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사태 이후 1,440원 부근까지 급등세
고환율에 1년 월세만 2천달러 가까이↑
“환율 1,450원 뚫는다” 전문가들 예상에
정부, 연기금까지 동원 카드 적극 검토
한국 기업에서 LA로 파견온 주재원 최모씨는 요즘 한숨을 내쉬는 것이 일상이 됐다. 가뜩이나 캘리포니아 물가가 전국에서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 살림살이가 팍팍한 상황에서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로 환율이 최대 1,440원 부근까지 상승하는 등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원화로 급여를 받고 있어서 계속 월급이 줄어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성공 이후 환율이 급등했는데 계엄 사태로 환율이 천장을 뚫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며 원·달러 환율이 한때 1,440원대까지 치솟았다가 등락을 계속하는 등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면서 유학생과 학부모, 주재원, 예비 여행객들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 지난 9월까지만해도 1,330원대였던 환율이 3개월 여 만에 100원 가량이나 급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1,200원대까지 내려갔던 원·달러 환율은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계엄사태 등과 맞물려 이제는 1,450원도 돌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1일(한국시간) 새벽 2시 현재 전장 서울환시 종가 대비 4.20원 하락한 1,432.80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주간거래(9시~3시반) 종가 1,426.90원 대비로는 5.90원 상승했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106.6까지 치솟으며 지난 4일 이후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 여행, 유학, 이주 등을 준비하는 이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고환율을 걱정하는 내용의 게시글이 부쩍 늘어났다. 특히 체류 기간이 길수록 달러화로 교환해야 하는 돈의 단위가 커지는 만큼 고환율은 직격탄이나 다름없다. 주재원 이모씨는 “지난 7월 미국에 왔을 때 환율로는 월세와 관리비가 한화로 480만원 정도였는데 이제는 502만원을 내야 한다”며 “1년으로 계산하면 264만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씨의 계산에서 자동차 보험료와 식료품 등은 빠져 있다.
유학생 이모씨는 “환율이 1,500원을 뚫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데 나머지 한 학기만 다니고 군대에 가는 것을 고려해볼 생각”이라며 “일단 이번 방학 때 한국에 가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환율로 인해 각종 투자계획도 무산되고 있다. LA 주택에 에어비앤비 투자를 계획했던 이모씨는 “20억원 정도를 투자해 LA 주택을 매입해 월세를 받는 걸 계획하고 있었지만 최근 환율이 너무 올라 포기했다”며 “좀처럼 환율이 낮아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 1997~1998년 외환위기, 2008~2009년 금융위기 외에는 겪어본 적 없는 초유의 고환율 사태다. 이유정 하나은행 연구원은 “1,450원 정도를 상단으로 봤는데,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1,450원을 조금 더 넘을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 정부는 연기금을 동원해 환율과 증시 방어하는 카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정부는 국민연금의 자체 환헤지 비율을 최대 한도인 5%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현재 해외투자 자산이 4,855억달러에 달한다. 기금운용본부는 9월 말 기준 해외 자산의 2.75%만 환헤지를 하고 있는데 이 비율을 5%까지 높이면 최대 109억 달러가 외환시장에 공급되는 효과가 생긴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환헤지 규모를 근본적으로 확대해 외화 자금 유입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원·달러 환율이 특정 수준을 돌파할 경우 자체적으로 가능한 수준(5%)을 넘어 최대 10%까지 환헤지 비율을 높여야 한다. 시장에서는 발동 조건을 1,400원대 후반으로 보고 있다.
<박홍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