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되고 다양성 반영한 대관식 열 듯
새로운 시대가 왔다. 70년간 영국의 상징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면에 들면서 찰스 3세의 시간이 본격 시작됐다. 그러나 ‘포스트 엘리자베스 시대’를 이끌게 된 새 왕의 미래는 가시밭길이다. 19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해 영국과 영연방 국가 새 원수(元首)가 된 찰스 3세의 과제를 정리했다.
①경기 악화에 ‘간소한’ 대관식?
찰스 3세 대관식이 바로 열리는 건 아니다. 준비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까닭에 내년 늦봄 또는 초여름쯤 열릴 전망이다. 서거한 여왕은 왕위에 오른 지 16개월이 지난 1953년 6월에야 공식 대관식을 치렀다. 157만 파운드, 현재 가치로 약 3,100만 파운드(약 492억 원)가 들었고 고위 인사 8,000명이 초대된 ‘초호화’ 행사였다.
새 왕의 대관식은 간소하게 치러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 등으로 경기가 어느 때보다 악화한 탓이다. 왕실 결혼식과 달리 국가 행사인 대관식은 모든 비용을 영국 정부가 부담한다. 화려한 대관식을 치르면 “경기 침체 속 세금을 낭비한다”는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는 ‘현대적 군주제’로 이미지를 탈바꿈하려는 왕실에도 부담이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과거보다 더 절제되고, 비용이 덜 들고, 영국 사회의 다양성과 다문화를 반영한 대관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②안팎에서 커지는 탈(脫)군주제
영국에서 왕실의 위상은 굳건하지 않다. 왕실을 떠받쳐온 여왕이 사라지면서 군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공화주의자들이 엘리자베스 2세의 죽음과 찰스 3세 왕위 계승을 군주제 폐지 투표 기회로 여긴다고 전했다.
영연방 국가 결속력이 느슨해지는 상황도 당면 과제다. 찰스 3세는 영국 식민지였던 56개국 정치연합체 영연방의 수장이 됐고, 호주, 캐나다, 자메이카를 비롯한 14개국 국가 원수가 됐다. 그러나 여왕의 부재로 원심력이 커질 전망이다. 카리브해 섬나라 앤티가 바부다가 여왕 서거 이틀 만에 공화국 전환을 선언한 것은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③새 총리와의 ‘케미’는?
새 총리와의 ‘케미(호흡)’도 관전 포인트다. 입헌군주제하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정치적 중립을 유지했다. 반면 찰스 3세는 왕세자 시절부터 기후, 환경 등 일부 분야에서 적극 목소리를 냈다. 왕위에 오른 만큼 이전보다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는 하겠지만, 여왕과 달리 아예 입을 닫지 않을 거라는 게 영국 정계의 관측이다.
이 과정에서 리즈 트러스 총리와 부딪칠 공산도 있다. 영국 가디언은 “새 왕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는 확고한 견해를 가졌고, 트러스 총리와 많은 부분에서 견해가 다르다”며 “두 사람이 정치적 논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허경주 기자>