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의 역사와 종류
크리스마스에 이탈리아의 전통빵인 파네토네를 먹다가 문득 생각했다. 우리 전통 한과는 전부 어디 가고 없는 걸까? 그나마 약과나 강정 등은 대량 생산 등으로 실낱같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식을 넘어 밤초나 생란, 정과 같은 종류는 이제 기억마저 희미해질 정도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어찌하여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걸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입맛에 전통 한과가 잘 맞지 않는 한편, 극소수만을 제외한 한과가 대량생산 등의 현대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탓일 가능성이 높다. 이유야 어쨌든지 간에 어린 시절, 특히 겨울이면 심심치 않게 먹었던 산자나 다식, 정과 등을 먹을 수 없게 된 현실은 자못 안타깝다. 양식을 배척하자기보다 계속 잊히고 있는 한과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의도에서 역사와 종류를 정리해 보았다.
■한과의 역사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신문왕 3년(683)에 왕비를 맞이할 때의 폐백품목으로 쌀, 술, 장, 기름, 메주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쌀, 꿀, 기름이 재료이므로 당시 한과류를 만들어 먹었으리라 짐작한다.
한편 통일신라시대부터 차 마시는 풍습이 성행하면서 진다례나 다정모임 등 의식에 따른 다과상이 발달했으니 한과류 또한 존재했으리라 추정한다.
고려시대: 반죽을 기름에 튀겨 만드는 유밀과는 국가의 불교 대행사인 연등회연이나 팔관회연은 물론 공사연회나 제사 등 왕가, 귀족, 사원 행사의 필수 음식이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1800년대 초)’에도 충렬왕 22년(1296) 당시 원나라 세자의 결혼식과 한과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충렬왕의 세자가 결혼식 연회에 유밀과를 차려내 현지인들에게서 격찬을 받았다는 기록으로 유밀과가 국외까지 전파되었음은 물론 고려시대의 납폐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례 이후 원나라에서는 고려의 유밀과를 ‘고려병(高麗餠)’이라 부르며 찾아 먹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고려시대 과정류의 유행이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의례 및 기호식품으로 숭상되어 왕실은 물론 반가와 귀족들 사이에서도 세찬이나 제품, 각종 연회 등에서 빠질 수 없는 행사식으로 인기를 누렸다. 유밀과와 강정 같은 과자는 민가까지 널리 유행했으니 설날을 비롯해 혼례, 회갑, 제사용 음식으로 반드시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금지령까지 내려져, 대전회통(大典會通, 1865)에서는 “헌주, 혼인, 제향 이외에 조과를 사용하는 사람은 곤장을 맞는다”는 규정이 실려 있다.
■한과의 종류
조청: 인공적인 꿀이라는 뜻의 조청(造淸)은 곡식을 엿기름으로 삭힌 뒤 조려 꿀처럼 만든 감미료이다. 이름이 말해주듯 꿀 대신 단맛과 끈기로 한과의 맛과 질감을 내는 데 쓰이는 기본 재료이다. 찌거나 삶아 당화된 곡물의 전분에 엿기름물을 섞고 따뜻하게 중탕을 하거나 묻어두면 밥알이 삭아 풀어진다. 이를 자루에 퍼담아 짜낸 엿물을 솥에 끓여 농축시키면 조청이 된다. 쌀밥이 주재료이지만 수수나 옥수숫가루 등 잡곡이나 고구마로도 만들 수 있다. 한과에 쓸 때에는 보통 되직하게 졸인다.
강정: 전통 혼례의 이바지 음식에서도 한몫을 크게 차지하는 등 한과의 대표라 할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 널리 퍼진 것으로 추정되는 강정의 조리법은 ‘규합총서(1809)’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제일 좋은 찰벼를 꽤 말리어 또 밤이면 이슬 맞히기를 사오일 하여 술에 축여 몸이 젖게 하려 그릇에 담아 밤을 새운다. 이튿날 솥에 불을 한편 싸게 하여 축인 찰벼를 조금씩 넣고 주걱으로 저으면 튀어날 테니 채반으로 덮어 튀게 하여, 키로 까불어 겨 없이 하고 소반 위에 펴고 모양이 반듯하고 가운데 골진 고운 것을 그릇에 종이 펴고 담는다. 큼직하게 만든 산자는 고일 때에 밑바탕으로 놓고 작은 강정은 위에 올린다.”
