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시장 엑소더스에 가격‘뚝’1400억원 비트코인 샀는데 910억 손실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암호화폐)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정한 중남미 국가 엘살바도르가 FTX 파산의 역풍을 맞고 있다. 암호화폐 겨울이 길어지며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상황에서 글로벌 3대 암호화폐 거래소가 고꾸라지는 악재까지 겹치자 나라 경제가 재앙 수준으로 치닫는 중이다. 비트코인 실험을 주도한 대통령은 여전히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며 추가 매수를 예고해 위기를 더욱 키우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투자 손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웹사이트 나이브트래커는 이날 기준 엘살바도르 투자 손실이 64%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9월 7일 나이브 부켈레(41)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나랏돈으로 비트코인 1,000만 달러(약 131억 원)어치를 구매한 이후 14개월간 누적 구입액이 약 1억715만(약 1,405억 원) 달러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6,837만 달러(약 910억 원)가 휴지 조각이 됐다.
직접적 원인은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 사태다. 이달 8일 FTX가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 파산을 신청한 이후 수억 달러에 이르는 계좌 해킹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투자자들의 코인시장 대탈출(엑소더스)이 이어지고 있다. 14일 비트코인 가격이 2년 사이 최저 수준인 1만5,000달러까지 떨어지면서 엘살바도르는 투자 손실의 늪으로 깊이 빨려들어갔다.
부켈레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중남미의 스위스가 되겠다”며 비트코인을 미국 달러화에 이은 제2법정통화로 선포했다. 이후 두 달가량은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드림’이 현실이 될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 9월 7일 5만2,660달러로 출발한 비트코인은 11월 12일쯤에는 6만8,00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행복은 짧았다. 꾸준히 하락세를 탄 비트코인 가격은 올해 9월 들어 2만 달러 밑으로 주저앉았다.
하락장에도 부켈레 대통령의 ‘물타기’는 멈추지 않았다. ‘야수의 심장(하락장에서 무모할 만큼 공격적인 매수 행위)’을 가진 그는 가격 급락 시점마다 “싸게 팔아줘서 감사하다”며 추가 매수에 나섰다. 비트코인이 1만9,000달러까지 떨어진 지난 7월에는 152만 달러어치를 더 사들였다. 그러나 암호화폐 시장에 악재가 이어지면서 엘살바도르를 비트코인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엘살바도르는 내년 1월과 2025년 16억 달러(약 2조 원) 규모의 외채를 갚아야 하지만, 투자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상환 여력이 크게 줄었다. GDP 대비 부채비율이 85%를 넘을 거란 암울한 전망마저 나왔다. 미국 경제매체 포춘(Fortune)은 엘살바도르가 디폴트를 선언할 확률이 48%에 달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암호화폐 누적 투자 손실액(6,837만 달러)은 엘살바도르 농업부 올해 전체 예산(약 7,700만 달러)에 근접한 수준이다. 국민의 47%가 식량 불안정과 굶주림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1년간 먹거리 안정에 쓸 수 있는 자금이 사라진 셈이다.
온 나라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정책의 실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엘살바도르 국민의 77%가 “비트코인 매입을 위한 공적 자금 지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비트코인은 재정 안정성, 소비자 보호 등 측면에서 매우 위험하다”며 정부에 비트코인 법정통화 채택을 취소하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부켈레 대통령은 14일 “비트코인은 FTX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암호화폐”라고 강변했다. 추격 매수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