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에 포커스 안 맞춰…장르적 재미에 집중한 작품"
"속편 못 만들 것 없지만 흥행 위해 억지로 하고 싶진 않아"
"손익분기점만 생각했지 천만 영화라는 건 조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좀 어리둥절했는데, 주변에선 '이런 때가 평생 다시 안 올 수도 있지 않으냐'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영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은 21일 종로구 카페에서 한 인터뷰에서 '천만 영화'를 보유하게 된 소감을 묻자 담담한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파묘'는 전날까지 누적 관객 수 952만여 명을 기록해 이번 주말 1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를 통해 공고한 팬덤을 쌓은 장 감독이지만, '파묘'가 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한 시각은 많지 않았다. 오컬트 장르 특성상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모든 장면을 재밌게, 관객들이 본 적 없는 걸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며 신선하면서도 오락적인 요소가 많았던 것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요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천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과 '파묘' 사례를 보면서 "아, 잘 만들면 (흥행이) 되는구나"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파묘'는 거액을 받고 수상한 묘를 옮기게 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이 겪는 기이한 일을 그렸다.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이라는 탄탄한 배우진과 독특한 소재로 개봉 전부터 영화 팬들 사이에서 기대작으로 주목받았다.
개봉 후에는 '항일 코드'가 화제가 됐다. 일제가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기 위해 우리 땅 곳곳에 쇠말뚝을 심어뒀다는 설을 주요 스토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그러나 "한국 사람만이 느끼는 과거에 대한 감정이나 정서를 최대한 도드라져 보이지 않게 하려 했다"면서 "이 영화는 95%가 장르적 재미에 집중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처음엔 파묘라는 소재 자체에 집중했어요. 과거를 파면서 시간여행을 하다 보니 '한'의 정서에 부딪히더라고요. 이 땅의 상처와 앙금, 트라우마는 구한말부터 해방기 때 그 고름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쇠말뚝은) 일제를 비판한다기보다는 (집필 과정에서) 맞닥뜨려 쓰게 된 소재입니다. 반일에 포커스를 맞추거나 무언가를 겨냥한 적대감은 영화에 안 묻히려고 했어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을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얼마 전 '파묘'의 항일 코드를 언급하며 "좌파 영화"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장 감독은 이에 대해 "영화를 받아들이는 건 가지각색 아니겠냐"며 "제가 그걸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 감독의 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극 중 김고은이 얼굴에 한자로 축경을 쓴 것을 두고 비판한 중국 누리꾼에 대해서도 "저는 중국영화를 너무 사랑한다. 한국 영화도 중국분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기 때문에 개봉 기회를 열어주면 좋겠다"며 웃었다.
전형적인 오컬트물과는 달리 '파묘'에는 이른바 '험한 것'으로 불리는 일본 귀신이 사람들 앞에 등장한다.
이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귀신이 나오는 바람에 기이함이 반감된다는 쪽과 귀신을 처단하는 모습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꼈다는 쪽으로 나뉜 것이다.
특히 오컬트 마니아들 사이에선 귀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파묘'를 과연 오컬트 장르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장 감독은 "'순수 오컬트'와 '안 순수 오컬트'로 장르를 나누고 싶지 않다"며 "저는 '사랑과 영혼'도 오컬트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사바하'가 개봉했을 때는 '검은 사제들' 같은 영화를 기대한 관객이 '이 영화 뭐냐?'고 했었고, '사바하'를 재밌게 본 분들은 '파묘'를 보고서 '이건 또 뭐야? 라고 했어요. 어떤 분들은 이걸 퇴보라고 하기도 하지만, 저는 계속해서 새로운 걸 찾고 진보하려 합니다."
장 감독은 데뷔 후 오컬트물만 선보여왔지만, 그 안에서 여러 변주를 시도했다. '검은 사제들'은 천주교 구마 의식을 큰 줄기로 내세웠고 '사바하'에선 불교 색채를 강하게 넣었다. '파묘'는 풍수지리와 아픔의 역사를 엮었다.
그는 "연출하는 작품의 영역이 좁다 보니 그 안에서 더 파고들려는 습성이 있다. 그게 제 생명줄"이라고 했다.
"감독은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잖아요. 제가 보고 싶은 걸 만들다 보니까 이렇게 (오컬트만 만들게) 됐네요. '파묘' 후속작을 기대하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대충 만들려면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제 연출관이 아닙니다. 좋은 이야기를 만나게 되면 못할 것도 없지만 흥행을 위해서 이야기를 억지로 욱여넣고 싶지는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