 겨울도 친밀한 친구처럼 배웅하게 되기를 빌어본다. 쌓인 눈이 반사되고 있는 한 겨울 거리엔 한 점 부표 같은 인생들이 1월 비망록을 안고 새롭게 열리는 2월 속으로 걸어 들어갈 입구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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