유밀과: 밀가루에 기름과 꿀을 더해 만든 반죽을 튀긴 과자이다. 모양과 크기에 따라 이름이 붙는데 약과인 대약과, 소약과, 모약과, 다식과, 만두과, 연약과와 밀가루를 반죽해 모양을 빚어 튀긴 매작과, 차수과, 중배끼, 요화과, 상승과, 한과, 채소과 등이 있다. 유밀과 가운데는 약과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고려 왕조 때부터 최고의 과자로 친 약과는 불공의 소찬 덕분에 발달했다. 불교의 전성기였던 고려시대에는 살생을 금했으니, 생선이나 육류를 제사상에 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유밀과가 중요한 제사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약과는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과 술을 더해 되직한 반죽을 만든 뒤 약과판에 박아 모양을 낸다. 그리고 섭씨 150도의 기름에 겉이 타지 않는 가운데 속까지 익도록 지져 만든다. 기름에서 꺼내자마자 조청이나 꿀물에 담가 속까지 맛이 배면 꺼낸 뒤 잣가루를 솔솔 뿌려 완성한다. 매작과는 매엽과라고도 불리는데, 밀가루에 소금과 생강즙을 더해 만든 반죽을 얇게 민 뒤 가운데에 칼집을 넣고 뒤집어 특유의 모양을 잡은 뒤 기름에 튀겨 꿀물을 묻히고 잣가루를 뿌린다. 차수과(叉手菓)는 밀가루 반죽을 노랑, 파랑, 빨강으로 물들인 뒤 얇게 밀고 칼집을 넣어 손을 마주 잡은 모양으로 만든 과자이다.
숙실과: 실과를 익혀 만든 과자(熟實果)이다. ‘초(炒)’는 실과를 제 모양 그대로 꿀에 넣어 조려 만든 것으로 밤초와 대추초가 있다. 율란은 깎은 통밤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끓는 물에 조리다가 꿀과 계핏가루를 더해 마무리한다. 이때 한지로 위를 덮어 밤이 설탕물 위로 떠오르지 않도록 해줘야 맛이 잘 밴다. 대추초 또한 절반쯤 갈라 씨를 뺀 뒤 통밤과 같은 요령으로 조려 만드는데 씨 대신 잣을 박아 마무리한다.
‘란(卵)’은 실과를 삶거나 쪄 으깬 뒤 다시 원래의 모양을 빚어 만드는 것으로 율란(밤), 조란(대추), 생란(생강)이 있다. 율란은 황률이라 일컫는 말린 밤가루 혹은 삶은 밤으로, 조란은 다진 대추를 꿀에 조려 뭉쳐 만든다. 강란은 생강을 곱게 갈아 물에 담갔다가 녹말은 걷어내고 건지만 먼저 조린 뒤 마지막에 꿀과 녹말을 더해 뭉친다.
과편: 과일로 만든 묵이다. 과일을 삶아 으깬 뒤 녹두전분과 설탕을 더해 되직하게 졸인 뒤 틀에 넣어 굳혀 썬다. 신맛이 두드러지는 딸기, 앵두, 산사, 모과, 그리고 오미자나 생강 등으로 만든다.
다식: 삼국유사에는 제사에 차를 쓴다는 기록이 나온다. 중국 송나라에서 고려에 예폐로 보낸 차가 시초가 되어 즐기게 되었다고 하는데, 용단이라 부르는 찻가루 덩이에 물을 부어 마셨다. 이 찻가루 덩이를 다른 곡식 가루로 대체한 것이 오늘날 다식의 원형이라고 추측한다. 깨, 콩, 찹쌀, 녹두, 녹말 등의 가루를 꿀로 반죽한 다음 모양틀에 찍어내는데, 틀 또한 ‘수복강녕’(壽福康寧), 즉 편안하게 오래 복을 받으며 장수를 기원하는 네 글자를 비롯한 여러 문양이 새겨져 있어 문화사료로도 의미가 있다. 봄철 소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는 노란 가루를 받아 만든 송홧가루 다식이 가장 귀하다.
정과: 식물의 뿌리나 열매를 꿀이나 물엿에 조려 만들고 전과라고도 부른다. 끈적하게 만드는 진정과와 설탕의 결정이 버석버석할 만큼 아주 마르게 만드는 건정과가 있는데, 편강이 바로 생강 건정과이다. 재료를 끓는 물에 부드러워지도록 데친 뒤 꿀이나 설탕, 조청 등에 조리면 진정과가 되고, 이를 건져 설탕을 묻히면 건정과가 된다. 연근, 생광, 도라지, 모과, 무 등을 써 만든다.
엿강정: 곡식, 견과류 등을 그대로 혹은 잘게 부순 뒤 엿물을 부어 굳힌 과자이다. 흑임자, 깨, 콩, 땅콩, 잣 등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